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 이상이었다. 메이저리거가 불참했고 부상과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최정예 대표팀을 꾸리지 못했다. 참가 자체에 대한 명분도 약해 팬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분위기는 돌아섰다. 명장면과 명승부를 거듭 연출하며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역대급' 대회로 평가받게 됐다.
한국은 지난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미국과의 프리미어12 결승전서 7-0으로 대승하며 초대 우승팀으로 등극했다. 삿포로돔 개막전 참패부터 예선 마지막이었던 미국전 오심, 일본과의 4강전 대역전승 등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던 대회였다. 이번 대회를 이야기하며 빼놓아서는 안될 장면 'BEST 3'를 돌아봤다.
▲ '슈퍼 센스' 우규민의 완벽한 번트 수비
조 2위가 걸린 B조 예선 5차전. 한국은 미국을 맞아 9회까지 2-2로 맞서 승부치기에 돌입했다. 10회초 무사 1, 2루에 우규민이 등판했다. 평소 번트 수비가 좋기로 정평이 났던 선수.
기대대로 우규민은 미국 주자들을 농락하는 절묘한 수비로 더블플레이를 이끌어냈다. 무사 1, 2루서 미국의 번트가 높이 떠 주자들이 귀루했는데 우규민이 원바운드로 잡아 3루로 송구했다. 1루 주자는 뒤늦게 스타트했지만 역시 2루에서 포스 아웃됐다. 무사 1, 2루는 순식간에 2사 1루가 되며 미국의 승부치기는 무득점으로 끝나는 듯했다.
2사 1루에서 미국은 도루를 시도했다. 강민호가 정확하게 송구했는데 2루심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2루수 정근우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느린 그림으로 봤을 때도 완벽한 아웃이었다. 하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고 아이브너의 빗맞은 타구가 1, 2루 사이를 빠져나가면서 결승점으로 연결됐다.
▲ 미국가는 박병호, 미국전 시원한 쐐기 3점포
침묵하던 박병호의 시원한 한 방이 결승전서 터졌다. 대회 기간 내내 아쉬움을 삼켰던 박병호였지만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가장 결정적인 홈런포를 폭발시켰다. 메이저리그행을 자축하는 큼지막한 쐐기 3점포였다.
21일 미국과의 결승전, 박병호는 4-0으로 앞선 4회초 2사 2, 3루에 타석에 들어섰다. 볼 2개를 골라내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3구째 슬라이더가 몰렸고 박병호는 놓치지 않았다. 매섭게 방망이가 돌아갔고 타구는 외야를 향해 새까맣게 날아갔다. 도쿄돔 좌측 최상단에 떨어지며 박병호는 환하게 웃었다.
▲ 한일전 영웅으로 등극한 오재원의 명품 '빠던'
일본과의 4강이 사실상의 결승전이었다. 개막전 삿포로에서 한국에 무득점 수모를 안겼던 오타니 쇼헤이를 다시 만났다. 7회까지 무득점으로 끌려갔고 8회까지 0-3으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9회초, 선두타자로 오재원이 등장했다. 대타로 나왔다. 이번 대회서 주로 대주자, 대수비 역할을 맡았으나 이번에는 방망이의 힘이 필요했다. 2스트라이크에 몰렸지만 노리모토의 체인지업을 깔끔하게 밀어 쳐 3-유간을 갈랐다. 전설은 그렇게 시작됐다. 손아섭, 정근우의 연속안타로 1점을 만회했고 이용규, 김현수의 연속 사사구로 1점차 까지 따라붙었다.
이대호가 극적인 2타점 역전 적시타를 때린 뒤 타순이 한바퀴 돌아 오재원이 다시 타석에 섰다. 2사 만루서 오재원이 친 타구는 도쿄돔 우중간을 꿰뚫고 담장을 향해 날았다. 홈런임을 직감했던 오재원도 타격 직후 다소 의도된 '과도한 방망이 던지기'로 한국 팬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줬다. 호수비에 막혀 득점과 연결되진 않았지만 이날 오재원의 활약은 역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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