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동근(34)은 "아저씨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가정, 아버지, 생활인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데뷔한 뒤 늘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기를 하고 노래를 해온, 종잡을 수 없던 예인(藝人)의 그 말이 퍽 낯설었다. 그럼에도 이미 그는 가정을 꾸렸고, 지난 3월 아버지가 됐다.
양동근이 종교적 색채가 묻어나는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 가스펠'(감독 히즈엠티 미니스트리)에 출연했다는 점도 처음엔 의아했다. 그러나 그는 알고 보면 독실한 크리스천. 힙합 가수로서도 흑인의 문화와 음악을 사랑해 온 그는 2년 반 전의 촬영에 대해 "솔로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천국 같은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블랙 가스펠'은 독특한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다. 1979년생 동갑내기인 양동근 정준 김유미가 흑인들과 함께 가스펠을 배워 공연을 하겠다며 미국 뉴욕의 할렘에 간다. 가스펠 그룹인 헤리티지와 몇몇 일행이 함께한다. 그들은 블랙 가스펠이, 그 속에 담긴 '소울'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한편 공연을 준비한다. 두 달 넘는 여정을 93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내다 보니 그들이 얼마나 머리를 싸쥐고 고민하고 목이 터져라 노래했는가 하는 대목은 대개 생략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소울'이 없다는 꾸지람에 좌절도 했던 그들이 우여곡절 끝에 선보인 마지막 공연은 흥겨운 가운데서도 묵직한 감흥을 안긴다.
힙합 가수이기도 한 양동근 그 중에서도 돋보인다. 합창단과 내내 함께하며 공연에서도 중심에 섰다. 흑인들의 음악을 사랑해 온 그는 할렘으로 떠나 그 음악의 정수를 만나보자는 이번 프로젝트를 제안 받고 '꿈이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했다. 그 들뜨고 행복한 기분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연기하는 양동근이 아닌 자연인 양동근을 보는 재미가 또한 색다르다.
"준이나 유미는 머리가 아팠다, 힘들었다고 하는데 저는 즐겼어요. 좀 풀어지기도 하고 평소 모습이랄까. '소울'이 뭔지 나름의 답을 찾았느냐 하면, 글쎄요. 사전적인 의미 같은 건 잘 모르겠어요. 제 안에는 그런 건 없어요. 그냥 느끼는 거죠. 아 그게 소울인가보다 하고."
2달반 가량의 할렘 생활은 그 자체가 그에게 특별했다. 특히 할렘의 블랙 가스펠 선생님들과 동료들과 어우러져 펼친 마지막 공연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느낌. 양동근은 "솔로로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천국에 온 느낌이었다"며 "천국에 오면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고 고백했다.
"편집이 많이 됐지만 공연만 3시간 가량 했거든요. 당시 발이 엄청나게 아픈 새 신을 신고 있었는데 공연 하는 동안 그걸 못 느낄 정도로. 감탄, 감동, 환희, 즐거움… 그 모든 것의 절정이었어요. 그 흑인 분들을 다시 모셔서 공연은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첫 희열은 어디서도 느낄 수 없잖아요. 그냥 천국 같았어요. '천국이 있다면 이런 것일거야.' 솔로 양동근으로 살아오며 가장 큰 희열을 맛보았으니 더 겪을 게 없다 했죠. 그래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해서 결혼도 하고."
"'다 이루었다' 이런 뜻이냐"고 물으니 "그런 셈"이라고 허허 웃었다. 양동근도 30대 중반에 이르며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단다. 그는 "아, 내가 30대 중반이구나, 이제 나도 아저씨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저를 내려놓게 했다"며 "가정을 꾸리고 하려면 앞으로 그런 캐릭터를 연기도 해야 할 테니 한창 준비를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버지가 된 양동근은 또 다른 의미로 각별하다. '서울뚝배기' 시절부터 기막히게 연기하던 꼬마 양동근을, 한때 가수로 무대에서 춤을 췄던 양동근을, '뉴 논스톱'의 구리구리 양동근과 '내 멋대로 해라'의 고복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드디어 그가 어른이 됐고 가장이 됐다. 양동근은 옛 이야기를 했다.
"어렸을 적부터 하던 일을 쭉 이어온다는 건 힘들어요. 예나 지금이나 아역배우 지망생이 정말 많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만큼 굴곡도 많고. 아이답게 커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보니 평범한 사람들과 사는 박자가 달라요. 그 나이 때 이미 어른이 돼서 '애늙은이' 소리를 듣죠. 저도 그랬어요. 아이다워야 할 때 어른이 되고 어른스러워야 할 때 사춘기를 늦게 겪는 거죠. 우리에겐 그게 당연한 건데 세상의 기준에선 '왜 그러나'가 되곤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변화는 아역에서 성인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고민했던 시절에 비하면 자연스러운 편이다. 그 시절 양동근과 함께 아역 스타로 활동했던 이재은은 '노랑머리'를 찍으며 성인연기 신고식을 치렀다. 동료를 지켜보며 양동근 역시 성인식이 그렇게 혹독하다는 걸 곁에서 피부로 느꼈다.
"배우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할까 생각했는데 결국 저의 마음가짐이 어땠냐면, 내게 주어진 역할이 크건 작건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해야겠다는 거였어요. 그것이 큰 힘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지금에 오게 된 것 같아요. 이번에 '응징자'와 '블랙 가스펠'을 연이어 봤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특히 처음 한 다큐멘터리를 보니 살아있는 것이 좋았어요. 대본대로 짜여 진 역할을 이십 몇 년간 하면서 이골이 났다고 해야 할까. 다들 신선한 걸 좋아하잖아요. 저도 이번 작품을 보며 느꼈어요. 살아있는 것 그 자체가 너무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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