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탈코리아=울산] 이현민 기자= “필드 코치가 한 분도 안 계시네요...”
울산 현대 관계자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호랑이굴을 덮쳤다. 하필 포트FC와 경기 하루 전(14일) 다수의 양성자가 나오면서 비상에 걸렸다.
“선수단 운영이 쉽지 않다. 가용한 선수를 추려 경기 준비를 하겠다.”
홍명보 감독이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불행 중 다행은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최소 인원이 나왔다.
경기 당일(15일 오후 7시), 울산과 포트의 2022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플레이오프 명단이 공개됐다.
박주영이 최전방을 책임졌고, 바코-아마노-이규성-최기윤이 뒤에서 지원했다. 윤일록-이명재-김성준-김재성-김태환이 수비라인을 구축했다. 공격 시 스리백, 수비 시 파이브백을 형성했다. 지난 11일 FC서울과 K리그1 5라운드 홈경기에 경기 초반 김기희의 부상으로 강제 스리백을 쓴 이후 두 경기 연속 불가피하게 스리백을 가동했다.
대기 명단에는 골키퍼가 2명(조수혁, 설현빈), 레오나르도, 엄원상, 고명진, 플레이코치 이호까지 포함됐다. 선발 11명+교체 6명=총 17명. 골키퍼를 제외하면 필드 4명, AFC가 정한 5명 교체도 전부 못 쓰는 선수 구성이었다. 쥐어 짜냈다.
경기 전 이색 장면이 연출됐다. 이르면 경기 전 50분, 늦어도 40분을 남겨두고 양 팀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그라운드에 나온다. 그런데 울산 쪽은 뭔가 허전했다. 평소와 달랐다. 포트에 비해 선수들이 적은 건 둘째 치고 코치들이 안 보였다. 코로나가 지도자들에게도 퍼졌다.
홍명보 감독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축구화를 신은 모습이 보였다.
전시 상황으로 치면 대대장(홍명보)을 제외한 참모와 중대장들이 피격을 받은 셈. 일부 분대장(맏형들)도 쓰러졌으니, 반 토막 난 전력을 갖고 싸우는 상황이 됐다.
경기 전 홍명보 감독이 워밍업을 지휘했다. 최종 전투를 앞두고 대대장이 직접 시범을 보인 격. 조광수 골키퍼 코치는 조현우, 조수혁, 설현빈과 별도로 훈련을 했다.
필드 선수들은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풀며 서서히 예열했다. 콘을 세워두고 잔발 스탭, 러닝, 점프 등 온몸이 흠뻑 젖도록 땀을 뺐다. 이후 볼을 다루며 가벼운 패턴 훈련, 패스, 미니게임 등을 통해 터치와 패싱 감각을 익혔다. 기본적인 룰이다.
막바지에는 슈팅 훈련을 한다. 이때 홍명보 감독이 아크 정면에 골대를 등지고 서서 볼을 리턴 받아 좌우로 내줬다. 선수들은 슈팅 이후 측면에서 날아오는 크로스를 문전에서 마무리했다. 홍명보 감독의 패스를 받은 선수들이 알아서 척척 해냈다.
불가피하게 홍명보 감독은 이번 시즌 내내 고수했고, 약속했던 정장도 입을 수 없었다. 엉덩이를 잠시 벤치에 붙일 틈도 없었다. 90분 내내 테크니컬에이리어에 서서 온몸으로 표현하고 소리쳤다. 어린 선수들과 실전 감각이 떨어진 선수들이 더러 있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동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플레잉코치인 이호와 수시로 소통하며 선수들의 위치와 멘털까지 잡아줬다. 그야말로 1인 다역이었다.
다행히 선수들도 화답했다. 전반 12분 신예 최기윤이 재치 있는 왼발 슈팅으로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신고했다. 후반에 교체로 들어간 엄원상과 레오나르도가 연속골을 뽑아내며 울산의 3-0 승리를 주도, ACL 본선 티켓을 선사했다.
홍명보 감독은 “오랜만에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의 워밍업을 도왔다. 좋았다. 하지만 이게 우리팀의 현실이다. 벤치에 앉는 코칭스태프 숫자도 맞추지 못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선수들이 잘해줘 승리했다”고 전했다.
수장을 필두로 구성원 모두가 한 발씩 더 뛰며 위기를 헤쳐나갔다. 이렇게 울산은 또 한 번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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