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기의 기령과 안전성의 관계는 항공사들의 '마케팅'일 뿐 특별한 상관조차 없다는 것이 항공업계의 정설이자 상식이지만 이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게다가 항공기 기령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나 오해를 오히려 국토교통부가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조금 지난 2015년 5월 국토교통부는 당시 8개 국적항공사와 '20년 초과 경년항공기 안전관리를 위한 자발적 이행 협약'을 체결했다. 항공기의 노후화 방지를 통해 안전관리를 대폭 강화하고 연료효율 개선이 협약 체결의 배경이었다. '자발적 이행 협약'이라는 표현이 있어 규제는 아니라지만 '노후화 방지를 통해 안전관리를 대폭 강화한다'는 문구는 우리 국민이 기령과 항공안전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오해를 살 만했다.
국토교통부는 항공교통 이용자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항공사 이용 전 선택에 도움이 되게 한다는 목적으로 2012년부터 매년 우리나라에 취항하는 국내외 항공사의 기령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3년 4월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적항공기의 약 15%가 연식이 20년이 넘은 '경년(經年)항공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더해 아시아나항공은 장거리 노선인 미주와 유럽 노선에 취항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미주 노선에는 시애틀과 호놀룰루, 유럽 노선에는 파리·이스탄불·로마·바르셀로나 등에 취항해 있다고 했다. 대한항공은 미주와 유럽 노선을 제외한 노선 대부분에 경년여객기를 투입했다는 내용도 있다.
2023년 4월4일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항공운송사업자 '안전도 정보'에 따르면 2022년 12월31일 기준 국내 11개 항공사가 보유한 항공기는 총 366대이다. 이중 경년항공기는 대한항공(31대), 아시아나항공(13대), 에어인천(4대), 제주항공(3대), 진에어(3대) 등 5개사에서 여객기와 화물기를 포함해 54대로 전체의 약 15%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공업계의 글로벌 상식은 항공기는 정해진 사용기한이 없다. 주기적인 정비와 부품교환 등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굳이 20년이 넘은 항공기를 경년항공기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경년(經年)'이란 말의 뜻은 '해를 보냄', '해가 지나감'이다. 말의 뜻대로 해석하면, '사용연한이 지났다'는 추측이 들게 한다. 그리고 국토부는 항공기가 낡아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관리·감독하고 있다면서 경년항공기에서 자주 발생하는 결함유형을 특별관리항목으로 지정하고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항공안전 전담감독관을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쯤 되면 이율배반이다. 항공기는 정해진 사용기한이 없다면서 정작 주무부처는 기령 20년 초과 항공기를 어느 항공사가 몇 대 보유하고 있고, 1년 동안 몇 편을 운항했고, 어느 노선에 투입되었는지까지 세세히 공개한다. 그러면서 "공개된 항공사별 안전도 정보가 국민들이 항공교통 이용 때 안전도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2023년 7월19일 국토교통부는 코로나19로 위축됐던 항공수요가 회복되면서 2022년 국내 항공사들이 항공안전에 투자한 비용이 전년에 비해 4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특히 항공사들의 경년항공기 교체에 따라 항공기 평균기령이 2021년 12.9년에서 2022년 12.1년으로 0.8년 개선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22년 항공안전 투자내역 주요 내용 중 경년항공기 교체 항목에서 큰 폭으로 투자 확대가 이루어져 대한항공과 진에어가 각 2대,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이 각 1대 등 총 6대의 경년항공기 교체를 통한 기령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공개했다.
기령이 높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비전문가적 발상이 항공당국의 이 같은 세세한 정보 공개로 말미암아 오히려 뒷받침이 된 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국토교통부 홈페이지 '국토교통상식'에는 "항공기 사용연한이 정해져 있지 않는 이유는 항공기에 사용되는 모든 부품을 주기적으로 정비하여 사용한계가 있는 부품을 교환하거나 상태가 나빠지는 부분은 수리하여 항공기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므로 아무리 오래된 항공기라 할지라도 정비가 잘 수행된 항공기는 안전한 성능에는 문제가 없으므로 계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항공기 기령과 사고는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 학술적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2014년 10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R. 존 한스만(R. John Hansman) 교수가 발표한 논문 '항공기 기령이 항공안전에 미치는 영향 분석(Analysis of Impact of Aircraft Age on Safety for Air Transport Jet Airplanes)'에 따르면 1959년부터 2012년까지 사상자가 발생한 전체 항공기 사고 중 기령이 20년 이상 된 항공기는 18%를 차지했으며, 오히려 8년 이하의 항공기가 47%를 차지했다. 또 20년 이상 된 항공기 사고 중 상세내역을 살펴보면 그 마저도 화재가 7.7%를 차지했으며, 이들 사고 중에는 격납고에서 일어난 화재나 강한 외부충격을 받아 생긴 사고 등도 포함됐다.
국가별, 지역별 항공사고 발생원인에도 차이가 있다. 20년 이상 된 항공기 중 직접적인 기체결함으로 사고가 난 확률은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이 미주, 유럽 등을 포함한 전 세계 평균보다 낮았다.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일어난 사고 역시 승무원의 훈련 미숙이나 철저하지 못한 규제 등 다른 위험요소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논문의 핵심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 어느 선진국에서도 항공안전을 위해 항공기 기령을 말하는 나라는 없다. 또한 기령을 규제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들 나라에서는 노후항공기가 안정적인 운항을 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운항주기와 운항시간 등의 누계로 항공기를 관리해 기계 자체의 구조적인 특징상 일어날 수 있는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우리나라 정부도 항공안전을 위해 항공기 정비부터 승무원의 훈련 등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한 관리 감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항공기 기령을 항공안전을 평가하는 주요 척도 중 하나로 삼는 것은 대조적이다. 평균기령이 한국 국적사보다 높다고 해서 미국 국적사들이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없듯 항공기 기령을 항공안전 척도로 삼는 것은 비전문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나아가 이율배반에 다름 아니다.
-양성진 항공산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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