가장 '두산스러운' 승리, '라이온킹' 이승엽 감독은 곰을 닮았다 [잠실 현장분석]

잠실=안호근 기자 / 입력 : 2023.04.02 07:03 / 조회 : 2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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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롯데와 감독 데뷔전에서 승리 후 기념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승엽 두산 감독./사진=안호근 기자
[잠실=안호근 스타뉴스 기자] "힘들었다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4시간 43분에 걸친 혈투. 사령탑 데뷔전이라기엔 너무도 혹독했던, 그 과정 속에 승리를 차지했기에 더 없이 기뻤던 경기였다. '초보 사령탑' 이승엽(47) 두산 베어스 감독은 값진 경험과 결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얻었다.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두산은 1일 서울시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개막전에서 연장 11회말 호세 로하스의 끝내기 스리런 홈런으로 12-10 승리를 거뒀다.

한일 통산 626홈런, KBO리그에서만 15시즌 동안 467홈런을 쏘아 올렸던 한국 야구의 전설이지만 감독으로 선 개막전은 낯설기만 했다. 경기 전 만난 이 감독은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정작 한 쪽 눈이 빨갛게 충혈 돼 있었다. 폭발적인 관심 속 치르는 감독 데뷔전에 대한 커다란 긴장도를 읽어볼 수 있었다.

경기 초반부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쳤다. 믿었던 1선발 라울 알칸타라가 4회 만에 4실점하며 무너졌고 이는 불펜 조기 가동으로 이어졌다. 3-1로 앞서가던 경기가 3-8로 뒤집히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러나 두산은 특유의 응집력을 발휘했다. 7회 김재환의 동점 석점포를 비롯해 5득점하며 빅이닝을 만들어냈다. 8회 역전에 성공했고 9회 1점을 내주며 연장에 돌입했고 11회초 다시 1실점해 패색이 짙어보였으나 이번엔 로하스가 경기를 끝내는 대형 스리런으로 이 감독을 미소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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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승리 후 꽃다발을 건네받고 기뻐하는 이승엽 감독. /사진=OSEN
리그 원년과 감독대행을 제외하고 정식 감독 데뷔전에서 승리를 따낸 28번째 사령탑으로 이름을 올렸다. 두산에선 4번째 기록이었다. 2015년 김태형 전 감독에 이어 이승엽 감독도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뤘던 두산이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는 하위권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던 상황에서 거둔 승리라 더욱 의미가 깊다. 미디어데이에서 이러한 평가에 이 감독은 "냉정한 평가 감사하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다만 이승엽 감독 스스로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 팀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부진했지만 야구를 할 줄 아는 팀"이라며 "지난해 실패는 약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난해 힘을 잃었던 곰 군단은 이승엽 감독을 만나 강점을 되찾았다. "야구를 할 줄 안다"는 그 장점을 살리기 위해 힘을 썼다. 김재환의 한 방이 살아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아끼지 않았고 분발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기도 했다. 그 결과 4번타자는 결정적인 홈런으로 보답을 했다.

두산 특유의 공격적인 타격을 펼치면서도 높은 집중력으로 볼넷도 7개나 얻어냈다. 12개 안타로 12점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6년 152억 원을 주고 데려온 양의지는 물론이고 지난해 침묵했던 정수빈, 허경민, 잠재력을 높이 사며 성장을 의심치 않은 김인태 등도 모두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하며 이 감독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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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말 1사 3루에서 기습번트를 시도하는 이유찬. /사진=OSEN
두산과 인연이 없었던 이승엽 감독이지만 개막 첫 경기부터 가장 '두산스러운' 스타일로 승리를 수확했다. 이 감독은 경기 후 "단순히 승리를 했다는 것보다, 5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우리가 두산의 힘을 느낀 것 같아 좋았다"며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한 끝에 챙긴 소중한 승리에 대해 "일반적인 승리와 다른 승리를 한 것 같다. 의미 있었다"고 평가했다.

초보 감독이라고 믿기지 않는 과감한 승부수도 빛났다. 3-8로 끌려가던 7회말 무사 1,3루에서 경험이 적은 9번 타자 이유찬에게 믿음을 나타냈고 그는 희생플라이로 보답했다. 8회는 더 인상적이었다. 8-8로 맞선 1사 3루에서 타석에 선 이유찬에게 이번엔 7회와 달리 기습번트 사인을 냈다. 결과는 대성공. 불펜진이 9회초 동점을 허용하면서 결승점이 되지는 못했지만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 과감한 승부수였다.

이 감독은 "히팅 사인에서 희생플라이를 친 건 점수 차가 나서 맡겼다"며 "(8회엔) 1점차 승부라 한 점이 정말 중요했다. 이유찬이 타격도 좋은 선수지만 9번 타자로 나왔고 개막전 첫 출전이라 분명 긴장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3루에 주자가 (발빠른) 조수행이었기에 히트보다는 번트가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144경기 중 단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벌써부터 제법 노련한 감독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한 없이 기뻐하기에도 부족할 경기였지만 이 감독은 이내 "사실 반성할 게 많다. 선두타자 볼넷이 오늘만 해도 5개가 나왔고 11회 실점도 이병헌이 첫 타자를 잘 잡고 다음 타자에 볼넷 주면서 실점했다"며 "이런 건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앞으로 143경기가 남았지만 이런 실수를 줄여가야 한다. 생각지도 않은 출루 허용하면 수비수들을 비롯해 모두가 힘들어진다"고 꼬집기도 했다.

때론 선수에게 무한한 신뢰를 나타내며 맡기는 것도, 때론 적극적인 작전 지시를 통해 집중적으로 점수를 내 경기 흐름을 뒤집는 것도 두산 팬들에겐 익숙한 승리 방정식 중 하나였다. 허경민, 김인태 등의 뛰어난 수비도, 한 베이스를 더 나아가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 정신도 잘 나갈 때의 두산과 다르지 않았다.

개막 첫 경기임에도 '감독 이승엽'이 누구보다 두산과 잘 어울리는 지도자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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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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