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https://thumb.mtstarnews.com/cdn-cgi/image/f=auto/21/2025/10/2025102013122776164_1.jpg)
작품명 : 바보 온달
작품사이즈 : 250mm + 500mm + 450mm(h)
송경흡 작가의 말
바보 온달,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는 우리역사의 오래된 고전이다.
바보온달이 평강공주의 조력을 받아 전장에서 이름을 날리고 왕의 부마가 되어 용맹한 장군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워낙에 고전의 내용자체가 축약이 되어있어 자세한 서사의 디테일은 알 수 없다. 이 고전은 현대의 드라마 구조에서도 잘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남자의 입신양명 스토리다. 온달이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죽는 장면도 전형적인 비극 스토리에 잘 들어맞는다.
온달은 바보라기보다 비천한 신분으로 인한 불우한 신분을 바보라는 말로 비유했을 뿐이다. 그가 성장한 후 장군의 위치에 올라 신라군에 큰 위협이 되었다는 점에서 뛰어난 전략적 자질도 보인다. 가리워진 고전의 이면을 살펴볼 수 있다.
점점 신분제 사회로 회귀하는 듯한 현대의 흐름에서도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는 특이하고 흥미로운 러브 스토리임에 분명해 보인다.
온달은 전성기 신라를 위협했던 고구려의 장수였다.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했겠지만 공주가 그와 결혼을 결심할만큼 우리가 모르는 매력이 있었던 건 아닐까? 자기관리와 성공의 자질을 평강 공주가 미리 알아봤던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온달은
온달(?~590년)은 고구려의 무신으로, 제25대 태왕 평원왕(平原王) 사위다. 평강공주와 온달설화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고구려의 장수이자 봉성 온씨의 시조. 일반인들에겐 바보의 대명사 혹은 거기서 아내의 내조와 본인의 노력 덕분에 성공한 입지전적의 인물로 여겨진다.
온달은 대기만성형의 인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강공주와 결혼하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전공을 세워 벼슬길에 올랐으며 영양왕대까지 활약했다.
온달에 대한 평가는 '마음은 순수하였다' 또 '온달은 가난해서 산을 뒤져서 먹고 살았는데 귀한 약재를 발견해도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의 형편을 감안해 그냥 주거나 적은 대가만 받았다'고 전해진다.
사서에서의 온달
삼국사기에서는 후주(북주)의 무제가 군사를 출동시켜 요동을 공격하자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배산 들에서 맞아 싸웠다. 그 때 온달이 선봉장이 되어 용감하게 싸워 수십여 명의 목을 베니, 여러 군사들이 이 기세를 타고 공격하여 대승하였다고 전한다.
삼국사기 온달 열전에서는 온달의 용맹함을 써내려갔다. 온달은 '지금 신라가 우리의 한수 이북의 땅을 차지하여 자기들의 군현으로 삼으니, 그곳의 백성들이 애통하고 한스럽게 여겨 한시도 부모의 나라를 잊은 적이 없사옵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저를 어리석고 불초하다 여기지 마시고 병사를 주신다면 한번 쳐들어가 반드시 우리 땅을 도로 찾아오겠나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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