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악역이 들어오면요? 다른 매력 보여줄 수 있다면 맡을 거예요."
배우 김서형(39)이 SBS '샐러리맨 초한지'의 모가비로 다시 한 번 소름끼치는 악녀 연기를 펼쳤다. 그녀는 반전을 거듭하는 모가비라는 인물을 통해, '아내의 유혹' 신애리에 이어 또 한 번 잊지 못할 캐릭터를 연기해 냈다.
"악역이라고? 그렇다. 굳이 따지자면 모가비는 악역이다. 상황이 그렇게 몰았고 결국 다른 이들에 피해를 줬으니. '악역' 꼬리를 다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드라마에서 그런 캐릭터를 맡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그렇게라도 인정받는 게 기쁘다. 모가비는 야망을 갖고 있는 여자인데 그룹 회장이라는 상황이 닥치면서 점점 변해갔다. 그래서 사람은 높은 자리를 줬을 때 알아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녀의 모가비를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이 신애리를 떠올렸을 것. 그만큼 '아내의 유혹'에서의 김서형이 펼친 신애리에 대한 인상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김서형은 신애리와 언뜻 비슷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모가비라는 캐릭터로 다시 한 번 스스로의 틀을 깼다.
"사실 신애리와 어떻게 다르게 표현해야할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호통을 치는 장면을 찍은 다음에는 스태프에게 '신애리 같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면 작품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았다."
모가비라는 캐릭터는 '초한지'에서 이름까지 따온 대부분의 캐릭터와 달리 새로운 인물이라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전개를 펼칠지 더욱 기대를 자극했다.
"'초한지' 속 인물로 굳이 따진다면 조고일 것이라는 얘기는 있었다. 천하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을 품은 사람이라면 고금을 막론하고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캐스팅 단계에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이 '멋있는 역할이고 반전은 있을 것'이라고만 했다. 모가비가 진시황 회장을 죽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역시 매회 모가비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모가비가 발톱을 드러내면서 '샐러리맨 초한지'는 숨 막혔던 긴장감이 폭발했다. 선과 대립할 악이 전면에 나타나면서 드라마는 탄력을 받았다.
"회장이 돼 로비를 걸어가는 데 '만수무강 하십시오'라는 말에 기분이 어색하더라. 내 나이에 회장 노릇을 하는 것이 연기인데도 힘들었다. 너무 팔색조로 잘 그려주셔서 만족 한다. 만약 처음부터 악역이라는 말을 듣고 선택을 했다면, 모가비가 신애리랑 같았다면 다음에는 악역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스스로의 욕망에 미쳐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는 것이나 범증과의 관계 등이 있어 모가비가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졌고, 덕분에 앞으로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22부작의 여정을 거쳐 오면서 모가비는 많은 색깔을 보여줬다. 특히 캐릭터 변화의 중심에는 진시황의 죽음이 있었다. 김서형은 진시황을 살해하는 장면을 찍은 뒤 며칠이 몸이 안 좋았을 정도로 극에 몰입했다고. 그녀는 "연기인데도 이러니, 진짜 죄 짓고는 못 살겠더라"라고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모가비가 진 회장을 죽였을 때, 연기인데도 '사람을 죽인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촬영하는 내내 혼돈을 느꼈고, 법정에서는 스스로도 '진짜 내가 진시황을 죽인걸까' 생각했다. 마치 스스로 거부하는 것처럼. 진시황 살해 장면 이후 3~4일 몸이 안 좋고 기분이 안 좋았다. 그 장면에서 일부러 핏빛의 붉은 재킷을 입었다. 제일 신경을 쓴 장면이었다. 그 장면 찍고 나선 모가비로서 할 일을 다 한 기분이더라."
김서형도 고마움을 표했듯, 모가비가 단순한 악녀에 그치지 않은 것은 범증과의 로맨스도 한몫했다. 김서형은 "살짝 아쉽긴 했다. 장량과의 삼각구도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작가님한테 나중에 중년의 로맨스도 해보시라고 권했다. 너무 잘 담아 주셔서."
사실 김서형은 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선 굵은 캐릭터들로 연기를 펼쳤지만 유독 로맨스와 거리가 있었다. 실제로도 아직 싱글인 그녀는 "올해도 열애설 한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내 인생에 가장 신중한 게 연기와 결혼이다. 이제는 편한 사람이 좋은 것 같다. 연상연하 중에? 내 나이보다 많은 사람 중에 찾으려면 별로 없을 텐데. 하하"
모가비, 하면 또한 모든 남자를 유혹하는 섹시한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극중 검찰 취조 장면에선 샤론스톤 같은 연출로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대본보고 '푸하하' 웃었다. 사실 밤부터 대기하다가 아침 9시에 후다닥 찍은 장면이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찍었고, 그런 것에 비해서 너무 잘 나왔다. 그래도 더 섹시하고 어필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남긴 한다."
이후에도 혹 악역이 들어온다면 하겠느냐는 물음에 김서형은 "전작과 비슷한 역할이 들어오면, 이번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캐릭터 임에도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면 배우로서 감사한 일 아닐까"라고 말했다.
"솔직히 스스로 도회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들이 그렇게 봤다면, 그것을 해내야 되는 것 또한 연기자가 아닐까. 나를 왜 그렇게 볼까 하는 것 보다는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늘 고민한다. 그것 또한 배우의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면서. "늘 에너지를 소비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모가비 캐릭터를 처음 받았을 때는 고민도 많이 하고 속으로 많이 갈등도 했다. 전작에 신애리를 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사실 처음에는 속상했다. 또 에너지를 쥐어짜서 이렇게 소비해야 하나. 그래도 왜 이런 역할이 내게 주어졌나 생각해 보면. 연기자로서 숙명이 아닐까 싶다."
김서형은 '그린로즈'에서도 회사 오너를 꿈꾸는 비서 차유란으로, '자이언트'에서는 50~60대 여성으로 분하기도 했다.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왜 나한테 이런 역할이 올까를 생각했다. 내안에 내가 모르는 모습을 보고 나를 선택 해 주시는 것 아닐까. 그래서 매번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늘 이번 작품이 마지막일거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내 안의 캐릭터를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또 비슷한 캐릭터가 와도 겁내지 않을 것 같다. 신애리와 모가비를 했기 때문에 못하는 게 아니라, 신애리와 모가비를 한 덕분에 비슷하다고 해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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