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가 예술 작품을 소개하기 위한 [갤러리 '용기의 時代']를 송경흡 작가와 함께 진행한다. 송경흡 작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인 '장군상'을 통해 역사속의 인물을 재해석하고 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 '용기의 시대'는 그간 송경흡 작가가 완성한 작품들을 작가 스스로 소개하며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게 된다. 연재되는 갤러리의 내용은 저자의 의견임을 밝힌다.( 편집자주)](https://thumb.mtstarnews.com/cdn-cgi/image/f=auto/21/2025/11/2025111711170362566_1.jpg)
작품명 : 내물 마립간
작품사이즈 : 작품사이즈 250mm + 500mm + 450mm(h)
송경흡 작가의 말
'내물 마립간'
내물 혹은 나물왕으로도 불리는 '내물 마립간'은 김씨 성을 시조로 하는 새로운 신라 왕조의 시작, 흔히 신라 중흥기를 시작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김이라는 성은 '금(金)'이라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진 금속 소재에서 왔다고 추정되고 있는데, 내물 마립간은 현재 대한민국에 가장 많은 성씨인 김씨의 시조라고 불리울만한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내물마립간으로 시작되는 김씨의 일파들이 북방에서 남하한 이주민이라는 설들은 그들이 남긴 문화재들... 특히 금관으로 대표되는 여러 금 관련 공예품들이 과거 스키타이로 불렸던 중앙아시아 유목왕조의 것들과의 유사성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디서 왔던, 치열한 경쟁 끝에 신라의 주력세력이 되었고 당시 고구려 백제에 비해 가장 나약했던 신라의 중흥기를 이끌며 결국 백제와 고구려까지 무너뜨리고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내물마립간'의 시기는 백제의 '근초고왕' 고구려의 '광개토왕'과도 겹치는 시기인데. 내물마립간은 강대국들의 압박을 슬기롭게 버티며.... 결국 신라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기틀을 세운 인물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역사 속 영웅들은 고구려의 장군들이었고 신라는 철저하게 소외되어있었다. 그러나 나이를 들면서 김유신, 김춘추로 대표되는 신라의 장군들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구려는 결국 당의 공격에 무너졌지만, 신라는 그런 당을 격퇴하고 스스로 그들의 주권을 지켜냈기 때문이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산까지 다 받아들여 오늘날 대한민국의 토대가 된 시작이다.
그 시작을 만든 사람이 바로 '내물마립간'이기에 신라의 첫 인물로 그를 선택한 것이다.
내물왕
내물왕(356~402)은 신라의 제17대 왕이며 신라가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인물이다. 특히 김씨의 독점 왕위 세습을 확립했는데 박-석-김 씨족이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던 방식에서 벗어났다. 내물왕 이후 신라의 왕위는 대부분 김씨에 의해 독점적으로 세습되었다.
또 군장의 칭호를 '이사금(尼師今)'에서 '마립간(麻立干)'으로 변경하였다. 마립간을 마립칸의 음차 표기로 판단하는 이유는 고대사회가 뜻보다 음차로 이름을 표기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대군장' 또는 '통치자'를 의미하며, 왕권 강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특히 김씨 왕위 세습과 마립간 칭호 도입을 통해 초기 연맹 왕국에서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로 발전하는 기반을 다졌다고 할 수 있다.
사서에서의 내물왕
'삼국유사'에서 내물왕은 왕의 칭호로 마립간을 처음 사용한 왕이라고 전한다. 신라 역사의 분기점에 해당하는 임금으로 신라는 후삼국시대까지 계속될 김씨의 왕위 세습과 성골이 확립되었고, 이때부터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삼국사'에서는 이사금 칭호로 나온다. 당시 마립간과 이사금이 혼재 사용됐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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