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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IRA 장벽에 막힌 현대차… '보조금 개편'이 불러온 가시밭길

발행:
김경수 기자
(오른쪽)정유석 현대자동차 부사장과 시메기 도시유키 현대모빌리티재팬 대표/사진제공=현대차그룹
(오른쪽)정유석 현대자동차 부사장과 시메기 도시유키 현대모빌리티재팬 대표/사진제공=현대차그룹

최근 일본 정부가 자국 내 배터리 및 중요 광물 공급망 구축을 명분으로 친환경차 보조금 제도를 전면 개편하면서 일본 시장 재진출 이후 입지를 다져오던 현대자동차의 비즈니스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사실상 '일본판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로 불리는 이번 조치는 성능 중심의 지원에서 벗어나 국가 안보와 자국 산업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어 현지 생산 기반이 없는 현대차에 치명적인 핸디캡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이 단행한 이번 개편의 핵심은 '청정에너지 자동차(CEV) 도입 촉진 보조금' 산정 방식의 대전환에 있다. 기존에는 1회 충전 주행거리와 에너지 효율 등 차량의 기술적 성능이 주요 잣대였으나 2025년부터는 총 200점 만점의 평가 체계 중 '공급망 안정성'과 '국내 투자 기여도', '정비 인프라' 항목의 비중을 대폭 확대했다. 이는 배터리와 희토류를 '특정 중요물자'로 지정하고 자국 내 생산 역량을 강화하려는 일본의 경제안전보장추진법과 궤를 같이한다. 일본 정부는 자국 내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거나 폐배터리 재활용 체계를 갖춘 기업, 그리고 전국적인 정비망을 통해 재난 시 전력 공급이 가능한 기업에 높은 점수를 배정했다. 결과적으로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완성차 업체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조성된 셈이다.


일본에서 시판중인 아이오닉 5/사진제공=현대차그룹

현대차는 지난 2022년 전용 전기차 브랜드와 온라인 판매 모델을 앞세워 일본 시장에 재진출하여 아이오닉 5를 필두로 코나 일렉트릭, 아이오닉 6, 수소전기차 넥쏘까지 투입하며 프리미엄 친환경차 이미지를 구축해왔으나 이번 보조금 개편으로 모델별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주력 모델인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는 배터리 공급망 점수에서 가장 큰 감점이 예상된다. 한국과 중국 등 외부에서 배터리 셀을 조달하는 구조상 일본 내 생산 시설을 갖춘 업체 대비 보조금이 약 30만~50만 엔가량 삭감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브랜드가 최대 130만 엔의 보조금을 수령할 때 현대차는 80만~100만 엔 수준에 머물게 되는데 이는 소비자 체감 가격을 300만 원 이상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840만 엔이 넘는 고사양 트림의 경우 '사치재 감액 규정(0.8배 적용)'까지 겹쳐 가격 경쟁력을 상실할 위기다.


엔트리급 전기차로 일본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리던 코나 일렉트릭은 '정비 인프라 및 사회 기여도' 항목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는 온라인 판매를 중심으로 하며 협력 정비망을 운영 중이지만 일본 전역에 촘촘한 직영 서비스 센터를 보유한 내수 브랜드에 비해 점수 획득이 불리하다. 급속 충전기 설치 실적과 재난 시 차량 전력을 공급하는 V2H(Vehicle-to-Home) 보급 실적 등이 점수화되면서 코나의 가성비 전략은 보조금 삭감이라는 암초에 부딪히게 되었다. 수소 강국 일본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던 수소전기차 넥쏘는 정부 정책의 방향 전환으로 인해 더욱 동력을 잃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6년부터 수소차 보조금 상한액을 기존 255만 엔에서 150만 엔 수준으로 무려 100만 엔 이상 대폭 삭감했다. 수소 인프라 구축 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지원금마저 급감함에 따라 넥쏘를 통해 수소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려던 현대차의 장기 플랜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현대차 캐스퍼EV/사진제공=현대차그룹

현대차는 이러한 환경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 현지 지자체와의 재난 대응 파트너십 체결, V2H 기술 홍보 강화, 독자적인 충전 네트워크 확충 등 점수 보완을 위한 자구책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일본 내 생산 기지나 배터리 합작법인이 없는 상태에서 제도적 한계를 돌파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결국 현대차의 일본 비즈니스는 성능과 디자인이라는 제품 경쟁력을 넘어 일본 정부의 폐쇄적인 보조금 정책이 만든 '보이지 않는 관세'를 어떻게 상쇄하느냐에 사활이 걸려 있다.


한편, 현대 모빌리티 재팬에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의 장남 정모씨가 평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가 경영 수업의 첫 무대로 일본 법인(HMJ)를 택했다는 사실만으로 현대차가 얼마나 일본 시장의 전략적 가치를 중요하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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