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획 '용기의 時代'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https://thumb.mtstarnews.com/cdn-cgi/image/f=avif/21/2025/08/2025080410470342647_1.jpg)
작품명: 양만춘(테라코타)
작품사이즈 250mm + 500mm + 450mm(h)
송경흡 작가의 말
왜 다시 양만춘 인가?
그는 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잡은 연개소문을 따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고구려 조정으로 부터견재를 받은 인물이지만, 당태종이 이끄는 당의 대군을 안시성에서 막아내고 고구려를 지켰다.
그의 위대한 승리는 우리민족 전쟁사의 중요한 한 장면으로 대하사극의 단골소재였다.
양만춘이 이룬 성과는 그가 단지 전술에 뛰어난 장수만이 아니라 안시성의 모든 이들의 믿음을 끌어낼 수 있는 진정한 리더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자주적이라는 말,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 외세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말은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황된 말일 뿐이다.
양만춘은 그 모든 것을 증명한 불가사의한 영웅이다.
잊혀졌던 영웅 양만춘
고구려 장수 양만춘은 642년(보장왕 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에게 복종하지 않아 공격을 받았으나 성을 잘 지켜냈다. 645년에는 1차 고구려-당 전쟁에서 안시성 성주로 당 태종 이세민의 공세를 막아냈다. 이를 제외한 그의 생애는 모든 것이 미상으로 그 이름조차 현전하지 않아 그저 안시성주로 불리기도 했다, 양만춘의 이름이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의 민간전승에 의해서다.
양만춘의 전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양만춘(안시성주)이 쏘아올린 화살에 맞아 한쪽 눈을 잃었다는 전승이 있다. 이 스토리는 14세기 고려의 시에 등장하면서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당대 어느 사서에도 양만춘의 이름과 전설 같은 그의 무용에 관한 이야기 기록은 없다. 다만 당나라 그리고 그들의 후세가 자신들의 수치로 여겨 고의적으로 누락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조선시대 학자들도 양만춘의 이름이 역사에서 지워진 이유를 황토인(한족)들의 고의적인 삭제로 유추하고 있다.
현전하는 기록 중에서 양만춘(梁萬春)이란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16세기 명나라의 소설 '당서지전통속연의'(당서연의)에서다. 조선의 문인들이 당서연의를 채용하면서 양만춘이란 이름이 널리 퍼졌다.
김부식의 평가
삼국사를 편찬한 고려 대신 김부식의 양만춘에 관한 평가가 있다. 김부식은 삼국사 고구려본기에서 "당 태종은 고명한 불세출의 임금으로 난을 평정함은 탕왕과 무왕에 비할 만하고 통치는 성왕과 강왕에 가까웠다. 용병술은 그 기묘함이 끝이 없고 향하는 곳마다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럼에도 동방 정복만은 안시에서 패하였으니 그 성주는 가히 비범한 호걸이라 하겠다. 다만 사서엔 그 성명조차 전하지를 않으니 양웅이 제나라와 노나라 대신들의 이름은 사서에 남지 않았다고 한 바와 다르지 않다. 심히 애석하도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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