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제작사 대표 "영화가 우리보다 오래 산다" ①

발행:
김현록 기자
[2017 영화 결산 릴레이 인터뷰]
영화 '택시운전사' 제작사 더 램프 박은경 대표 / 사진=홍봉진 기자
영화 '택시운전사' 제작사 더 램프 박은경 대표 / 사진=홍봉진 기자


올 한해 한국영화계는 다사다난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스타뉴스는 그 중심에 섰던 영화인들을 릴레이로 만났다. 네 번째 주자는 '택시운전사' 제작자 박은경 대표다.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제작 더 램프)는 올해 가장 많은 관객의 사랑을 얻은 영화다. 거액의 택시비를 준다는 말에 아무 것도 모른 채 독일 기자를 태우고 1980년 광주로 향했던 평범한 택시기사 만섭의 이야기는 무려 1218만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를 제작한 이는 더 램프의 박은경 대표. 영화를 직접 기획했고 만들어낸 제작자에게 작품의 흥행은 숫자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올 터다. 한 해를 정리하며 만난 그는 "영화는 우리보다 오래 사는 것 같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작한 '택시운전사'가 1218만 관객을 모아 올해 최고 흥행작이 됐다.


▶사실은 실감이 안난다. 같이 한 사람들이 좋아하니 그런 것으로 실감이 난달까. 좀 신기하다. 그 스코어는 그만큼 많은 세대가 공감한 이야기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만들며 타켓을 따로 설정하는 건 아니지만, 특정 계층이나 세대가 아니라 폭넓은 분들에게 사랑받았구나 하는 느낌이다. 돌아보면 운도 따랐고 환경적으로도 도움을 받은 느낌이다.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다 느꼈는지.


▶영화 개봉 때보다 영화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다. 처음 기획했을 때는 '광주 이야기를 또'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긍정적인 이야기보다는 '잘 되겠어' 하는 반응이 많았다. 기획하고 개발하며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 1년 정도가 걸렸고, 엄유나 작가가 합류하고 6개월 만에 초고가 나왔다. 그 초고로 감독님, 투자사, 그리고 송강호까지 확정이 됐다. 아주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 뒤로는 그저 열심히 하자고 했다.


스코어를 목표로 삼았다기보다는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되어 기분이 좋다. 한국뿐 아니라 대만, 홍콩에서도 잘 되고 AFM(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한다. 한국의 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어 그 쪽에 한정되는 게 아닐까 했는데 그것이 보편적 정서를 갖고 있구나 실감했다. 사실 만들고 싶었던 게 그것이었으니까. 광주의 이야기보다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그 초고가 완성본과 비교하면 어떤가.


▶초고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장훈 감독이 들어오고 영화화하는 작업을 했지만 큰 줄기가 바뀌지는 않았다. 제작자로서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도달했다는 것이 고맙고 만족감이 있다. 따져보면 처음 시작한 것보다 좋아졌는데, 송강호가 맡은 만섭의 캐릭터도 그렇다. 처음엔 조금 보수적인 아저씨였다. 그런데 송강호 들어면서 훨씬 사랑스러운 인물이 됐다. 작업을 계속해 가면서 '이 사람이 러블리해야 관객이 같이 광주에 내려갈 수 있다' 했다. 그러며 더욱 입체적인 인물이 됐고, 다른 모든 배우들도 사랑스러워진 느낌이 든다.


-맞다. 실제 그 시절에 살다가 튀어나온 느낌마저 들고, 잠깐 나온 군인 엄태구조차 인간미가 있다.


▶물론 감독님이 오디션을 보셨지만 모두들 너무나 적합하다. 저희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엄태구는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나와서 한 회차를 찍었다. 송강호가 태구는 하루만 찍었는데 다들 태구 얘기만 한다고 하기도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제작사 더 램프 박은경 대표 / 사진=홍봉진 기자


-앞서 언급했지만 여러 번 영화에서 다뤄졌던 광주의 이야기를 다시 다뤄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는데.


▶저는 '화려한 휴가'가 용기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저는 도망갔던 제가 불현듯 생각이 나 '택시운전사'를 시작했다. (박은경 대표는 '택시운전사'의 모티프가 된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이야기를 접하고 쇼박스 근무 시절인 2009년 동티모르에서 '맨발의 꿈' 촬영을 하던 중 괴한이 흉기를 들고 촬영장에 난입, 허겁지겁 도망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도망쳤다가 돌아온 이야기'로 '택시운전사'를 시작했다.) 기획이라는 게 재밌는 것이, 저는 그렇게 시작했지만 많은 사람들과 같이 영화를 하면서 이야기가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 '음악 미술 소설과 영화가 뭐가 다를까. 혼자 하니 그 쪽이 더 완벽한 예술인가' 생각하다가,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면서 그 뜻이 커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강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고 했다. 그걸 다 알고 기획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이 영화에 많은 사람들이 뜻을 더해준 느낌이다. 그래서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하나. 함께하며 가치가 배가되는 걸 실감했다. 직업인으로서도 이것이 내 업의 즐거움이구나 생각했다.


-'미안함'을 다뤘다는 점도 곱씹게 된다.


▶현대사회의 위로가 이 영화에 있다 하지만 만드는 저로서 위로받았다는 느낌도 있다. 당분간은 서로 위로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미안함'이 화두인 것도 같고. 저는 극중 유해진이 맡은 황태술이 '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냐, 나쁜 놈들 따로 있는데' 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그런 미안함 같은 것이 올해 영화의 화두가 된 게 아닐까. 그것이 지나면 좀 더 희망을 이야기하게 하지 않을까. 그리고 영화를 보는 자체의 만족감으로 다가오는 영화가 또 사랑받지 않을까 한다.


-사실 '택시운전사'가 기획되고 촬영이 들어간 시점은 촛불시위나 대통령 탄핵이 이뤄지기 한참 전이다. 블랙리스트 등으로 영화계가 흉흉했는데 부담은 없었나.


▶생각보다 그런 상황이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시나리오가 잘 나오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변수는 제작자인 제가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택시운전사가 택시 운전을 잘 해야 하는 것처럼 영화 제작자는 좋은 영화 만드는 기획에 집중하는 거다. 다들 그렇게 하시겠지만, 저의 변수와는 상관이 없었다. 하다보니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 '광화문 갑시다'가 개봉 때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질 줄 어떻게 알았겠나. (송강호가 몰던 브리사 택시 번호인) '0310'이 탄핵일이라는 대목이 최고였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그렇게 찾고 싶어했던 김사복씨를 찾은 일 또한 드라마틱했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재조사가 이어지기도 했고.


▶그 분도 마지막에 사진이 공개되고, (한국을 찾았던 힌츠페터 기자의 아내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드) 여사님이 남편이 맞다고 확인을 해주셔서 극적으로 확인이 된 셈이었다. 아름답고, 진짜 감사한 일이다. 재조사 이슈는 상상조차 못했다. 의도할 수가 없는 일이다. 송강호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을 때 '과연 그럴까' 했는데 '그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뜻이 커지고 사람들이 모이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한다.


영화 '택시운전사' 제작사 더 램프 박은경 대표 / 사진=홍봉진 기자


-2012년 제작사 더 램프를 차려 5년이 지났다. 그간 많은 작품도 여럿이다.


▶'동창생', '쓰리 썸머 나잇', '해어화'를 했고 중국영화인 '리셋'도 있다. 사실 제작자 입장에선 20억을 들인 영화와 100억을 들인 영화가 다르지 않다. 어떤 때는 잘된 아이가 좋다가 어떤 때는 아픈 아이가 안타깝다가 그런다. 사실 '택시운전사'를 하면서 몇몇 아이템을 접었다. 내가 여러 개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구나, 난 이런 사람이구나 인정하는 게 필요했다. 동시에 이 좋은 현장을 그만큼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신중해진다. 작품이 개발돼 제작에 들어가고 결과까지 좋아야 서로가 좋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지만 그래도 확 꽂혀서 훅 들어갈지 모른다.(웃음)


-더 램프의 차기작은?


▶조선어학회 이야기를 다루는 '말모이'다. 자국어 사전이 있는 나라가 전세계에 20개가 안 된다. 한국은 재미있게도 일제강점기 말에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창씨개명 하고 조선어도 못 쓰게 하던 바로 그 시기에 조선어가 없어질까봐 10년 넘게 말을 모아 사전을 만들려 한 조선어학회 사건이 바탕이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라기보다는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 시나리오를 쓴 엄유나 작가가 감독으로 데뷔할 예정이다.


-더 램프는 어떤 영화제작사가 되려 하나.


▶색깔을 갖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색을 가지면 거기 갇힐 것 같다. 처음 회사의 이름을 지을 때부터 뭔가 규정하지 않는 이름을 지으려 했다. '택시운전사'를 했다고 해서 의미있는 영화에 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좀 더 오픈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감독 지향적인 영화도 해보고 싶다.


신인감독과 하는 건 어쨌든 이번이 처음인데, 어느 쪽으로든 범위를 넓히고 싶다. 지금은 시대 안에서의 개인에 관심이 있는 게 맞다. '말모이'도 조선어학회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의 이야기다. 소시민이란 표현을 안 좋아하지만 그들의 영웅사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일지 모르니까. 물론 내가 좀 알고 있다고 하면 남을 설득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편하다.


-2017년 한국 영화계를 돌아본다면.


▶우선 잘 되는 영화와 안 되는 영화의 격차가 너무 커졌다. 중간이 없다. 50만 명을 모으지 못한 영화가 너무 많다. '기본은 한다'가 없어진 것 같다. 잘 될 것 같은 영화들이 외면받으니까 무섭더라. 그 와중에도 '범죄도시' '청년경찰' 같은 신인 감독들의 파이팅 넘치는 영화가 잘 되는 걸 보면 아직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거기에 영화적인 완성도가 있는 작품을 해야한다 생각하니 더욱 긴장된다. 동시에 영화적인 영화가 그립기도 하다. 얼마 전 '전체관람가'에서 이명세 감독님의 단편을 보고 펑펑 울었다. 영화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만드는 과정을 보니 확 눈물이 나더라. 스코어니 예산이니 고민하다가도 '아 그것이 이 업의 본질이었지' 고민하는 부분이 생긴다.


-올 한해 여성이 화두이기도 했다. 영화 속 여성 묘사에 대해 더욱 예민하게 바라보게 됐다.


▶'여성을 어떻게 다루냐'보다 '인간을 어떻게 다루냐'가 아닐까. 캐릭터에 맞게 그 사람을 만들려는 고민을 늘 한다. '택시운전사'도 (류준열이 맡은) 재식이 역할을 두고 재순이였으면 어땠겠냐 하지만, 단순히 성 보다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이냐를 고민한 지점이 있다. '택시 운전사'에 여자 배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저는 (전혜진이 맡은) 상구 엄마, 집세를 내라 했다가 아이를 챙기기도 하는 그 인물이 그 시대를 대변하는 느낌도 받는다. 젠더 이슈도 물론 중요하지만 성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어떤 식으로 다룰 것인가가 화두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스스로에게 올해는 어땠나. 어떤 생각을 갖게 됐나.


▶'택시운전사'의 현장이 좋았다. '몇 년 후 몇 십년 후가 되면 이 날이 기억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 때도 들었다. 지금 당장 뭔가를 해냈다 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올해가 기억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이제는 희망을 말하고 싶다는 게 화두다.


영화 '택시운전사' 제작사 더 램프 박은경 대표 / 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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