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늙는다. 언젠가는 죽는다. 꽃이 피고 지듯, 우리네 삶도 그렇게 시작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는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노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결코 직면하고 싶지 않은, 그렇지만 결국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의 쓸쓸한 마지막 순간을 담아냈다.
영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영(윤여정 분)은 서울 종로 탑골공원을 배회하며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65세 노년 여성이다. 피로회복제를 건네며 은밀히 남자를 유혹해 근근이 먹고 살아간다. 일명 '박카스 할머니'라 불린다.
'박카스 할머니'는 한국 빈곤 노인층의 상징이다. "나 같은 늙은 여자가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게 많은 줄 알아?"라고 말하는 소영의 삶은 남루하다. 남자와 함께 싸구려 모텔에 들어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모텔비를 제하면 2만 원.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빠듯하다.
소영은 노인들 사이에 '죽여주는 여자'다. 죽여주게 서비스를 잘한다고 생긴 별명이다. 그런 소영에게 한때 단골손님이었던 송 노인은 자신을 죽여달라고 간청한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배변도 못 가릴 정도로 망가진 자신의 모습에 "사는 게 창피하다"고 한탄한다.
소영은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에서 '진짜'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송 노인을 죽이고 또 죽여달라는 노인들이 찾아온다. 치매에 걸린 노인, 가족을 잃고 홀로 남은 노인, 이들은 각각의 이유로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택한다.
'죽여주는 여자'는 '박카스 할머니'를 소재로 씁쓸하고 안타까운 현 시대상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노인의 성매매를 그리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는 노인들의 죽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간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처럼 사회적으로 터부시 해온 사랑과 성(性)에 대한 소재를 다뤄온 이재용 감독의 정공법이 빛을 발한다. 50년의 연기 인생을 걸어온 윤여정에게도 소영은 파격적인 캐릭터였지만 별 다른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죽여주는 여자'는 고령화 시대에 한국 노인을 둘러싼 참담한 현실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최근 기대 수명이 길어지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Well-Being)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Well-Dying)에 대한 고민이 늘어난 고령화 시대에 수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100세 인생은 축복인가 재앙인가. 안락사나 조력 자살은 비난받아야 마땅한가. 등등.
영화는 노인 뿐 아니라 트렌스젠더, 장애인, 코피노 등 소외된 계층의 삶에도 주목한다. 한쪽 다리가 없는 성인용 피규어 제작자 도훈(윤계상 분), 트렌스 젠더 티나(안아주 분),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소년 민호(최현준 분)가 소영과 한집에 살며 돈독한 정을 쌓아간다.
한 지붕 아래 쌓여가는 정은 자칫 무겁게만 흘러갈 수 있는 영화를 훈훈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따뜻해서 더 안타깝고 안쓰럽다. 현실은 여전히 참담하다.
'죽여주는 여자'는 노인 문제에 대한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게 조명하면서 소외된 '비주류'를 향한 보편적인 감정들을 끄집어낸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지만 격변하는 사회 속에 할 일도, 갈 곳도 없이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들, 여전히 사회적 편견에 상처받는 무리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아픔과 고통, 당장 우리 앞에 마주한 현실이 아닐까.
10월 6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1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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