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미국을 적지에서 완파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더 높은 팀을 상대로 원정에서 거둔 승리다. 그런데 정작 이날 경기 최우수선수는 1골 1도움의 맹활약을 펼친 손흥민(로스앤젤레스FC)이 아닌 골키퍼 조현우(울산 HD)였다. 미국전 결과에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끈 한국은 지난 7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해리슨의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과 평가전에서 2-0으로 승리했다. FIFA 랭킹은 한국이 23위, 미국은 15위로 한국이 더 낮다. 한국축구가 FIFA 랭킹이 더 높은 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건 지난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 포르투갈전(당시 한국 28위·포르투갈 9위) 이후 처음이다.
전방에서 가장 빛난 건 단연 '캡틴' 손흥민이었다. 전반 18분 이재성(마인츠)의 침투 패스를 받아 왼발 슈팅으로 미국 골망을 흔든 손흥민은 전반 43분 이동경(김천 상무)의 골까지 도왔다.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2골에 모두 관여했다. 미국을 꺾은 결승골 역시도 그의 몫이었다.
그런데 정작 경기 최고 평점은 손흥민이 아니었다. 축구 통계 매체 폿몹은 손흥민과 조현우에게 나란히 8.3점의 평점을 매겼다. 다만 경기 최우수선수로는 조현우를 선정했다. 공개되진 않았지만 소수점 이하 경쟁에서 조현우가 손흥민에 앞섰다는 뜻이다. 적장인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미국 대표팀 감독마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최우수 선수는 골키퍼(조현우)"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그만큼 조현우는 '눈부신 선방쇼'를 펼쳤다. 전반 14분 김민재(바이에른 뮌헨)의 패스미스가 상대의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된 장면을 선방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에도 조현우는 골문을 든든하게 지켰고, 후반 추가시간엔 문전에서 찬 상대 슈팅을 모두 쳐내는 등 그야말로 슈퍼세이브를 잇따라 선보였다. 이날 조현우는 무려 5개의 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4개는 페널티 박스 안 슈팅을 선방한 것이었다. 기대실점(xGA)은 2.2였으나 단 1골도 실점하지 않았다. 축구 통계 업체 옵타는 '벽(Wall)'이라는 한 단어로 조현우의 활약상을 조명했다.
다만 이처럼 승리 후 스포트라이트가 골키퍼에게 집중되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실점 위기가 많았다는 의미이자, 수비가 불안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골키퍼가 주목을 받는 경기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인 팀이 의외의 결과를 냈을 때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FIFA 랭킹에서 미국에 열세이긴 했으나 골키퍼가 주목받을 만큼 그 격차가 크진 않았다. 더구나 미국은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진 전력이었다. 승리라는 결과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는 이유다.
이날 슈팅 수에서 한국이 5-17로 크게 열세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후반전엔 슈팅 수에서 1-14로 밀리며 주도권을 상대에 완전히 내준 채 경기를 치렀다. 2골 차 리드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크게 수세에 몰린 경기 내용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조현우의 선방 5개 중 4개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허용한 슈팅을 막아낸 것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오랜만에 한국팀다운 경기를 했다"는 홍명보 감독의 경기 후 자평은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김승규(FC도쿄), 송범근(전북 현대)의 복귀 속 다시 불붙은 대표팀 골키퍼 경쟁에서 조현우가 확실한 존재감을 선보였다는 건 물론 의미가 크다. 다만 1골 1도움을 기록한 손흥민보다 더 주목받을 정도의 '신들린 선방쇼'를 앞으로도 매 경기 기대할 수는 없다. 결국엔 최후방을 지키는 골키퍼 선방에 기대는 게 아니라, 전술적으로 골키퍼 부담을 최소화하는 게 팀으로서는 가장 이상적이다. 미국전 결과에 만족할 게 아니라, 홍명보 감독이 고민하고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은 오는 10일 오전 10시 미국 테네시의 지오디스 파크에서 멕시코와 두 번째 평가전을 치른다. 멕시코는 FIFA 랭킹 13위 팀으로 미국보다 더 높다. 다만 앞서 일본(17위)과의 평가전에서는 0-0으로 비겼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