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주역 김현주가 고(故) 강수연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선후배가 똘똘 뭉친 따뜻한 현장에서 비롯된 SF 장르물 '정이'다.
12일 오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넷플릭스 영화 '정이' 제작보고회가 열린 가운데 연상호 감독과 배우 김현주, 류경수가 참석했다.
'정이'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故) 강수연의 유작이기도 한 '정이'는 김현주, 류경수의 강렬한 연기 변신, 연상호 감독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SF 장르물이다.
이날 연 감독은 김현주가 연기한 정이에 대해 "'정이'라는 영화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소비되던 정이에 대한 이야기"라며 "정이라는 인물은 여러 이데올로기 속 대상화된 존재로 살아왔다. 자기를 둘러싼 모든 상황에서 완벽히 해방이 되는 이야기를 상상하며, SF적으로 기획했다"고 밝혔다.
김현주와 류경수는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 이어 재회했다. 김현주는 '정이' 출연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제 안의 욕구와 욕망이 있었다. 액션을 하게 해주는 것에 대한 의아함이 있었고,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다. '정이'에서는 더욱 과한 액션 연기와 감정적인 연기를 함께 소화해야 했다. 장르의 특별함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앞으로 또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고 말했다.
류경수는 "'지옥' 후시녹음 때 처음 '정이'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재가 흥미로웠다. 연 감독님 현장은 과정이 굉장히 행복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너무나 행복하고 재미있게 촬영했다"고 연 감독에 대한 신뢰를 표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연 감독은 김현주를 두고 "'그림체가 맞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김현주는 일단 잘생기고 멋있게 생겼다. 그림체가 맞아야 영화를 만들 때 좋은 면이 있다. 감정 연기를 하다가 로봇에 맞춰서 멈춰야 할 때가 많았는데, 그런 것에 능숙한 배우다. 순간적으로 감정을 뿜어내는 걸 봤다. 기본적으로 액션도 잘하고 저와 죽이 잘 맞는 느낌"이라고 김현주를 추켜세웠다.
류경수에 대해서는 "자신이 극에서 어떤 역할인지 파악을 잘하는 배우"라며 "상훈이라는 캐릭터가 '정이'에서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역할이다. 극 전체를 끌고 간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은데, 그걸 잘 설계해서 연기한 것 같다"고 칭찬했다.
김현주는 AI 캐릭터를 연기한 것에 대해 "해본 적 없는 연기톤이라서 고민이 많았다"며 "실험 대상일 때, 사람처럼 보여야 할 때 이 두 가지를 구분지어서 연기하느라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부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자연스러워야 하는 걸 많이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평소 내성적인 류경수는 외향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점에 대해 "촬영 갈 때 원래 차분한 곡을 듣는데 이번에는 신나는 템포의 음악을 들었다"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강수연 역시 SF 장르물 출연은 처음이다. 고인이 극 중 연기한 윤서현 역은 정이의 딸로, 과거 AI가 된 어머니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영원한 영웅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가진 인물이다.
연 감독은 "'정이' 대본을 쓸 때 예산 등 측면에서 회의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서연이라는 캐릭터를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 갑자기 강수연 선배의 이름이 생각났다. 그때부터 '정이'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찌 보면 '정이'가 이 자리까지 오게 해준 원동력은 강수연 선배다"고 말했다.
또 "후반작업만 10개월을 했는데 마지막까지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더라. 후반작업 팀이 뼈를 갈아서 해준 걸 알아서 고마운 마음이다. 처절하고 둔탁한 액션, 아날로그적 싸움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현주는 "아날로그적인 액션의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열심히 체력을 단련했다"고 부연했다. 반면 구강액션을 선보인 류경수는 "말도 안 되는 유머를 구사하는 인물이다. 저는 고차원의 유머를 구사하기 때문에 싱크로율이 낮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강수연과 연기 호흡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김현주는 "이전에 한 번도 뵌 적이 없었기에 '내가 어떻게 그분 눈을 보고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말이 되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겁도 났다. 현장에서는 선배님이 아니라 동료였다.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진지하시다"고 강수연에 대해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류경수는 "강수연 선배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캐릭터에도 많이 투영된 것 같다"며 "선배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연 감독은 강수연과 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를 떠올리며 "겨땀(겨드랑이 땀)이 났다. 그때부터 '정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사실은 까다로우실까봐 걱정이 컸다. 그런데 정말 현장과 후배 배우들을 좋아하는 분이더라"고 말했다.
한편 '정이'는 오는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김노을 기자 sunset@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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