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저는 어디로 가면 됩니까?"
극 초반, 죄책감과 무력함에 잠긴 단종의 한마디와 그의 눈빛은 관객을 단번에 극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오직 연기력만 보고, 캐스팅했다는 장항준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명불허전'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유해진과 박지훈을 중심으로, 유지태, 전미도, 특별출연한 이준혁과 안재홍까지 117분의 연기 파티가 펼쳐진다. 역사적 기록을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을 확장한 '왕과 사는 남자'가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이야기를 완성했다.
21일 서울시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의 언론배급시사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장항준 감독을 비롯해 배우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김민이 참석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과 왕위에서 쫒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의 이야기.
한국 영화 최초로 단종을 스크린의 중심에 담아내는 '왕과 사는 남자'는 재위 2년 만에 세상을 떠난 문종의 세자였다가, 즉위와 함께 암투에 내던져진 어린 왕이었던 단종 이홍위는 끝내 왕위를 찬탈당한다. 영화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자기 뜻대로 살아본 적 없을 그가 1457년 궁을 떠나 영월 산골 마을 청령포로 유배길에 오르며 시작된다.
장항준 감독은 "작품 준비 전부터 역사 자문 교수님들이 많았다. 그분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기록에 남아있는지, 수많은 단종의 죽음에 관한 설 중에 어떤 것들을 취해야 하고,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 상상력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이어 "엄흥도라는 인물은 실록에 짧게 두 줄 정도 기록됐다. 그 짧은 기록을 극화하기 위해 상상력이 필요했고, 상당히 고심했다"고 말했다.
특히 '왕과 사는 남자'는 117분의 러닝타임 내내 배우들의 연기력이 몰입을 이끄는 작품. 장항준 감독은 "배우분들과 같이하면서 전 복 받은 감독이라고 생각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현장에서도 그랬고, 저는 연기력 하나만 보고 캐스팅했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캐릭터의 싱크로율과 연기를 봤는데 편집하면서도 '캐스팅이 참 잘 됐구나' 싶었다"며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배우들이) 이 좋은 시절을 저와 함께 해주셨다는 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유해진이 단종이 유배 온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를 연기한다. 그는 "특별히 뭘 준비하진 않았고, 뭐에 중점을 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막연하게 생각한 슬픔이나 온기가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더라. 나중에 강가에서 단종이 물장난을 치는 걸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어린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을 느꼈다. 단종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장항준 감독은 유해진의 캐스팅에 대해 "제가 쓰다 보니까 제가 생각하는 엄흥도의 인간미를 강조하고 싶고, 정 있는 시골 사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유해진 씨를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며 "제 생각보다 대본보다 훨씬 더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캐스팅 수락했을 때도 정말 고맙다고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이어 "이 시나리오가 나오면 유해진 씨한테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드렸더니 이건 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셔서 제작진들은 쾌재를 불렀다"고 덧붙였다. 유해진은 실제 장항준 감독이 생각나는 말투였다는 평가에는 "제가 그렇게 가벼웠습니까?"라고 답해 웃음을 안겼다.
박지훈은 단종 이홍위 그 자체가 되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는 "어떻게 표현하려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른 분들과 호흡을 맞출 때 자연스럽게 몰입하려고 했다"며 "정통성이 뛰어난 조선의 왕인데도 유배를 와서 그렇게 앉아있는 모습 그 자체로 표현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한 유해진과 호흡에 대해서는 "연기와 마찬가지로, 실제로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선배님한테 다가가지 않았다. 단지 촬영 외에 선배님과 자연스럽게 쌓아온 관계가 영화에 잘 묻어나지 않았나 싶다. 선배님을 존경하면서 연기했다"고 전했다.
유지태는 조선 초기 당대 최고의 권력자 한명회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유지태는 "실존인물 한명회와 별개로, '왕과 사는 남자'의 한명회가 꼭 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의 악역이지만, 척추 같은 느낌이라서 그 한명회를 잘 그려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 감독님이 이 시나리오를 주셨을 때 기존에 그렸던 한명회와는 다른, 새로운 한명회를 그리고 싶다는 말을 듣고 변신의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한명회는 이 마을 사람과 떨어져 있어서 직관적인 느낌에서 한명회가 해야 하는 지점이 있었는데, 제 연기 톤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존인물을 연기할 때 배우들이 많은 부담을 갖게 된다. '내가 만약 한명회였다면?'이라고 생각했을 때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나름의 정의감이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악역의 기능성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 층위를 만들어내기 위해 매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연기 인생 최초로 사극에 도전한 전미도는 단종 이홍위를 보필하는 궁녀 매화 역을 맡았다. 장항준 감독은 단종이 유배를 떠날 때 함께한 6명의 궁녀가 있었고, 6명을 집약한 궁녀가 전미도가 맡은 매화라고 밝혔다.
그는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안 하실 것 같았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단번에 만나자고 하더라. 실제로 만날 때마다 분량이 조금씩 늘었다. 배우로 만나고, 얘기하다 보니까 상상력이 자극되고, 이 배역 자체가 병풍이 아니라 의미있는 역할이 돼가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다음 번에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박지훈은 전미도와 호흡에 대해 "전 친누나가 없지만, 만약 있었더라면 이렇게 나를 아끼고 보살펴 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촬영장에 안 계실 때도 온기가 남아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전미도는 "유해진 선배님도 지훈이의 눈빛에 관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 부분은 박지훈 배우와 호흡한 모든 배우들이 느끼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초반 식음을 전폐하고 앉아있는 홍위의 눈빛만 봐도 매화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홍위와 대화를 나누는 신이 많지 않지만, 지훈 씨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아우라 때문에 매화가 가져야 할 정서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전미도는 "'왕과 사는 남자'는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다. 죽음까지 가는 길목에 어떤 사연이 있을지 상상하면서 따라가 주시면 더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장항준 감독은 "모두의 바람은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이라며 "저는 간절히 손익분기점을 넘길 바란다. 침체된 한국 영화계에 우리 영화가 재도약의 밀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한편 '왕과 사는 남자'는 오는 2월 4일 개봉한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