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가 경제선진국에 진입하며 한국과 한국인이 지구촌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21세기 들어서서부터는 우리의 문화와 예술도 그야말로 획기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더니 이제는 K-Culture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가 인정하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BTS를 비틀즈로 읽어내는 사람은 이미 구세대의 사람이다.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오징어게임이 NetFlix 채널에서 최초로 대중들과 만났다고 하여 이 놀라운 작품이 한국인의 창의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동양인에게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영국축구, EPL의 득점왕을 한국인이 차지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더니 어느새 세계 최고의 Centre-Back 명단에도 한국인의 이름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축구의 FIFA랭킹이 세계 1위는 아니다. 놀라운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몇 달간 각자의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장인 2분과 특별한 일들로 연결이 되어 비교적 빈번하게 의논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중 한분이 국가무형문화재 107호 누비장 김해자 선생님이다. 대략 20년 전에 처음 만났으니 사람 사귀는 일에 재능이 부족한 필자에게는 짧지 않은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 이분을 만난 곳은 경복궁 동편,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변한 국군통합병원 인근의 조촐하지만 장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누비작품 전시장 겸 작업실이었다. 산과 들에서 직접 채취한 재료들로 손수 우려낸 전통차 한잔을 나누며 맑은 눈빛으로 우리 누비옷에 대한 진한 애정을 조곤조곤 풀어내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필자가 중국 북경의 한국문화원장으로 재임 시에는 자신의 귀한 누비작품들로 "한국누비옷 특별전"을 열어주었고 현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누비옷을 지어보는 체험강의도 직접 진행하며 멋지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 후에도 가끔씩 만나 뵐 기회가 있었는데, 몇 달 전, 아주 특별한 내용의 통화를 하게 되었다. 좋은 기회가 생겨서 누비교육 및 전시를 할 수 있는 별도의 건물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한번 만나서 구체적인 내용을 상의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에 있던 전시실 겸 작업장도 아쉽게 정리를 하고 경주에서도 꼭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힘들어 하던 안타까운 형편을 알고 있던 터라 본인 이상으로 기뻤다.
지난 10월 15일 강남의 봉은사 선불당에서 열린 김해자 누비옷 특별전에 참석했다. 인사말씀을 들으며 가슴이 아팠다. 능력이 부족해서 그 말씀을 온전히 전할 수는 없는데 대략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젊어서는 한복작업을 했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라 많이 힘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전통 누비옷을 접하게 되면서 이 옷을 만들면 형편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되어 누비옷 작업을 시작했다. 아주 오랜 시간, 평생에 걸쳐 이 작업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형편이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한마디로 빈손이다. 그래도 누비옷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제대로 알게 되었으니 후회는 없다. 다만, 그동안 수많은 중요인사들에게 한국 전통 누비옷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전수교육관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만약에, 단 한사람이라도 우리 누비옷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했더라면 진작 이 꿈이 이뤄졌을 것이다."
비록 필자가 김해자 선생님이 만났던 그 중요한 인사들 중에 속하지는 못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그리고 문화재청에서 그 업무의 일부를 책임지고 있었던 전력이 있는 필자로서는 부끄러움과 함께 큰 책임감을 통감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제자들과 함께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한국 전통 누비옷의 밝고 영예로운 내일을 위해 더욱 노력하자며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김해자 선생님을 보면서, 앞으로 진행할 김해자 누비장 전수교육관 건립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 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더해야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최근 1년여 동안, 그분의 작업현장들을 직접 찾아가 보고, 그 작업에 관한 본인의 굳은 의지와 깊은 생각들을 직접 들어보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장인의 지혜를 직접 확인하면서 필자에게 또 다른 측면에서 감명을 준 명장이 있다. 무화장(巫花匠) 이영희 선생님이 그분이다. 이 분의 직업과 작업을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아마도 "남자무당 새남굿 이수자 무화장(巫花匠) 이영희" 라고 할 수 있겠다.
이영희 선생님은 국내에서 제작되어 사용되는 종이꽃(紙花)중에서 무속에 사용되는 지화, 즉 무화(巫花) 제작 분야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극소수 명장 중 한분이다. 주로 제작하여 사용하는 꽃은 30여종 남짓이지만 이분이 제작할 수 있는 꽃의 종류는 무려 100여종을 넘어선다. 한마디로 무속과 불교의식에 사용되고 있다고 알려진 181종의 꽃, 그 모든 꽃이 이분의 손끝에서 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장인의 손끝에서 마술처럼 피어나는 종이꽃 외에 보는 사람들로부터 경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 망과 전, 복식 등 각종 종이 작품들이다. 오로지 종이를 접고 잘라서 만들어내는 팔보살망, 넋전, 금전, 은전 및 각종 복식 등의 제작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경탄의 소리를 낼 수밖에 없게 된다. 중국의 전지공예(剪紙工藝)가 명품공예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이영희 명장의 종이작업도 결코 이에 뒤지지 않는 명품공예다.
장인의 작업이 더욱이나 특별한 것은 모든 작업이 본인의 머릿속의 설계도에 의해서 진행될 뿐 사전에 도면이나 본을 떠서 준비하는 일이 일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 공정이 머리에 담기고 손에 익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 상상조차 쉽지 않은데 장인이 웃으며 전하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다. "어려서 이 꽃 일을 배울 때 스승님께 하도 많이 머리를 맞아서 제 머리가 나빠졌어요."
대다수 장인들이 그렇듯이 이영희 선생님도 잇속에 어둡고 셈에 약하다. 손마디가 굵어지고 귀가 어두워질 때까지 오직 일에만 빠져 살아왔다. 최근 들어서는 힘에 부쳐 옛날 같지는 않지만, 누가 꽃이 필요하다고 하면 두말 않고 나서서 밤샘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이 좋아서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자체에서 무형문화재 지정을 하겠다며 신청하라는 말에도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더 시세에 밝았더라면 좋았을지 모르겠다는 후회는 아니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한다.
요즘 장인은 스승님에게 매맞아가며 배운 이 꽃 일이 자신의 대에서 끊어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런 걱정 끝에 필자가 몸담고 있는 행정사법인 CST에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의 꽃 일에 대해 종합적인 조사연구 및 정리와 세부적인 평가를 진행해서 이 후에도 필요한 사람들이 잘 찾아서 배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탁월한 실력과 성실함을 고루 갖춘 연구진들 함께, 풍부한 경험과 깊이 있는 지식으로 인정받고 있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조사연구 및 정리, 평가작업을 진행했다. 작업이 진행되면서 장인의 무화작업이 보유한 문화적 가치와 예술적 향기가 분명하게 들어나기 시작했다.
좋은 보고서를 만들어 달라는 장인의 요구를 만족시켜 드릴 수 있는 수준의 성과는 도출했다.
그렇지만 이일을 여기에서 마무리하고 종결하기에는 남아있는 과제가 너무나 무겁다. 심기일전하여 국가가 제도적으로, 무관심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주는 작업에 도전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문화적 선진 국가는 우리가 세계 속에 빛나는 위대한 K-Culture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K-Pop이나, 영화, 드라마, 게임 등과 같이 서구의 문화와 예술에 힘입은 장르들이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를 때 그 이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국가의 무관심, 제도적 허점 등 다양한 사유로 인해 자신들이 쏟아낸 노력의 결과로 당연히 받아야할 국가로부터의 지원이나 작은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고, 침묵 속에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우리의 전통문화와 예술, 장인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박영대 행정사법인 CST 공동 대표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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