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져보자. 할리우드 영화속 슈퍼히어로는 어떻게 해서 가공할 힘과 전투력, 정신력을 갖게 됐는지.
#. '수퍼맨 리턴즈'의 슈퍼맨(브랜든 라우스) = 가공할 파워에 아무 설명 없이 하늘까지 날 수 있는 그는 외계행성 크립튼 태생이었다.
#. '토르'의 토르(크리스 헴스워스) = 절대무적 망치 묠니르를 휘두르며 천둥번개까지 마음대로 조종하는 그는 신계 아스가르드 왕국의 왕자였다.
#. '아이언맨'의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틀림없는 지구인이었지만 첨단장비의 결정체인 갑옷(아이언 슈트) 없이는 그는 그저 바람둥이 억만장자일 뿐이다.
#. '퍼스트 어벤져'의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 리더십과 희생정신 하나는 타고 났지만 그의 전투력과 근력, 지구력은 생체공학적 근력강화 프로그램인 '슈퍼솔저 프로젝트'에서 개발한 혈청 덕이었다.
#. '인크레더블 헐크'의 헐크(마크 러팔로) = 미완성 슈퍼솔저 프로젝트의 또 다른 결과물이자 희생양이었다. 캡틴 아메리카와 다른 점은 군인이 아니라 과학자였다는 것.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스파이더맨(앤드류 가필드) =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버지의 옛 동료 실험실에서 우연한 사고로 거미 인간이 됐다.
그랬다. 거의 대다수의 슈퍼히어로는 외계인이었거나 선천적이었거나 사고였거나 첨단장비의 도움으로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 게다가 브루스 배너 박사(헐크)는 슈퍼히어로의 삶을 원하지도 않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배트맨은 여느 슈퍼히어로들과 궤를 달리 한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이러한 배트맨의 차별성이 더욱 부각된다. 그 차별성이란 바로 하드트레이닝을 통한 노력형 슈퍼히어로라는 점과 자신의 다크나이트(Dark Knight) 행세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 철학적 고민을 많이 한 햄릿형 슈퍼히어로라는 점이다.
잘 알려진 대로 고담시 부호 웨인 가문의 외아들로 태어난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은 충직한 집사 알프레드(마이클 케인)와 응용과학부서 책임자 폭스(모건 프리먼)의 지원을 받아 배트맨, 다크나이트가 됐다. 초광폭 타이어가 트레이드 마크인 배트포드는 물론 전천후 장갑차 모양의 배트모빌,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새로 등장한 시가지 전투용 비행체 더배트까지 모든 것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심지어 배트맨의 가면과 슈트, 벨트, 망토까지 전부.
하지만 배트맨이 강한 것은 아이언맨의 아이언 슈트나 캡틴 아메리카의 비브라늄 방패 같은 신무기 덕만이 아니었다. '배트맨 비긴스'에서 동굴 속 박쥐 떼의 습격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나약한 소년 웨인은 라스 알 굴이 이끄는 어둠의 사도들과 함께 하며 전투력과 근력, 체력, 지구력을 갖춘 청년으로 거듭났다. 결국 그가 어둠의 사도 무리에서 빠져나온 것도 그의 지력과 판단력, 세계관이 후천적으로 단단히 성장하고 확고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다크나이트'에서 웨인은 악당 조커(고 히스 레저)와 펼친 처절한 변증법적 논리적·물리적 싸움 끝에 진정한 다크나이트가 됐다. 검사 하비 덴트(애론 에크하트)가 영원한 고담시의 정의의 화신으로 남기를 바란 웨인, 그래서 그가 저지른 모든 악행을 뒤집어쓴 채 망신창이 이미지만을 남긴 채 잠적한 배트맨. 세상에 어느 슈퍼히어로가 이렇게 진지하고 철학적인 고민을 했으며 용퇴의 변을 그렇게나 설득력 있게 토로할 수 있을까.
그래서 배트맨은 가장 강한 슈퍼히어로인 동시에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가장 약한 슈퍼히어로였다. '다크나이트' 이후 8년 동안 배트맨 생활을 안했던 브루스 웨인은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다시 배트맨이 되기 위해 우선 불편한 다리부터 치료를 받아야 했다. 심지어 예전의 파워를 되찾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팔굽혀펴기'라는 슈퍼히어로에 전혀 걸맞지 않은 체력 단련법이었다. 또한 '죽음을 두려워해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도 목숨을 내건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서였다.
맞다. 기사(Knight)라는 칭호는 아무 노력도 없이, 그저 태어날 때 자동으로 붙여지는 그런 볼품없는 명예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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