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사연으로 얽힌 세 남매와 그들을 품는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고령화 가족' 속 공효진(33)은 그간 로맨틱코미디에서 보여준 사랑스러운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오빠들에게 육두문자를 날리는 것은 기본이요, 웬만한 남자들에게도 지지 않는 악다구니를 가졌다.
'러브픽션'의 겨털녀, '미쓰 홍당무'의 촌티 가득한 미숙, '최고의 사랑'의 비호감 연예인 구애정에 이어 이혼녀 미연까지, 로맨틱 코미디에 주로 출연하고 항상 밝은 캐릭터를 맡았지만 작품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질릴 틈이 있나.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배우 공효진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금까지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지만 이혼을 두 번이나 한 여자는 처음이다. 여기에 집안은 또 어떤가. 눈만 뜨면 싸우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공효진이라고 이 독특한 가족을 이해하기 쉬웠으랴.
"물론 처음에는 이해가 안됐어요. 미연이 자기 연애에 바빠서 아이를 방치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엄마 앞에서 오빠들에게 욕을 하는데 엄마는 또 가만히 있고. 원래 보통은 엄마가 말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다들 그냥 가만히 있으니까 리액션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감독님에게 '좀 너무 한 것 아닐까요?'라고 얘기하기도 했어요."
욕도 보통 욕이 아니다. 심한 욕은 아니지만 정말로 상대방에게 비수를 콕콕 꽂는, 진심이 가득 담긴 말들을 오빠들에게 잔뜩 날린다. 촬영을 하면서도 감정이입이 되기도 할 정도였다.
"서로 눈을 부라리고 싸우면 정말 실제 미연과 비슷하게 화가 확 올라올 때가 있어요. 해일오빠랑 횟집에서 싸우는 장면에서는 진짜 약간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오빠도 컷 하고 나서 '너 이번에 날이 서있더라?' 라고 하더라고요."
불륜으로 얽힌 복잡한 가정사에 욕설까지 있지만 '고령화 가족'은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공효진도 처음에는 15세 관람가를 예상하지 못했다.
"전 청소년관람불가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용도 그렇고. 감독님은 15세가 나올 거라고, 나오게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폭력적인 것들이나 자극적인 것들이 빠지고 15세가 나왔더라고요. 대사를 바꾸느라 외국에 출국하는 날 아침에 녹음을 하기도 했어요. 감독님이 그래서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하시는 것 같아요."
'고령화 가족'을 이야기 하면서 당연히 엄마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복잡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세 아이들을 건사하고 있는 엄마(윤여정 분), 그리고 딸 민경(진지희 분)에게 영 관심이 없이 사랑을 좇는 엄마 미연. 공효진은 이 가족의 세 여자에게서 엄마의 과거와 현재가 다 녹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민경과 미연이 그 나이대의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했어요. 엄마는 젊었을 때 미연처럼 아이들을 방치하고 돈을 버느라 바빴을 거고, 아마 미연도 어릴 때는 민경처럼 말 안든 는 아이였을 거고요. 민경이 미연 같은 엄마가 되고, 미연이 나중에 엄마처럼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고령화 가족'을 찍으며 큰 오빠 윤제문을 때리기도 많이 때렸다. 그냥 주먹으로 때리는 것도 아니고 발로 차고, 밟기까지. 윤제문에게 미안한 순간도 많았다.
"제문오빠에게는 엄청나게 미안했죠. 때릴 때마다 덜 아프게 때리려고 했어요. 여자들은 사실 맞을 일도, 때릴 일도 별로 없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때리면 아프고, 어디까지가 안 아픈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누구를 발로 밟을 일이 어디 있겠어요?"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콩가루집안의 일원인 공효진, 실제 그의 가족들은 어땠는지 물었다. 엄한 어머니와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 속에서 평범하게 자라 남동생과의 싸움이 잦았던 것은 여느 남매와 다르지 않았다.
"어릴 때는 동생과 많이 때리고 싸웠어요. 그래도 엄마 앞에서는 못 싸웠죠.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 제가 동생을 때리고 저도 한대 세게 맞았어요. 그때 '아, 이제 우리는 폭력으로 싸울 나이는 지났다. 서로 아프다' 깨달았죠(웃음). 제가 돈을 벌면서는 누나에게 용돈을 받을 수 있구나 생각했는지 '야, 야' 하던 애가 누나라고 하더라고요."
실제 공효진이 엄마가 된다면 어떨까. 공효진은 "전 방치할 거예요. 네 인생은 네가 알아서 하라고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고령화 가족'을 마친 공효진은 소지섭과 함께 SBS 드라마 '주군의 태양'으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최고의 사랑'에서는 차승원과 윤계상의 사랑을 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소지섭에게 징글징글하게 달라붙어야 한단다. 또 한 번 로맨틱 코미디로 시청자를 만나는 공효진, 로맨틱 코미디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저는 무서운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해요. 시나리오도 무서운 건 미루고요. 그리고 스릴러는 대부분 똑같은 것 같아요. 쫓는 사람도, 쫓기는 사람도 캐릭터가 항상 똑같고요. 절절한 멜로도 하고 싶긴 한데 그것도 전형적이에요. 둘 중 한 명이 죽던지, 기억을 잃던지 하잖아요. 캐릭터가 재미가 없어요. 오히려 로맨틱코미디가 독특한 캐릭터가 많은 것 같아요."
차승원, 이선균, 하정우, 윤계상, 장혁에 소지섭까지, 참 많은 남자배우들과 함께 연기했다. 공효진은 이제 여배우와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밝혔다.
"전도연 선배와 연기 해보고 싶어요. 여자들이랑 정말 작품을 해보고 싶은데 기회가 아무래도 많이 없어요. 민희와도 해보고 싶고요. 막 둘이서 스파크가 튀는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류승범과 오랜 연애 끝에 친구로 지내고 있는 공효진. 친구가 되니 오히려 더 편하고 좋단다. 이제는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법도 한데 아직은 좀 더 쉬고 싶다고 고래를 저었다.
"승범이와는 전보다 훨씬 더 잘 지내요. 이런 우정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친구로 지내니까 싸울 일도 없고요. 연애요? 연애는 좀 쉬었다가 하려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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