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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 '용기의 時代 '] 송경흡12. 고구려 기마군단장 '강이식'

발행:
채준 기자
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
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


/사진제공=송경흡작가

작품명 : 강이식

작품사이즈 : 250mm + 500mm + 450mm(h)


송경흡 작가의 말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성씨 중에 진주 강씨가 있는데...

바로 고구려의 강이식을 원조로 하고 고려 때의 강감찬이나 강민첨들을 중시조로 본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성씨들은 대부분 고려 때를 그 시작점으로 보는데, 진주 강씨는 그 시점을 강이식으로 잡고 있는 것이다.


강이식은 고구려의 장군으로

불과 5만의 군대로 수나라 30만 대군을 요동 땅에서 격퇴시켰고

후일 을지문덕과 함께 '살수대첩'으로 수나라군 100만을 무찌른 장군이었다.


고구려는 그 용맹함으로 우리 역사 속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강이식은 을지문덕에 앞서 중국을 격퇴한 그 시작점과 같은 장군이었다.

그가 승리가 있었기에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있었고... 훗날 강감찬의 귀주

대첩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강이식장군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한 이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다. 그가 쓴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강이식의 묘소가 비석과 함께 만주 심양현에 남아있다고 한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 방치된 그의 비석과 묘가 현재까지도 존재하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강이식은 양만춘과 함께 우리 역사 속 잊혀진 대표적 인물 중 한명이다.

신채호 선생이 홀로 만주를 떠돌며 강이식을 연구한 이유역시 잊혀진 영웅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의 의미였으리라, 내가 고구려의 영웅들을 작업 대상으로 한 이유와 같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그 잊혀진 영웅의 용기를 기억하며....


/사진제공=송경흡작가


강이식은


수나라 문제를 참혹하게 대패시킨 병마원수 강이식 장군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나 자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진주 강씨 문중의 기록에 따르면 영양왕 시대 고구려 병마원수 강이식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수나라 문제가 고구려 영양왕을 신하로 칭하며 수나라에 굴복하라는 글을 보내왔을 때 주전파였다. 강이식은 "이같이 오만무례한 글은 붓으로 회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써 회답해야 한다"고 개전을 주장했다.


고구려는 선제공격을 했다. 영양왕은 강이식을 병마원수로 삼았다. 강이식은 요를 넘어 선비족의 나라인 수로 진격했다. 어쩌면 이 출병은 범 선비계의 주도권 싸움일 수도 있었다. 공격군은 고구려 최정예 기동군 5만과 고구려의 형제인 말갈 기병 1만이었다. 강이식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16년 간 투쟁의 시작점에 선 것이다.


고구려의 목표는 아직 국가로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수나라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것이었다. 강이식의 기동군단은 요의 서쪽을 초토화 시키고 철수했다. 수나라 문제는 넷째 아들 양과 공신 고경 등을 지휘관으로 수군 7만과 육군 30만 명의 대군을 조직해 대대적인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


수나라 30만 대군을 맞이한 강이식은 6만의 병력으로 요충지를 확실하게 점거하고 기병부대를 이용한 기동전으로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유린했다.


/사진제공=송경흡작가


사서에서의 강이식


'조선상고사'에서는 강이식의 무덤이 중국 심양현 봉길선 원수림역에 있으며, 무덤 앞에 '병마원수강공지총(兵馬元帥姜公之塚)'이라고 새겨진 큰 비석이 있었다고 전한다.

신채호 선생은 강이식장군에 관해 '서곽잡록'(西郭雜錄)과 대동운해(大東韻海)의 기록을 참고했다고 전했다. 신채호 선생 시절 있던 사서들 중 다수가 현재 자취를 감춘 것은 진실이다.



/사진제공=송경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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