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6일 일본 홋카이도 오비히로에서 열린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2019~2020 정규리그 안양 한라(한국)-이스트 홋카이도 크레인즈(일본)의 경기에서 감동의 메시지가 안양한라에게 전달됐다.
안양 한라에게 있어서 크레인즈는 은인과도 같은 구단이다. 1994년 창단한 안양한라(당시 만도 위니아)는 국내 실업 팀의 잇따른 해체로 홀로 남게 됐고, 그 무렵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일본 구단과 교류를 통해 살아 남고자 했다.
하지만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일본의 어느 구단은 실력 차가 너무 나기 때문에 한국 팀과 교류를 할 의미가 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훗날 2003년 아시아리그가 창설 되었을 때에도 한라는 일본의 고쿠도에게 1-11, 크레인즈에게 3-13으로 지는 등 격차는 상당했다.
그때 유일하게 한라의 손을 잡아 준 구단이 일본제지 크레인즈다. 1999년 두 구단은 자매결연을 맺었고, 그 후 한라는 2002년까지 크레인즈의 연고지인 쿠시로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했다. 크레인즈는 한라의 연습 경기 상대가 되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지훈련에 필요한 부분을 물심양면 지원 해줬다.
지난 2018년 12월 모기업의 재정악화로 1949년에 창단한 '일본제지 크레인즈' 아이스하키팀이 7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해단을 발표 했다.
2019년 1월 20일 일요일, 공교롭게도 '일본제지 크레인즈'의 2018~2019 시즌 정규리그 마지막 홈 경기 상대는 20년 지기 친구 구단인 안양 한라였다. 약 2300명이 관중이 운집한 쿠시로 단초아레나에서 어쩌면 두 팀의 마지막 승부가 될지 모르는 경기에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뛰었다.
크레인즈의 홈 구장인 쿠시로 단초 아레나는 안양 한라가 처음 아시아리그 챔피언 컵을 들어 올린 곳이기 때문에 마지막 경기 이상으로 더 각별했다.
경기 종료 후 양 팀은 선수-코치-직원-관계자 모두 빙판 위로 올라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빙판에서 만나자는 메시지와 함께 두 친구 구단의 추억의 마지막 조각이 될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올해 봄, 크레인즈는 '이스트 홋카이도 크레인즈'라는 새 이름으로 아시아리그 2019~2020 시즌에 출전 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연고지는 그대로 쿠시로다.
2019년 9월 아시아리그가 개막했고, 두 팀은 크레인즈의 제2연고지인 오비히로에서 재회했다. 경기 전 워밍업(경기 시작 전 40분부터 20분간 실시)이 시작이 가까워 지자 안양 한라 벤치 건너편의 관중석이 분주해졌다.
안양 한라 선수들이 빙판으로 입장하자 크레인즈 서포터즈 여러 명이 한글로 된 대형 현수막을 펼쳤다. 지난 시즌 쿠시로에서의 마지막 인사 후 맞는 재회의 기쁨을 뭉클한 감동의 메시지로 끝어내었다. 문구는 "우리는 오랜 친구 한라(안양 한라)와 올해도 함께 대전할 수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였다.
문구 현수막을 펼친 채로 크레인즈의 팬들은 북소리와 함께 '안양 한라'를 몇 분간 외쳤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감동의 메시지와 진심 어린 응원이었다. 안양한라 선수들과 벤치에 있던 마르티넥 감독과 코치들이 엄지를 치켜 세우며 크레인즈 팬들에게 답례했다.
승패를 떠나 한라와 크레인즈 두 구단이 보여준 뜨거운 우정은 냉정함이 지배하는 스포츠의 세계에 따뜻한 온정도 있음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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