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중에 고요함을 깨고 들려온 비명과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난 탠지 그리핀은 황급히 4살짜리 쌍둥이 아들들이 잠자고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쌍둥이 형인 샤킬은 방에 있었지만 동생 샤킴은 거기 없었다. 그녀는 정신없이 비명소리를 따라 온 집안을 뒤졌고 결국 부엌에서 아들을 찾았다. 샤킴은 울면서 부엌 서랍에서 부엌칼을 찾아들고 있었고 엄마를 보자 “지금 내 손가락을 잘라 달라. 너무 아프다”며 울부짖었다. 당시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어린 아들로부터 칼을 빼앗은 뒤 그를 끌어안고 침대로 데려가 달래면서 재우는 것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텐지와 테리 그리핀 부부는 바로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갔고 결국 샤킴은 이날 왼손을 팔목에서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샤킴의 증상은 ‘양막띠 증후군'(Amniotic Band Syndrome)이라는 선천성 희귀질환으로 탠지가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발견됐던 것이었다. 그가 엄마의 뱃속에서 태아 상태로 있을 때 얇은 양막띠 티슈가 그의 왼손부위에 감겼고 그 띠가 태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손으로 가는 혈액공급을 차단해 왼손의 정상적인 발육을 막은 것이다. 당시 의사들은 바늘을 이용해 그 띠를 제거하는 수술을 제안했으나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고 자칫하면 쌍둥이 중 한 명은 생존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에 그리핀 부부는 수술을 포기해야만 했다.
결국 샤킴은 왼손 손가락들이 가벼운 터치에도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상태를 가지고 태어났고 결국은 4살 때 극심한 고통으로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려 하는 상황이 되자 부모는 어린 아들의 손을 절단하는 뼈아픈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왼손이 없는 장애를 지니게 된 샤킴 그리핀(22)은 놀랍게도 가장 격렬한 스포츠중 하나인 풋볼선수로 자라났고 지금 NFL에서 최고의 화제인물로 떠올랐다.
그리핀은 지난달 27일부터 5일(이하 현지시간)까지 인디애나주 타운십의 루카스 오일 스타디움(인디애나폴리스 콜츠 홈구장)에서 펼쳐진 NFL 콤바인(구단들이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신체적인 능력을 검증하는 행사)에 초청을 받아 참가하고 있는데 여기서 계속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대학풋볼에서 유일무이한 전승팀(13승)이었고 전국랭킹 6위로 시즌을 마친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에서 라인배커로 맹활약, 소속 리그인 아메리칸 애슬레틱 콘퍼런스의 ‘올해의 수비수’로 선정된 그리핀은 사실 드래프트 유망주들이 참가하는 이번 NFL 콤바인의 초청자 명단에 없었지만 막판에 초청장을 받아 참가하게 됐는데 아무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선수가 이번 콤바인의 최고 스타로 떠오른 것이다.
그리핀은 지난 4일 실시된 벤치 프레스에서 225파운드(102kg)짜리 바벨(역기)을 들고 총 20번을 들어올렸다. 특히 왼손이 없는 그는 바벨을 잡기 위해 왼손에 의수(prosthetic hand)를 부착하고 벤치 프레스에 나섰는데 벤치 프레스에 나서기 전 자신의 목표를 6개라고 밝혔던 그리핀이 자신의 목표를 3배 이상 초과 달성하자 지켜보던 NFL 스카우트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NFL에서 선수의 파워를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인 벤치 프레스에서 그는 의수를 착용한 채 리그 정상급의 파워를 보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이어진 40야드 질주 테스트에서 4.38초라는 놀라운 기록을 찍어 단숨에 이번 콤바인의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4.38초란 NFL 콤바인 역사상 라인배커로는 가장 빠른 스피드였고 총 336명이 나선 올해 콤바인에서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서도 4.32초를 기록한 3명의 디펜시브백과 4.34초와 4.37초를 찍은 두 명의 와이드리시버를 제외하고는 가장 빨랐다. 디펜시브백과 와이드리시버는 모두 스피드가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반면 라인배커는 스피드와 함께 파워를 겸비해야 하는데 그리핀은 이날 파워는 물론 스피드에서도 리그 최정상급 기록을 작성한 것이다.
그가 기록한 4초38이라는 기록이 얼마나 인상적인 것인지는 스피드가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러닝백과 와이드리시버, 디펜시브백에서 현 NFL ‘올 프로’들인 이지키엘 엘리옷(달라스 카우보이스), 훌리오 존스(애틀랜타 팰콘스), 리처드 셔먼(시애틀 시혹스)의 기록보다 빠르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에 시애틀 시혹스에 지명돼 디펜시브백으로 뛰고 있는 그의 형 샤킬 그리핀도 지난해 NFL 콤바인에서 40야드를 4.38초에 주파했는데 샤킬은 몸무게가 194파운드(88Kg)로 샤킴(227파운드, 103Kg)보다 33파운드(15Kg)이나 가볍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형도 제친 셈이다.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40야드 4.38초는 100m로 환산할 경우 10.60초가 될 것으로 추정됐다. 몸무게가 100Kg가 넘는 거구의 선수가 육상 단거리선수처럼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리핀의 가장 돋보이는 강점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달리는 경이적인 불굴의 정신력이다. 4살 때 왼손 절단수술을 받고 퇴원한 뒤 다음 날 데이케어에 간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부모의 엄격한 지시에도 불구, 풋볼을 손에 잡았고 저녁 때 그를 데리러 간 엄마는 왼손 부위를 감싼 붕대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풋볼을 놓지 않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전에는 풋볼을 만지면 아팠는데 (수술 후엔) 볼에 부딪혀도 아프지 않았다. 괜찮았다. 난 무조건 풋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손이 없는 핸디캡에도 불구, 단 한순간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던 그는 자라나면서 쌍둥이 형을 따라 풋볼은 물론 육상과 야구선수로도 뛰었다. 무엇을 해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그였지만 센트럴 플로리다대 진학 후 첫 2년간은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했다. 한 손이 없는 핸디캡이 컸다. 쌍둥이로 함께 센트럴 플로리다대학에 입학한 형 샤킬이 1년 먼저 졸업한 것도 샤킴은 1학년 때 전혀 경기에 나서지 못해 1년을 더 뛰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3학년 때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 스콧 프로스트 감독이 핸디캡에도 불구, 불굴의 투지와 정신력으로 플레이하는 그를 알아보고 중용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기량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벤치 프레스 때는 어쩔 수 없이 의수를 사용했지만 경기 때나 평소에는 의수를 쓰지 않는 그는 한 손이 없음에도 불구, 엄청난 스피드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으로 상대선수를 추격, 양팔로 상대를 감아 쓰러뜨리는 ‘태클 머신’이었고 지난해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이 13전 전승으로 시즌을 마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그리핀의 모토는 “변명은 없다”(No Excuse)다. 절대로 자신의 장애를 핸디캡으로 생각하고 물러서거나 변명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60초 먼저 태어난 형과 뜨거운 형제애로 뭉쳐 있었지만 항상 형에 뒤지지 않으려고 더 노력했다. 프로스트 감독은 “내 생애 그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항상 붙어 다닌 샤킴과 샤킬은 늙을 때까지 계속 함께 있자고 약속했다. 형제가 나란히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에 간 것도 더 큰 대학들이 형 샤킬에게만 장학금을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NFL에서도 같은 팀에서 뛰기를 원한다. 샤킴은 샤킬의 팀 시혹스의 광팬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NFL에서도 두 형제가 함께 뛰게 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32개나 되는 팀 가운데 누가 샤킴을 지명할지도 모르지만 그가 이번 NFL 콤바인에서 최고 스타로 떠오르면서 지명도가 급상승했기에 시혹스가 막판 라운드에서 그를 지명할 찬스가 사라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당초 그는 6~7라운드에서 지명될 선수로 평가됐는데 이번 콤바인을 거치면서 3~4라운드급 선수로 격상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NFL 드래프트에서 한 손이 없는 장애를 지닌 선수가 지명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리핀은 “누구가가 내게 ‘넌 할 수 없다’고 할 때마다 난 그냥 행동으로 내가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과연 외손잡이 라인배커의 감동적인 도전 스토리가 NFL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을 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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