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르익어가는 사람 신소율, 머물러 있는 배우 신소율. 그 기로에서 고민하던 신소율은 깊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답을 찾아냈다. '누군가의 시선의 맞춘 나'가 아닌 그냥 나는 나대로. 신소율은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최근 영화 '긴 하루'의 배우 신소율이 화상 인터뷰를 통해 스타뉴스와 만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긴 하루'는 남녀가 만나서,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다시 재회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하루 동안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낸다. '큰 감나무가 있는 집', '기차가 지나가는 횟집', '바다가 보이는 작업실', '긴 하루' 네 개의 이야기로 이어진 옴니버스 드라마.
신소율은 마지막 이야기인 '긴 하루'에서 윤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긴 하루' 속 소설가 정윤(정연주 분)은 자신이 쓴 소설의 영화화를 앞두고 소설의 주인공이자, 소설 속 시간들을 함께 보냈던 윤주(신소율 분)를 찾아온다. 큰 감나무가 있는 집에 여전히 살고 있는 윤주는, 기차가 지나가는 횟집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걸 즐겨 찍던 사람이었고, 바다가 보이는 작업실에서 일했던 남편을 잃었다. 그들의 절절할 것만 같았던 재회의 순간은 아름다운 화해보다 치유되지 않은 여전한 상처와 여전한 사랑으로 그들을 더욱 아프게 하고, 기억 하나로 마음이 흐트러지는 순간, 각자의 이야기는 다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신소율은 "조성규 감독님에게 '긴 하루' 시나리오를 받고 읽었는데 처음에는 4개의 이야기가 모두 독립적인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인물들의 이름이 다 같더라"라며 "사람의 기억에 따라 느낀 점에 따라서 한 인물이 다르게 기억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연결선과 사람 간의 관계가 재밌어서 영화에 참여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라고 밝혔다.
신소율은 영화 '늦여름'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성규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그는 "감독님과 '늦여름' 이후 꾸준히 만나면서 친하게 지내다가 '긴 하루' 촬영 전에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늦여름'을 촬영하면서도 감독님이 기억하고 있는 추억과 제가 기억하는 추억이 다르기도 하는 등의 대화를 나누면서 '긴 하루'의 시나리오와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긴 하루' 속 각기 다른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같은 이름과 같은 장소, 기억을 공유하면서 묘하게 이어지고 묘하게 어긋난다. 신소율은 자신만의 '윤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다른 배우들이 연기한 '윤주'의 느낌이 어떤지 궁금했었는데 편집본을 보여달라고 하려다가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윤주'와 제가 기억하는 '윤주'가 다른 인물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대본을 보고 제가 느낀 감정대로 연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에피소드의 '윤주'가 다르고 매력이 있다. 제가 표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 정도였다.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를 뒀다기 보다는 '윤주'의 감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라며 "영화를 보니까 4명의 '윤주' 캐릭터가 다 다른 모습으로 표현이 됐더라.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여러 모양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라고 뿌듯해했다.
'긴 하루'를 찍으면서 신소율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정답은 '나답게 연기하기'였다. 조성규 감독 또한 그냥 신소율답게 하는 연기를 요구했다. 신소율은 "감독님들 중에는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 구현해 주길 바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제가 생각하거나 느낀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라며 "그러나 조성규 감독님은 최소한의 디렉션만 주시고, 배우들이 느낀 감정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가 그 인물이 돼서 느끼는 그대로를 연기해 주시길 바라셔서 감독님 영화에서만큼은 제가 하고 싶은 연기, 진짜 제 모습을 많이 드러낼 수 있는 것 같다"라고 고마워했다.
데뷔 15년 차, 배우 신소율의 연기 철학과도 깊게 연결되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연기 철학을 말하는 그의 눈빛은 그 누구보다 단단해 보였다. 신소율은 "솔직히 신인 때는 연기 철학이 없었던 것 같다. 연극영화과에 들어가서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기회는 많지 않았다"라며 "어떻게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맞췄던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 인물이 되려고 했고, 이제는 무게감, 깊이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또 거기에 맞춰서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지만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살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남들의 시선에 맞춰서 살아오던 신소율은 다시 거울로 눈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됐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것, 그리고 내 연기였다는 것. 사람 신소율로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아이와 아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출간했다. 신소율은 "결혼 후에 아이를 언제 가질 거냐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됐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질문인데 어느 순간 그게 굉장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으로 다가오더라. 단순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아니라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감정과 몸의 변화가 생겼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를 안 낳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지 생각을 하다가 남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라며 "그때 감정으로 제 마음에 있는 생각을 글로 옮겨 적다 보니까 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라고 털어놨다.
신소율은 연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은 맞다. 원래 남들의 시선과 평가가 중요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더 제 중심을 잡고 나대로, 내가 생각하는 연기 철학대로 작품에 임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진다"라고 덧붙였다. 신소율은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유일하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연기, 또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신소율은 "카메라 앞에 서는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도 다 떨칠 수 있다"라며 "저는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한 고뇌나 스트레스가 오히려 원동력이다"라고 밝혔다.
2021년, 신소율이 공개한 작품은 '긴 하루' 단 하나다. 그러나 작품 그 이상의 깨달음과 배움을 얻은 한 해였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신소율은 "저에게 가장 큰 폭의 성장이 있었던 한 해였다"라며 "배우로서는 성장을 했다거나 발전한 모습을 보여드리지는 못했지만 사람 신소율에 대해 돌아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고 고민했던 시간이라서 힘들기도 했지만,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한 해였다"라고 말했다.
잠시 쉬어감으로써 앞으로의 긴 연기 인생에 추진력을 얻은 셈이다. 신소율은 "2022년에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또 한층 성장하고, 연기가 무르익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고 있다. 스스로 자존감 있고 자신감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며 "어떤 인물을 표현하더라도 제가 올곧게 서야 그 인물의 인생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진심 어린 연기로 다가갈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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