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간 중학교를 다니던 가난한 사환 소년에서 월급 50만 원의 영업 사원을 거쳐, 연 매출 3000억 원 규모의 해운 기업을 이끄는 성공한 사업가로 변모한 '선박왕' 김현겸의 파란만장한 인생 서사가 시청자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전했다.
28일 방송된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서는 '바다 위에 1300억 호텔 띄운 선박왕' 김현겸 편이 방송됐다. 이는 김현겸이 최초 국내 기술로 탄생시킨 '동북아 1호 크루즈 페리'를 가리키는 말로, 그는 "미쳤다"는 주변의 만류 속에서도 탁월한 사업 감각으로 성공을 확신했다. 2023년 10월 착공해 건조 과정에만 무려 450명의 인력이 투입된 이 초대형 프로젝트는 2025년 4월 마침내 정식 취항 및 운항을 시작했다. 부산과 일본 오사카를 왕복하는 해당 크루즈 페리에 직접 오른 서장훈은 "이대로 오사카를 다녀오고 싶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지만, "여권이 없으면 배 안에만 있어도 밀항"라는 설명에 황급히 로망을 접으며 웃음을 자아냈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손꼽히게 유복했던 김현겸의 집안은 아버지의 빚 보증 실패로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당시 12살이었던 그는 "육성회비 600원을 내지 못해 수업 도중 앞에 불려 나가 서있어야 했다"며 가슴 아픈 기억을 털어놨다. 이후 낮에는 사환으로 일하고, 밤에는 야간 중학교에 다니며 학업을 이어갔다. 성○관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김현겸은 남다른 장사 수완을 드러냈다. 명동 일대 다방을 시작으로 워○힐, 조○호텔에까지 유자청을 납품하며 일찌감치 '장사 천재' 면모를 발휘했다. 대학 졸업 후 무선박 해운 중개 회사에 취직한 뒤 그의 영업 감각은 더욱 빛을 발했다. 건물 맨 위층부터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모든 무역 회사를 공략하는 일명 '빌딩치기 전략'으로, 본인 월급 50만 원의 140배에 달하는 매출을 회사에 안기며 전설의 영업왕으로 거듭났다.
그러던 1990년, 김현겸은 28살의 나이에 아내 몰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창업에 뛰어들었다. "10년 안에 배를 사겠다"는 그의 확고한 목표는 불과 10년 만에 매출 수백억 원대 회사를 일궈내는 원동력이 됐다. 마침내 2000년, 그는 오랜 꿈이었던 첫 배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카페리 사업 첫해부터 1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혹독한 시련을 맞았다. 그럼에도 김현겸은 "정기선의 생명은 신뢰"라는 신념 하나로 텅 빈 배를 1년 넘게 쉬지 않고 운항했고, 결국 1년 6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내가 하면 다 된다"는 자신감으로 두 번째 배를 사들인 직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쳤다. 순식간에 1000억 원이 넘는 부채와 함께 그는 인생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회사를 매각할 결심까지 했던 그때, 배 수백 척을 보유한 일본의 최대 채권자로부터 "나는 기다릴 테니 살아남아라!"라는 내용의 공증 서류 한 통이 도착했다. 이때 김현겸은 배 한 척만 남기고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고, 6년 만에 빚을 청산하며 은인의 믿음에 보답했다. 그리고 지금은 무려 6척, 약 4000억 원 규모의 배를 소유한 '선박왕'이 됐다. 2025년 기준 창립 35년을 맞은 그의 종합 해운 기업은 연 매출 3000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김현겸은 자신의 사업 인생을 돌아보며 "10년 안에 배를 사겠다는 꿈에 모든 걸 다 바쳤다"고 담담히 회상했다. 이어 그는 "'내가 벌어도 되는 돈인가?'를 고민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지 살핀다"며 흔들림 없는 사업 철학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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