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은 턴어라운드 타임(Turnaround Time) 최소화와 함께 LCC 사업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원 용어는 하나의 컴퓨터가 동시에 여러 개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다중작업'이라고 해석한다. 정보통신 분야 단어인 멀티태스킹을 LCC업계에서는 직원 한 사람이 두 종류 이상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사용했다. 이를 통해 조직을 매우 심플하게 운영할 수 있다. 그리고 '다중작업' 보다는 '1인다역'으로 해석한다.
처음 시작은 사우스웨스트항공이 특이상황에 처해 부득이하게 시도한 '10 minutes turn'(10분 회전) 전략에서 나왔다. '10분 회전'이란 항공기가 도착하고 손님이 하기하는 시점부터 기내청소와 각종 물품보급, 수하물 탑재 등을 하고 승객이 탑승하여 항공기 문을 닫고 다시 이륙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단 10분 안에 끝내는 방식이다.
지상직원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만이 아닌 다른 여러 업무를 맡아야 했고, 조종사는 턴어라운드 타임을 줄이기 위해 항공기 계류장지역인 램프로 내려가 정비사의 업무 일부를 해냈다. 또 객실승무원들은 기내청소는 물론 탑승구에서 손님맞이에도 참여했다. '10 minutes turn'을 해내기 위해 공항에 아주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한 승객은 용서 없이 탑승이 거절되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 '10 minutes turn'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나서 찾아낸 성공방정식은 멀티태스킹(Multi-task job)과 치열함(Desperate)이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이 같은 방법은 항공기가 들어와서 다시 나가는데까지의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항공기 3대로 4대의 운항스케줄을 소화해 냈다.
LCC 도입 초기의 해외 오리지널 LCC에서는 직원들의 멀티태스킹이 비교적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승객 입장에서는 활주로에서 이루어지는 조종사와 정비사의 멀티태스킹을 쉽게 볼 수 없지만 객실승무원의 활약상은 실로 놀라웠다. 눈썰미가 좋은 탑승객이 공항 발권카운터에서 항공권을 발급받을 때 봤던 직원이 비행기 탑승 전 게이트에서 항공권 확인을 하고 있었고, 탑승 후 좌석에 앉으니 이번엔 객실승무원이었다는 마술 같은 사실이 LCC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이다.
K-LCC에서는 진에어가 멀티태스킹을 공식적으로 처음 도입했다. 진에어는 2008년 취항을 앞둔 시점에 "직원의 멀티태스킹 능력은 비용을 줄여 혜택을 고객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으로 본연의 임무 외에도 유사 분야를 넘나드는 1인다역 시스템을 운영할 계획이다. 대표이사도 영업현장에서 활동하고, 객실승무원은 승객이 탑승할 때 게이트에서 탑승권을 체크하는 역할부터 기내청소까지 다양한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직원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수행하는 멀티태스킹은 LCC의 고전적인 운영방식이었다. 때문에 K-LCC들도 취항 초기에는 멀티태스킹 도입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대부분의 K-LCC들은 취항 초기 수 년 동안 적자에 시달려야 했고 이에 따라 임직원들의 무한희생이 강요되었다. 직원들은 미래에 희망을 걸고 기존항공사보다 적은 급여에도 불구하고 입사했지만 수익이 날 때까지 수년째 급여 인상이 중단되거나 쥐꼬리만큼이었다. 승진심사도 매우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고 직원복지도 남의 나라 얘기였다.
당시는 주52시간 등 법적 근로조건이 열악했던 시대였던지라 매일 야근이었고 주말에 출근하는 직원도 많았다. 게다가 회사는 해외 LCC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고 이를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적용하느라 좌충우돌이었다. 적자 상태라는 이유와 설립 초기라는 명분이 맞물리면서 직원수도 충분치 않았다. K-LCC 설립 초 입사한 직원들은 경력직이든 신입이든 가리지 않고 한 사람에게 주어진 업무량이 흡사 한 개 팀 수준이었다. 악조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직무를 벗어난 다른 직무까지 요구하는 것은 엄두를 못냈다. 현실적인 사정으로 멀티태스킹까지는 못해낸 것이라 보아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수익이 난 이후에 일부 K-LCC 사이에서 멀티태스킹을 실현시켰다. 그 같은 사례는 객실승무원을 대상으로 일본노선에서 이루어졌다. 해외 현지공항에서 항공기가 도착해서 다시 출발하기까지 지상에 체류하는 시간인 그라운드 타임(Ground Time)에 중국노선이나 동남아시아노선에서는 현지공항의 지상조업사에게 기내청소를 맡겼지만 일본노선에서는 불가능했다.
K-LCC들이 일순간에 경쟁적으로 일본 각 공항에 취항하다 보니 일본 지상조업사가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요구한 것이다.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초기 한일노선의 K-LCC들은 할인경쟁을 하느라 승객들에게 파격가의 할인운임을 받았고,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요구하는 일본 지상조업사의 뜻을 그대로 들어주면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최악의 형편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일본업체에게 지상조업을 맡기게 된 K-LCC들은 한 푼이라도 절약하기 위해 일본 현지공항에서의 기내청소를 해당 항공기에 탑승한 4명의 객실승무원에게 맡겼다. 국제선 객실승무원들은 승객이 내리고 난 후 쉬지도 못하고 짧은 그라운드 타임 동안 청소와 정리정돈을 말끔히 마친 후 새로운 승객을 환한 미소로 다시 맞았다.
-양성진 항공산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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