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렁큰타이거 마지막 앨범 'Rebirth of Tiger JK'가 지난 14일 발매됐다. 이틀이 지난 16일 경기도 의정부 필굿뮤직 사무실에서 타이거JK(44, 서정권)에게 직접 2장으로 된 CD 앨범을 받았다. 수록곡은 음원을 통해 모두 듣고 난 뒤였지만 느낌은 분명 남달랐다. 앞서 'Good Life'가 수록된 정규 3집을 지인에게서 얻었을 때와 '내 인생의 반의반'으로 마무리된 정규 5집을 돈 주고 직접 CD로 샀을 때와 기분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는 분명 타이거JK에게서 CD를 직접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2년 전부터 앨범 기획에 들어가 1년 전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Rebirth of Tiger JK'는 300여 곡에 달하는 후보군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실제로 이번 앨범에 참여하겠다고 직접 연락을 줬던 아티스트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타이거JK는 발매 직전까지도 꼼꼼하게 작업에 임했을 정도.
미리 들어본 앨범 수록곡들은 그야말로 올드스쿨 힙합이 바탕이 돼 완성됐다. 듣는 이들의 심장마저 울리게 할 정도 세게 두드리는 드럼 비트와 쉴 새 없이 긁어대는 턴테이블 위 스크래치 사운드의 비중은 여전히 컸다. 여기에 재즈 스타일 멜로디도 앨범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했고 여기에 트랩, EDM 사운드 등 트렌디한 장르 역시 타이거JK 스타일로 잘 녹여냈다. 전체 프로듀싱을 맡은 랍티미스트는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위해 직접 이탈리아로 건너가 심도 깊은 작업을 이어갔다는 후문.
타이거JK는 지난 1999년 1집 'Year Of The Tiger'로 출발했던 드렁큰타이거의 스타일을 함부로 꺾지 않았고 한결같이 직진만 했다. 오히려 그 정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더욱 진화를 하려 애썼다.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의 라인업은 화려했다. 그 중에서도 타이거JK가 "(메이저 신) 음악상을 수상할 때까지 음악을 계속 할 것"이라고 강조했던 가리온 MC메타, 굿라이프크루로 함께 후배 양성에 힘을 보탰던, 일리네어레코즈를 이끌고 있는 현 힙합 신 대세 도끼, 이제는 세계적인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아이돌 방탄소년단의 메인 래퍼 RM이 나란히 피쳐링 뮤지션으로 합류한 것은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가졌다.
이전 앨범을 떠올리게 하는 몇몇 단어들도 눈길을 끌만 했다. 인트로, 아웃트로 트랙은 물론 CD 앨범을 통해서만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SKIT 트랙이 5개나 됐고, '고집쟁이2', '내 인생의 반2', '뽕짝이야기2' 등 이전 앨범을 들어야 알 수 있는 제목들도 시즌2 버전으로 담겨 있었다. RM 역시 'Timeless'라는 트랙을 통해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8 45', '편의점', '6번 줄 없는 통기타' 등의 가사로 드렁큰타이거 이전 앨범에서만 담긴 기억들을 끄집어냈다.
드렁큰타이거의, 타이거JK의, 서정권의 힙합 인생은 그 누구 못지않게 파란만장했다. 현역 힙합 뮤지션으로 활동했을 당시 한국 힙합 1세대라는 명성에 맞는 대우를 받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힙합이 대중화된, 그리고 계속 빨라지고 있는 현재 힙합 신의 트렌드와는 달리 1990년대 후반 가요계는 발라드, 트로트, 포크 등으로 대변되는 인기 대중가요의 흥행 가도와 서태지와 아이들을 거쳐 H.O.T.로 대변되는 아이돌 음악의 출발 등이 혼재됐던 시기였고, 드렁큰타이거는 한국적 정서가 담긴 정통 힙합 신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선구자로서 그 무거웠던 짐을 짊어지고 홀로 걸었다. (물론 개인적인 우여곡절도 많았다.)
'난 널 원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로 가요계에서 정통 힙합이 주류로 올라설 발판을 마련하고, 'Good Life'로 SBS '인기가요'에서 2001년 클릭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으며 '남자기 때문에', '하나 하면 너와 나',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8:45 Heaven' 등을 거쳐 '발라버려'라는 가사로 유명한 'Monster'까지 임팩트 있는 타이틀 넘버로 대중 앞에 섰던 드렁큰타이거였다.
타이거JK는 드렁큰타이거를 이끌며 타이거JK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힙합 뮤지션으로서 가장 정점에 위치해 있었던 순간이 언제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MBC '무한도전'을 언급했다. 시점으로 따지면, 타이거JK가 윤미래와 유재석과 함께 퓨처라이거라는 이름으로 'Let's Dance'를 발표했던 2009년 7월이었다. 이 곡이 발매되기 직전인 2009년 6월 2CD로 완성된 드렁큰타이거 8집 'Feel gHood Muzik : The 8th Wonder'가 발매됐었다. 타이거JK는 드렁큰타이거의 정점을 드렁큰타이거가 대중적으로 가장 높은 인지도를 얻었을 때를 떠올렸던 것이었다.
이제 현역 힙합 뮤지션으로서 드렁큰타이거의 행보는 막을 내리게 됐다. 타이거JK는 "만약 내가 직접 낼 다음 앨범이 있다면 신인가수 타이거JK의 솔로 앨범이 될 것"이라고 덤덤하게 웃었다. 드렁큰타이거의 이름으로 된 앨범은 앞으로 나오지 않게 됐지만 타이거JK라는 이름이 가요계에서 지워지거나 하진 않는다. 앞으로는 제작자로서 후배들을 양성해나갈 호랑정권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 추신. 문득 지난 2014년 유명을 달리한 타이거JK의 선친이자 대한민국 1호 팝 칼럼니스트 고 서병후의 내레이션이 떠올랐다.
JK, 시간에 대해서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어
뭐 다들 그렇게 얘길 하지 어제의 시간은 아무리 아름다웠지만
지나갔기에 죽어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찾을 수가 없다
또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일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지금 오늘의 이 시간 자체가
어느 순간에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다
이렇게 어제 내일 오늘을 얘기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당황을 하고 있는데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시간은 영원해
오늘 열심히 노래하고 랩 하는 이 시간도 영원하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 거야 무슨 얘긴지 알겠어?
- 드렁큰타이거 5집 '하나 하면 너와 나' 17번 트랙 '내 인생의 반의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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