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류현진이다", "김혜성도 있어."
야구 팬들에겐 깜짝 선물이었다. 평소 가까이하기 힘들었던 야구 스타들을 너무도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할 수 있었고 거리낌 없이 사진과 사인을 요청했다. 흡사 팬미팅 현장을 보는 듯 했다.
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해외로 향하는 이들은 아무렇지 않고 옆을 지나가는 건장한 사내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표팀 복장을 한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공항을 배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는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대비해 9일부터 21일까지 사이판에서 펼쳐지는 1차 캠프에 나서기 위해 인천공항에 집결한 것이다.
선수단의 스케줄을 확인한 '찐팬'들은 새벽 6시부터 공항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선수단이 들어설 출국 게이트 쪽에 자리를 잡았고 수속을 마친 선수들과 어려움 없이 사진을 찍었다.
우연히도 해외 일정이 겹친 팬들 입장에선 뜻밖의 선물이 됐다. 팬들과 취재진, 경호 인력 등이어 얽혀 북새통을 이뤘던 체크인 카운터와는 달리 선수들은 같은 팀, 혹은 또래 선수들끼리 모여 탑승 시간을 기다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이들을 알아본 야구 팬들에겐 절대 놓칠 수 없는 '인증샷'의 기회가 됐다. 선수들도 평소 야구장이나 행사장에서와는 달리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흔쾌히 팬들의 요청을 받아줬다.
같은 항공편에 오른 야구 팬들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얻었다. 탑승 게이트 앞은 일찌감치 팬미팅 현장이 돼 있었다. 일반 탑승 게이트와 별개로 나눠져 있었던 덕분에 같은 항공편을 이용하는 승객들로선 평소 응원하던 선수들의 얼굴을 마음껏 보고 대화도 나누며 원하는 팬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선수단은 일반 승객들이 모두 착석한 뒤 한꺼번에 탑승했는데 앞서 선수단과 동행하는 걸 몰랐던 승객들은 깜짝 놀라며 신기한 눈빛으로 선수들을 쳐다봤다.
통상 야구 대표팀은 국제대회 혹은 해외 전지훈련을 떠날 때 비즈니스 좌석을 활용한다. 일반 승객들과 섞일 경우 서로 불편을 겪을 수 있고 선수들의 신체 특성상 이코노미 좌석에선 일반일들에 비해 더욱 불편함이 많기 때문이다. 장시간 비행일 경우 이러한 피로도는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대표팀이 주로 이용하는 국적기는 300석 이상의 대형 항공기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만큼 프리미엄 좌석의 수도 많다. 이코노미 내에서도 앞뒤 간격이 다소 넓은 좌석이 존재하고 크게 두 칸으로 나눠져 일반 승객들과는 잘 마주치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돈이 없어서도, 준비가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현재 인천에서 사이판으로 갈 수 있는 항공편은 단 두 기뿐이다. 나머지 한 기는 새벽 일정이기에 대표팀으로선 선택권이 없었다.
총 200석이 안되는 소형 항공기이기에 프리미엄 좌석도 매우 제한적이었고 총 12석의 비즈니스 좌석은 감독과 코치진, 그리고 최고령인 노경은과 투수와 야수조 조장 류현진, 박해민(LG)에게 돌아갔다.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 김혜성(LA 다저스)도, 2024년 최우수선수(MVP) 김도영(KIA 타이거즈)도 모두 일반 승객들과 섞여 이코노미 좌석에 몸을 실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선수들이 단체로 이렇게 일반 좌석에 앉는 경우는 처음이다. 사이판행 항공편이 (낮 비행기는) 한 대뿐이라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다"며 "승객 분들도 그렇고 저희도 매우 신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선수단 50여명과 일반 승객을 태운 사이판행 비행기는 공항에 도착해서 진정한 팬미팅의 장으로 바뀌었다. 앞서 선수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던 이들도 이날 낮에 사이판에 당도한 유일한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더욱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 선수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평소 해외 일정 때에 비해 피로감은 더 클 수 있었지만 선수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됐다. 원태인은 "저도 일반 승객들과 함께 섞여 비행기에 오른 건 처음"이라고 밝혔고 김혜성은 "팬들의 그런 관심도 너무 감사하다. 사진과 사인 요청도 그렇고 그냥 알아봐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다"며 "그래서 너무 좋은 마음으로 응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팬들에겐, 특히 어린 야구 팬들에겐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출장 차 다녀왔다는 사이판에 거주 중인 한국계 2세 교포 라저 리씨는 "선수들께 죄송스럽긴 하지만 이런 기회가 흔치 않아 꼭 사인을 받아보고 싶었다"며 "류현진 선수께 조심스레 물어봤는데 흔쾌히 해주셨다. 제 아들인 유일이가 워낙 야구를 좋아하는데 신기하고 신나 하더라.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또 다른 야구 팬 A씨는 "인천공항에서 선수들을 보는데 깜짝 놀랐는데 같은 비행기여서 신기했다"며 "류현진, 김혜성 선수는 물론이고 야구장에 가도 쉽게 가까이서 마주할 수 없었던 선수들과 함께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 것 같아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