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전날 밤 영화를 어떻게 설명할 지 생각해봤다는 한수연은 이런 저런 문장들이 빼곡히 적힌 노트를 꺼내들었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도 한수연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스스로도 어두운 역할을 많이 했다는 한수연. 극한까지 치닫는 역할을 연기해 보고 싶다는 한수연의 표정과 목소리는 시종일관 밝았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까지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해지는 것 같은 아이 같은 순수함을 가진 한수연은 '봄 같은 사람'이었다.
◆ "영화를 하는 게 당연했어요"
한수연의 필모그래피의 시작은 2001년 SBS 시트콤 '딱 좋아'다. 그러나 한수연은 스스로 자신의 연기 인생의 시작을 2006년 '조용한 시작'으로 꼽았다. 정말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대하게 된 작품이 바로 '조용한 세상'이라고. 이후 '모던보이' '너와 나의 21세기' '참을 수 없는' '체포왕' 등 분량에 상관없이 항상 스크린을 통해 관객을 만났다.
"제가 생각하는 정식 데뷔작은 '조용한 세상'이예요. 제가 늘 꿈꿔오던 캐릭터였고 그 때부터 영화에 홀린 듯 쭉 영화만 했던 것 같아요. 다행스럽게도 영화를 계속 해 올 수 있었어요. 저는 작품 수는 많아도 인지도가 부족한 편인데 영화는 캐릭터와 잘 맞고 배우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찾아 주신다는 게 정말 다행이에요"
그는 영화 외에도 가수 리치의 '사랑해 이 말 밖엔', 다이나믹 듀오 '거기서 거기' 등 뮤직비디오를 통해서도 얼굴을 알렸다. B.A.P 리더 방용국의 'I Remember' 뮤직비디오를 통해 현재 소속사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고. 뮤직비디오와 영화 중 어떤 작업이 좋은지 묻자 한수연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휴~비교도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제가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영화광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어쩌면 그래서 영화만 계속 했던 것 같아요. 모든 포커스를 맞춘 곳이 영화였고, 영화 현장이 너무 즐거웠고 뭔가 당연했어요. 영화를 해야 한다는 게. 영화를 매력을 아는 것 같아요"
◆ 산보 하듯 가는 영화, 이방인들
한수연이 지난 해 여름 촬영한 '이방인들(감독 최용석)'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에서 한수연은 과거의 아픔으로 고향을 등지고 살아온 연희를 연기했다. 영화 내내 감정을 꾹꾹 누르던 연희는 영화 말미에 가서야 쌓아둔 감정들을 분출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답답할 수도, 지루할 수 도 있는 영화 '이방인들'. 한수연은 자신의 영화를 '산보하듯이 가는 영화'라고 표현했다.
"저희 영화는 오히려 관객이 앞서가고 영화가 관객을 붙잡고 좀 더 머물러 달라고 하는 느낌이에요. 돌 하나 얹으면서 가듯, 산보 하듯이 가는 영화. 요즘 힐링 무비가 많잖아요. 우리 영화도 힐링무비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이방인들'은 한수연이 처음으로 오디션 없이 단박에 출연하게 된 작품. 그가 출연한 '너와 나의 21세기'와 잡지 인터뷰를 본 감독이 러브콜을 보냈다. 당시 시나리오가 완성되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한수연은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연희를 받아 들였다.
"계속 물음표를 달고 촬영했어요. 연희는 뚜렷한 캐릭터가 아니에요. 연희가 똑똑했다거나 태도가 분명했다면 이 영화는 다른 호흡이었을 거예요. 영화의 속도가 연희의 성격인 것 같아요"
◆ "제가 연희라면? 저는 부딪쳐요"
인터뷰 중 종종 함께 연기한 여현수를 '석이'라는 극 중 이름으로 칭하는 한수연에게 아직 연희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만약 한수연이 연희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극복했을까.
"저는 부딪쳐요. 처음에는 참는 스타일이에요. 담아두고 참다가 한 번에 폭발하는데 그때는 저도 떠나요. 싸우고 나오는 게 아니라 도망치듯 떠나요. 마음에 담아두다가 떠나는 게 제 삶의 패턴이었어요. 그게 작년에 달라졌어요. 그때부터는 그때그때 정면 돌파 하려고 해요"
한수연은 '체포왕'을 제외한 출연작에서는 줄곧 어둡거나 사연이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영화에서의 모습과 달리 밝아 보이는 한수연에게 실제 성격을 물었다.
"극과 극이에요. 우울 할 때는 엄청 우울하고 밝을 때는 너무 밝은.. 주위사람 힘들게 하는 성격이에요"
◆ "올 해는 진짜 대표작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올 해로 서른을 맞았다. 많은 배우들이 나이가 들어 연기가 농익기를 기대한다. 한수연도 마찬가지다. 서른이 되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는 한수연에게 30대의 시작인 올 해 꼭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물었다.
"사람들이 대표작을 물을 때 저는 '너와 나의 21세기'라고 대답했어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영화는 아니에요. 올해는 '너와 나의 21세기'를 뛰어넘을 만한 대표작을 만들고 싶어요"
그는 한 해에 한 편씩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매 년 쉬지 않고 일하고 싶다고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어가던 한수연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한 해에 한편 씩 대표작을 만든다는 건 너무 큰 욕심인가요?"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