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한다. 오는 29일 개봉을 앞둔 영화 '러브픽션'(감독 전계수) 첫 시사회가가 끝난 뒤, 기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첫번째 잡생각은 '아니 효진씨, '공블리'에서 '겨털녀'로 괜찮겠어?' 따위의 것이었다.
하정우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이 영화에서 빨간 입술과 세련된 단발머리의 완벽한 여자친구 희진으로 등장하는 공효진(32)은 수북한 겨드랑이 털로 뜻밖의 반전의 선사한다. 아니나 다를까, 직후 간담회에선 시사회 도중 터져나온 웃음만큼 격렬하게 '겨털'과 관련한 질문이 쏟아졌고, 포털사이트에는 공효진과 '겨털'이 첫번째 연관검색어로 뜨기 시작했다.
극중의 털은 당연히(!) 분장팀의 손을 빌린 것이지만, '겨털'이라니 여배우에게 민망한 수식어임에는 틀림없다. 드라마 '파스타'와 '최고의 사랑' 등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로 러블리 공효진, '공블리'로 불리던 와중이라면 더더욱.
"효진씨, '공블리'에서 '겨털녀', 괜찮겠어요?"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 말문을 열었다.
-진짜 괜찮겠어요?
▶사람들이 저를 '겨털녀'라고 아는 건, 문제가 되긴 하겠네요. 그렇긴 하지만 '미쓰 홍당무' 하고도 '공블리' 됐는데, '겨털' 두 신 나온다고 달라질까요? ('미쓰 홍당무'에서 그녀는 안면홍조증에 걸린 못난이로 열연했다) 아, 겨우 '공블리'가 됐는데 스크린 걸릴 생각 하니까 걱정은 돼요. 다행인 건 중간에 두 신만 나오니까 막판쯤 되면 잊어버리지 않으실까요? 시간 지나면 또 잊힐 거예요. 우리나라에 재미있는 일들 많잖아요.
-'러브픽션'은 20대 후반, 30대까지 딱 효진씨 나이 시선에 맞는 연애담인 것 같아요.
▶또래라면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남자가 그 여자를 보면서 영감을 받을 수 있게 옆에 있어달라, 여신이네, 숭고하네,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러고 나서 한 번 자고나선 확 달라지죠. 찍으면서도 막 화가 나고 그랬어요. 연기한 거 보면 진짜 목이 막 빨개졌더라고요. 여자가 화나서 '너 후회하지마' 하는데, '그딴 거 안 해' 그래놓고는 '나 처음 아니지' 하는 남자, 최악이죠 최악. 그냥 너무 리얼하고 포장 없는 연애담이라 리얼해요.
-10대나 20대 초반이 봐도 공감을 하려나요?
▶'얘들아 이거 좀 봐라' 하고 싶어요. 남자들이 저렇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은데.(웃음)
-일리있는 얘기네요. 공감!
▶저는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대사가 매력이었어요. 맛깔스럽고 기막히게 쓰셨더라고요. '희진 낭자' 이러면서 보낸 편지 있잖아요, 얼마나 웃기던지. 용감한 남자가 미인을 얻는다고요? 아니에요. '재미있는 자'예요. 영화에도 나오잖아요. 유머야말로 여자들의 영원한 친구라고.
여자는 작가라고 자기를 설명한 남자의 편지를 읽고 그 남자의 가능성과 능력을 동시에 알아봤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지지해주고 글을 쓰도록 응해주죠. 그렇게 예전과 달리 살기 시작하면서 이 여자는 평범한 여자가 되어버려요. 저는 그게 참 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사랑하게 된 순간 180도 처지가 뒤바뀌어서 여자가 비굴해지기도 하고, 구차하게도 굴고, 어디냐고 캐묻고. 요새는 위치추적도 한다면서요. 모든 게 사람들이 한번쯤 겪었을만한 일 아니에요? 아마 여자친구한테 옹졸하게 굴다가 버림받았던 모든 남자들도 공감하실 걸요.
-하정우도 정말 얄밉더라고요.
▶저도 연기하면서 그랬어요. '오 왜 왔어~' 이런 대사 할 때 '오빠, 여자들이 이런 거 되게 싫어해', '안티 백만 생겨'. 완화시켜도 얄밉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게다가 연기를 기가 막히게 잘 하시니까.
-연기 탓이기도 하겠지만, 영화 찍다 하정우와 공효진이 사귄다 하는 소문도 났는데요.
▶정말 재밌는 가십거리죠. 양쪽 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있고. 저도 들었어요. 다만 영화의 흥행에 도움이 될까 해서 굳이 막지 않고 있는 거죠. 그렇게 잘 어울리게 나왔나보다 하고. 어쨌든 사실 무근이고, 정말 안될 얘기예요. 승범이랑 정우 오빠랑 다음 영화를 같이 찍는데…. (공효진의 남자친구 류승범과 하정우는 차기작 '베를린'에 함께 출연한다.)
저는 A형 남자 안 좋아해요. B형 남자가 좋아요. 승범이는 B형이에요.(웃음) 제가 직설적인 A형이라 다른 A형한테 상처를 주거든요. 이야기를 뱉는 동시에 '아 이러면 상처받을텐데' 하고 걱정을 시작해요. 정우 오빠는 전형적인 A형이에요. 저 힘들어요.
-류승범씨는 '러브픽션' 봤나요?
▶승범이는 정말 프로예요. 자기 영화 촬영 중이라 안 봤어요. 또 다른 것들 때문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것 같고요. 또 다른 가십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원래 시사회 오는 걸 안 좋아해요. 따로 극장에 가서 보지. 저희는 이제 알콩달콩한 거 봐도 시기할 때는 다 지났어요.
-캐릭터에 쏙 녹아드는 연기 스타일, 그걸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정우 오빠한테 물어봤어요. '나는 단점이 뭐야?' 오빠가 '나름의 적당한 매력이 있어' 그러더니 '대사를 효진이가 조금 일찍 외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하는데, 뜨끔하더라고요. 저번에 차승원씨가 시상식에서…. (차승원은 지난 MBC 연말 시상식에서 '대사는 못 외우지만 탁월한 연기를 하는 효진씨'라고 눙친 적이 있다.)
반성, 보다는 깊이 고민하고 있어요. 내가 즉흥적이어서 같이 연기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나. 카메라가 가까이 오면 저도 생각지 못하게 집중이 될 때가 있어요. 앞에 다른 사람 연기할 때는 앞에서 담담하게 해 놓고 나한테 카메라가 오면 막 눈물이 날 수도 있어요. 그래서 '파스타' 때 선균이 오빠가 다시 한다고 한 적도 있고. 고민 중이에요. 자기 혼자 연기한다고, 내가 혹시 다른 사람을 배려 안하고 내 연기만 하는 게 아닌가. 그거 정말 나쁜 거잖아요. 조금 혼란스럽기도 해요.
-드라마, 영화 연이어 해 보니 어디에 마음이 더 가던가요?
▶저는 기가 막히게 두 개를 다 잘 하고 싶어요. 영화는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드라마는 또 대중적인 걸 하면서. 그렇다고 나 나오는 영화는 다 어렵고 마니아성이 짙을지도 몰라 이런 신뢰가 나오면 곤란하니까, 관객들도 보셨으면 하니까 적절히 두 가지를 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러브픽션'도?
▶'러브픽션'은 관객몰이 좀 하려고 찍은 영화라고요. '하정우가 대세인데… 겨드랑이 털을 보고싶어 할지도 몰라' 이러면서. 비수기이긴 하지만, 하정우가 비수기를 살린 남자배우라면서요.(웃음)
여세를 몰아서 나도 20억 넘는 영화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가도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는 작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결심했어요. 다작을 해야겠다고. 일에는 에너지가 몰릴 때가 있다잖아요. 지금은 '또 뭘 만나게 될까' 하는 생각이에요. 긍정의 에너지가 저한테 다 있는 것 같고. 전성시대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이 그런 것 같아요. 더 용감하게 움직여보고 싶어요.
-'용감하게'라는 말이 와 닿네요.
▶좀 용감하게 움직여보려고요. 홍당무 분장 하고, 겨드랑이 털 붙이고 '어떻게 저걸 해' 하지만 그런 거 해도 문제 없다는 거, 박수받을 수도 있다는 거, 그런 긍정적인 사례를 만들고 싶기도 해요. 그걸 핑계로 또 도전하는 거기도 하고요. 요새 여배우들이 용감해지고 있잖아요. 이것도 성공적 사례로 만들어서 기피했던 배우들이 '왜 나 걱정했지', '사람들 너그럽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얼마나 더 다양해지겠어요. 인생이 또 자유로워지고요.
-그럼 영화 보실 분들에게 요런 영화다, 홍보 한 말씀 남겨 주세요.
▶우리 영화는 미래지향적 로맨틱 코미디예요. 그냥 알콩달콩한 순정만화를 보러 오실 거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세상 이렇게 솔직하고 적나라할 수가 없어요. 못났다 싶은 남자랑 자기주장 강한 여자가 싸우고 하는 영화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쯤은 만나야 할 로맨틱 코미디라는 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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