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이버는 쇼, 퍼트는 머니.'
골프에서 통용되는 격언이다. 마치 '농구는 신장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는 농구 격언과 유사한 이야기다. 드라이버는 화려하지만 정작 타수, 성적의 차이를 만드는 건 퍼터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드라이버 비거리는 골프인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누군가에겐 자부심이 되고 누군가에겐 최대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프로의 세계라고 다르지 않다. 30일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크리스 F&C 제45회 KLPGA 챔피언십에 나선 박결(두산건설)은 약점인 드라이버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고 여전히 "드라이버 티샷을 할 때는 죽을 힘을 다해 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코 드라이버 비거리가 좋은 성적의 절대적 요소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두 골퍼가 있다. 30일 끝난 DP 월드투어와 코리안투어가 공동 주관하는 코리아 챔피언십에서 각각 우승과 3위를 차지한 불혹 동갑개기 듀오 파블로 라라사발(스페인)과 박상현(이상 40·동아제약)의 이야기다.
라라사발은 12언더파 276타로 통산 7번째 DP 월드투어 정상에 섰다. 코리안투어 11승에 빛나는 박상현은 나란히 컷 탈락한 올 시즌 두 우승자 고군택(24·대보건설)과 조우영(22·우리금융그룹)과는 대비되는 행보였다.
라라사발은 올 시즌 드라이버 비거리가 301야드(275m)로 DP 월드투어 평균인 310야드에 못 미친다. 전체 136위로 비거리로 돋보이는 골퍼가 아니다. 우승 후 "환상적이다. 얼마 후면 (만으로) 40대가 되는데 나보다 40야드는 비거리가 더 나는 선수들과 경쟁해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이를 극복한 건 바로 정교한 아이언샷과 숏게임, 코스에 맞는 전략(매니지먼트)이었다. 이번 대회 어떤 때가 좋았냐는 질문에 "화요일에 코스에 나가보고 나와 잘 맞는다고 느꼈을 때와 대회 도중 다음날 바람 예보가 있다고 했을 때"라며 "비거리가 멀리 가는 선수는 아니지만 바람을 사랑하고 탄도를 낮게 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가장 좋은 기록(5언더파)을 낸 5라운드에서도 드라이버 비거리는 평균에 못 미쳤지만 전체 1위에 빛나는 높은 그린 적중률(94.4%)을 앞세워 정상에 올랐다. 드라이버 거리는 길지 않았지만 바람과 코스 등을 잘 공략해 전체 4위에 해당하는 페어웨이 안착률(85.7%)을 보인 것도 우승의 비결이었다.
박상현도 마찬가지다. 롱런의 비결을 묻자 "비결은 없다. 나도 좀 신기하다. 잘 모르겠다"면서도 "나만의 스타일대로 드라이버 정확도에 초점을 맞춘다. 유럽 선수들은 거리가 많이 나는데 그걸 따라하려고 하면 더 많은 미스가 난다. 내 장점인 어프로치나 퍼터 등 숏게임을 더 보완하고 흐름을 잘만 타면 항상 좋은 성적이 나더라"고 설명했다.
박상현은 시즌 평균 타수(68.63)와 그린적중률(78.47%)에서 1위, 평균 퍼트수(1.72) 8위에 올라 있지만 드라이버 거리는 287.82야드(263m)로 97위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대회 어떤 한국 선수들보다도 좋은 성적을 냈다. 이날 뒤처졌던 경기 후반 공동 3위까지 뛰어오를 수 있었던 것도 14번 홀(파4) 환상적인 칩 인 이글이 결정적이었다.
이번 대회가 열린 잭니클라우스GC는 이국적이고 난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코스를 대하는 베테랑들의 자세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라라사발은 "전반 9홀은 자제했다. 이런 코스에선 언제든 1,2타 차로 쉽게 미끄러질 수 있고 우승하려면 후반 9홀을 잡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4라운드 전반에 지키는 공략을 펼친 라라사발은 후반에만 버디 4개를 잡아내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박상현도 마찬가지다. 잭니클라우스 코스가 어려웠다면서도 "페어웨이나 그린도 딱딱하다보니 일부러 낮게 쳐 거리도 내는 타법도 시도했다"며 상황에 따른 공략법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300m를 넘게 티샷을 날리는 건 아마추어와 프로를 불문한 프로들의 로망과 같다. 호쾌한 드라이버샷에 많은 이들은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세상에 일에 휘둘려 판단이 흐려지는 일이 없어진다는 불혹을 맞이한 두 동갑내기 골퍼는 자신들만의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꾸준하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있었고 이는 젊은 선수들이 되새겨봐야 할 중요한 골프의 덕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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