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스트로크 안 좋아."
팀 동료 무라트 나지 초클루(51·튀르키예)의 말에 여제는 '긁혔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각성할 수 있었다. 김가영(42·이상 하나카드)은 그렇게 다시 한 번 역사를 썼다.
김가영은 7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2026시즌 4차 투어 'SY 베리테옴므 PBA-LPBA 챔피언십' LPBA 결승에서 스롱 피아비(35·우리금융캐피탈)를 세트스코어 4-2(11-9, 10-11, 11-4, 6-11, 11-4, 11-4)로 이겼다.
역대 최초 8연패를 달리던 김가영은 시즌 2차 투어 준결승에서 스롱에게 덜미를 잡혔지만 이번엔 3연패에 나선 스롱을 결승 무대에서 꺾어내며 자신이 보유 중인 프로당구 최다승 기록을 다시 한 번 갈아치웠다. 16번째 우승 트로피.
우승 상금 4000만원을 보탠 김가영은 시즌 누적 8550만원으로 1위 스롱(9100만원)의 뒤를 바짝 쫓았고 통산 상금은 7억 6730만원으로 이젠 8억원을 내다보게 됐다. 우승 상금이 1억원에 달하는 PBA에서도 8억원을 넘어선 건 단 3명에 불과하다. 김가영이 얼마나 독보적인 커리어를 써나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무려 920일 만에 꿈에 그리던 결승 매치업이 성사됐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았다. 6세트 혈투에도 경기 진행 시간은 단 115분에 불과했다. 눈 깜빡하면 매 세트 한 선수가 승리에 가까워져 있을 정도로 속도감 있게 진행된 결승전이었다. 김가영은 3세트 여자부 결승 역대 2번째 퍼펙트큐를 아쉽게 놓칠 정도로 집중력 높은 경기를 펼쳤다. 김가영의 애버리지는 1.222, 준우승을 차지한 스롱도 1.125로 역대 가장 수준 높은 결승전으로 당구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유례 없이 팽팽한 결승전이었으나 김가영의 뒷심이 무서웠다. 5,6세트를 내리 가져오며 다시 한 번 정상에 등극했다. 경기 후 김가영은 "기분 좋은 출발도 안 됐고 여러모로 고민을 많이 했다"며 "컨디션 조절을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안됐다.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옆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고 최선을 다해 찾아가려고 하는 과정이 잘 맞아서 좋은 결과까지 이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제'라는 칭호와 달리 김가영은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이번 대회를 앞둔 그에겐 장타를 위한 포지션 플레이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김가영은 "더 높은 레벨에 도달하기 위해 포지션 플레이에 집중하고 훈련했는데 지금까지 잘 되던 것들까지 불안해졌다"면서 "실력이 늘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잘 겪어내려고 지금도 애쓰고 있다. 이번 대회 때 전체적인 컨디션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 쪽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장타는 꽤 나왔던 것 같다. 그런 부분도 어떻게 밸런스를 맞춰 단단히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제를 자극한 건 김가영과 함께 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맡고 있는 초클루의 한마디였다. 김가영은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이로 초클루를 꼽으며 "야단도 많이 친다. 자존심에 스크래치 나는 말도 했다"며 "스트로크가 안 좋다고 했다. 여자 선수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너보다 스트로크가 훨씬 좋다고, 가서 공부하라고 했다.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초클루의 선택을 받은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밝힐 수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남자부까지 통틀어도 상금 랭킹 4위에 올라 있는 여제에게 누가 쉽게 쓴소리를 할 수 있을까. 김가영은 "초클루 아니면 그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선수가 많지 않다"며 "'진짜 그런가'라는 생각에 그 선수들의 스트로크를 열심히 살펴보며 내가 뭐가 부족한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건지 고민했다. 물론 전반적인 능력치에 대한 게 아니라 특정 부분에 대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아프긴 아팠다. 우승하고도 연습을 더 해야 한다면서 혼내더라"고 웃었다.
지난 시즌 스롱이 무관에 그친 가운데 김가영은 연속 우승 질주를 하며 '압도적 1황'이 됐다. 그러나 올 시즌 스롱이 부활하며 4개 대회에서 김가영과 우승을 두 차례씩 나눠가졌다. 다시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김가영은 "늘 얘기하지만 3쿠션에선 한참 후배다. 처음에 3쿠션으로 넘어왔을 때부터 스롱이 경험 면에서 월등하다는 게 보였다. 운영 능력도 마찬가지다. 여러 방면에서 부족한 게 많이 있다"며 "보는 분들이 누구와 라이벌이라고 말하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라이벌이 있으면 더 재밌게 봐주실 수 있고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성장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에 대한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아마도 얼마 안지나면 젊은 선수가 우승하지 않을까 싶다. 꼭 우리 두 사람이 나눠갖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매치업은 물론이고 두 선수 모두 1점대 애버리지를 기록하며 경기력까지 '역대급 결승'이었다. 그럼에도 김가영은 "이번 결승이 팬들에게 여자부의 실력이 성장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건 잘 모르겠다. 기존엔 애버리지만 올리려고 노력했는데 초클루가 1점대에도 만족할 수 있고 2.5를 쳐도 불만족한 경기가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애버리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며 "다만 여자 선수들의 성장이나 그로 인해 팬층이 두터워지는 것도 보일 것 같다. PBA도 힘써주고 있고 선수들도 노력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성장해야 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