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우성을 90년대 청춘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던 '비트' 김성수 감독이 돌아왔다. 김성수 감독은 8월15일 '감기'를 관객에 선보인다. 2003년 '영어완전정복' 이후 꼭 10년만이다.
단순한 올드보이가 아니다. 김성수 감독은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로 한국 청춘영화, 액션영화에 새로운 아이콘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중국시장을 겨냥해 현지에 나비픽쳐스를 세우고 도전에 나섰었다. 흥행에 쓴 맛을 보긴 했지만 제작한 영화 '중천'은 당시 CG기술로 새로운 도전이었다.
김성수 감독은 늘 도전하는 인생이었다. 국내에는 '외팔이 검객'으로 알려진 홍콩영화 '독비도' 리메이크를 준비하다가 제작이 무산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긴 시간 공백을 가지게 됐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도전 하지 않았다면 실패도 없는 법.
김성수 감독이 새롭게 내놓은 '감기'도 모험이다. '감기'는 치명적인 감기 바이러스가 퍼지자 주요 유포지인 분당을 폐쇄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컨테이너에 실려 죽음의 밀항을 해온 불법 이주 노동자가 치사율 100% 감기 바이러스의 숙주며, 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46만명이 살고 있는 도시 분당을 봉쇄한다.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부유층이 많은 도시지만 국회위원이라 할지라도 봉쇄선을 넘어서는 순간 총구가 겨눠진다. 미국은 바이러스 절멸을 위해 도시를 불태우기를 요구하고 한국정부는 고뇌한다. 살아남은 자와 죽어가는 자들은 분당이란 닫힌 도시에서 이기적인 욕망을 잔뜩 드러낸다. 죽음의 도시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의사와 그녀의 딸, 헌신적인 소방관이 희망을 찾아 나선다.
김성수 감독은 '감기'를 바이러스물이라는 장르에 각가지 이야기를 넣어 속도감 있게 그려내려 한다. 순제작비 99억원이라는 물량이 투입됐다. 달라진 작업환경 속에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낸 김성수 감독을 미리 만났다.
-'독비도'가 싸이더스FNH에서 여러 사정으로 불발된 뒤 차기작으로 액션영화 '경호원'과 '감기'를 모두 준비 중이었는데.
▶'감기'는 2006년 정도부터 기획된 것으로 알고 있다. 2010년말에 연출제안을 받았다. 처음엔 시나리오를 보고 가능할까 싶었다. 감기라는 소재로 대규모 재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조사를 해볼 수록 굉장히 현실적이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해볼 수 있겠다고 마음먹었다.
-'감기'에는 외국인노동자, 계급, 가족 문제 뿐 아니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연상시키는 장면들도 있다. 미국과 관계도 그렇고.
▶2011년에 구제역이 심각했을 때 돼지들을 생매장시키는 영상을 봤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돼지들이 "왜 우리에게 이러는건데"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걸 사람에게 적용시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내가 스무살 때 광주를 겪기도 했고.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는 했다. 그래도 가장 염두에 둔 건 지금 관객들이 재미를 느낄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마지막 장면 재촬영을 하긴 했지만 원래 회차보다 적게 찍었는데.
▶원래 85회차가 예정돼 있었는데 보충촬영을 포함해서 83회차로 끝냈다. 순제작비는 99억원이었는데 예산에 맞췄다. 예전과 달리 프로덕션이 과학적으로 시스템이 갖춰졌더라.
-재난영화는 사실 정해진 공식이 있다. 장르라면 피할 수 없는 규칙이 있고. '감기'는 어떻게 차별화를 뒀나.
▶모든 재난영화는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영화적인 가정법을 던지는 것이다. 그 질문을 관객들이 실감하고 공감이 크면 클수록 성공하게 된다. '감기'는 괴물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포가 아니다. 어느 날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는 걸 보여줘야 했다. 우리가 이런 일이 닥쳤을 때 과연 준비가 돼 있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인간이 구제역 돼지 같은 일을 겪을 수 있게 된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질병관리소를 찾았는데 이런 상황이 닥치면 당연히 (사람들을)죽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허황된 공포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그리려 했다.
-영화규모가 상당한데.
▶분당시민 46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수용캠프를 만들었다. CG 도움을 받긴 했지만 영화 속에서 보이는 수용캠프는 전부 사실이라고 느낄 만큼의 규모를 만들었다. 분당에서 실제로 목격할 수 있는 장소들에서 관계당국의 도움을 받아 찍었다. 사람들과 군인들이 대치하는 장면이라든지. 도시 곳곳을 실제처럼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촬영이 가능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찍었다. 일상이 지옥으로 변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촬영 인원도 많았고.
▶보조출연자 기록을 갱신 했다고 하더라. 평균 200~300명이 등장했다. 나중에는 보조촬영자 얼굴을 익혀서 서로 인사하고 그랬다.
-카메라는 알렉사를 썼다던데.
▶이모개 촬영감독이 추천했다. 내가 상하이엑스포 한국관 연출 총감독을 했었는데 그 때 레드원을 써서 디지털카메라에 익숙하긴 했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정말 대단하더라. 왜 영화감독들이 사랑하는 줄 알겠더라.
이모개 촬영감독과 상의해서 재난영화 같은 샷을 최소화했다. 다큐멘터리처럼 최대한 리얼에 가깝게 찍었다. 현장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를 바로 곁에서 찍는 것처럼 촬영했다. 그래도 디지털로 찍었지만 아날로그 느낌이 나도록 했다.
-지난해 '연가시'가 흥행몰이를 했었는데.
▶촬영이 들어간 이후에 '연가시'를 봤다.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더라. 하지만 '연가시'가 괴수영화에 가까운 재난영화라면 '감기'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이기심을 느낄 수 있는 재난영화다. 감염된 사람과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 내게 재밌다, 재미없다 판단은 영화가 나한테 말을 거는 방식에 달렸다. 내가 이 영화로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거는 방식이 유효한가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소방관인 장혁, 여의사인 수애, 그녀의 딸이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들인데. 일종의 의사가족이고.
▶장혁은 잘 알다시피 인품이 굉장히 좋다. 헌신적이고. 새로운 캐릭터를 입히기 보단 장혁 같은 사람이 소방관이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촬영장에서도 막내 스태프보다 열심히 하는 배우니깐. 소방학교에서 훈련을 받는데 고위 간부가 "실제 소방관이 될 생각은 없냐"고 하더라.
수애는 사실 내가 굉장히 무섭다는 소문을 들었다더라. 예전에 어떤 감독과 너무 힘들게 일했는데 그 감독이 김성수한테 배워서 그랬다는 소문을 들었다나. 수애는 실제 만나보니 영화 속 기존 모습과 상당히 다르더라. 그래서 평소 모습 같이 연기해달라고 했다.
-새로운 도전을 지금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나.
▶과거의 데이터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장감독은 언제나 자신의 과거를 배신하고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 한국관객을 어렵게 붙잡은 건 한국영화가 늘 새롭게 보이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렵고 즐겁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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