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발가락' 10박11일의 에필로그

발행:
이기범 기자
송일국과 함께한 '청산리 역사 대장정'... 발가락 신발에서 폭우와 전쟁까지

"10박11일 중국 출장이라고? 야호~~" 지난 6월 중순 출장 소식을 처음 접하고 속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빡빡한 일정표 (6월 27일~7월 6일)를 받아본 순간,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이건 체력훈련에 버금가는 고행길이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매일 3~4시간 버스 안에 갇혀서 이동해야 하는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출장을 빙자해 머리나 식히고 오려던 기대감은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이 뜨거운 여름에 두 대의 카메라를 짊어지고 걸어서 취재를 다니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한숨이 나왔다.


배우 송일국과 함께 떠난 '청산리 역사 대장정'이야기다. 100명의 대원들 사이에서 선두와 맨 뒤를 오가며 동분서주 사진을 찍었다. 체력소모는 남들보다 2~3배는 더했다. 하지만 '건전한' 우리 젊은이들과 함께 잊지말아야할 우리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발로 누비며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감동과 희열을 전해주었다.


'지옥훈련' 같았던 대장정이 끝난 지 한달, 2013년 여름의 열흘은 내게 유럽여행도 부럽지 않은 인생의 최고의 여행이자 출장으로 남을 것 같다.


◇ 2013.6.27. 낯선 독립군가 경연대회


사정상 '청산리대장정'의 사전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지 못한 나는 출발 직전 인천항에서 합류했다. 배를 타고 간다고 한다. 나는 배를 타고 독도를 이미 세 번이나 다녀온 경험이 있다. 2회는 5시간 동안 고속정을 타고 이동했고 한번은 한국체육대학교 학생들의 대한해협 횡단을 취재하며 2박 3일간 배안에 갇혀있기도 했다.


처음 만나는 낯선 이들과 떠나는 장시간 항해... 약간은 긴장감이 몰려왔다. 배에 올라 짐을 풀고 나니 어느새 저녁시간이었다. 식사후 곧 조원들의 '독립군가 경연대회'가 시작됐다. 각 조는 뮤지컬, 사극 등을 접목시켜 다양한 느낌으로 독립군가를 표현해 냈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들, 하지만 잊혀져가는 우리 독립군가를 이렇게 되살려내니 감흥이 남달랐다.


◇ 2013.6.28‥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중국 대련 도착




눈을 뜨니 중국 대련항이다. 배에서 내리니 중국의 뜨거운 햇살이 우리를 맞이했다.


인원점검과 사전교육을 마친 대원들은 3대의 버스에 올랐다. 나는 송일국 팀장과 같은 버스인 1호차였다. 전 대원이 차량 탑승을 마친 뒤 송일국은 인원점검 및 버스 안을 돌아다니며 직접 물을 나눠주는 등 대원들을 챙기는 세심한 모습을 보였다. '상남자' 송일국 '이토록 살뜰한(?) 남자였던가'


한 시간 정도 이동해 중국에서의 첫 식사 장소에 도착. 물론 중식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대원들이 중식의 깊은 향신료 맛에 적응을 못한 듯 보였다. 그중 일부는 배탈을 호소하기도 했다. 역시 외지에 나가면 물과 음식이 제일 문제다. 지체할 수는 없다. 식사 후 서둘러 이동채비를 했다.




청산리 원정대 대원들이 처음 방문한 곳은 독립운동가 안중근 선생과 신채호선생이 수감됐던 일제시대 형무소 여순 감옥과 일제가 망할 때까지 최대 2000명을 수감할 수 있었던 중국 동북 지역 최대의 감옥인 관동법원구지였다. 뜨거운 지열만큼이나 뜨거운 무언가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왔다.


두 분의 정기를 느낀 답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또 이동, 4시간을 달려 단동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다. 첫날이 저물었다.


◇ 2013.6.29 '청산리 발가락'



대장정의 둘째 날 아침. 우리들은 기상과 함께 호텔 로비에 모여 간단한 아침 운동과 식사를 마치고 압록강으로 이동했다.


압록강 유람선에 올라 압록강 단교와 북한 신의주 지역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대원들이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건너편 북한 주민들을 향해 인사하자 그들 모두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다. 일부는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어쩔수없는 민족적 동질감을 느끼던 순간이다.


전율도 잠시, 매년 청산리 역사대장정을 따라다닌다던 '비'를 만나게 됐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에 우리들은 급히 판초 우의를 착용하고 압록강 단교를 찾았다.



6.25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곳에서 절로 숙연해졌다. 박작성을 둘러본 뒤 전투식량 비슷한 짜장밥을 먹었다. 마음이 먹먹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3시간 30, 환인에 도착했다. 내발의 피로도가 너무 높아지고 있었다. 어쩔수 없다. 비장의 무기를 꺼내 신었다. 혹시 몰라 챙겨온 '발가락 신발'이었다.



발가락 양말도 아니고 발가락 신발이라니? 뭐냐고? 한국에선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알만한 선수(?)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첨단 신발이다.


그동안 서울에서 운동이나 트레킹 할 때 몇 번 신었었는데 그때 주위은 반응은 신기함 반, 떨떠름 반 이었다. 뭐 그리 대단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날 중국에서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 이었다.


걷다 지친 100명의 눈은 모두 신기한 '발가락 신발'에 쏠렸다. 워낙 오랜 시간 걸어 다녀야하는 여정이다 보니 다들 부러움 가득한 눈길로 엄청난 관심을 쏟아냈다. 대장정이 끝나는 날까지 거의 모든 대원들이 한마디씩 했고 구체적으로 구입처를 물어 볼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날의 센세이션 이후 나는 '이기자'가 아니고 '청산리 발가락'으로 불리게 됐다.


◇ 2013.6.30 끝없는 계단과 마주하다




30일 우리는 졸본성(오녀산성)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출발하려는 순간 한 대원이 카메라를 떨어뜨려 렌즈가 부서지는 '대참사'를 맞았다. 마침 그 옆을 지나던 나에게 그 대원은 "카메라 렌즈가 두 동강이 났는데 어떻게 해야되느냐"고 질문을 해왔다.


항상 선두보다 앞서서 취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조금 머뭇거리고 있던 찰나 "앞으로 찍어야 될 사진도 많은데"라는 그의 한마디에 고쳐본 적도 없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취재를 하면서 갑작스럽게 카메라가 고장 난적이 있기 때문에 그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안다. 결국 바닥에 앉아 카메라 렌즈를 고쳐 보려 안간힘을 썼다. 주변에 있던 상인에게 드라이버까지 빌려 고쳐 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포기하고 일어서던 그 순간, 믿지 못할 광경이 보였다.


이건 설악산 808계단, 지리산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가는 길은 비교도 안될 정도였다. 끝도 없는 계단이 보였다. 선두에서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무작정 뛰어 올라갔다. 그래도 평소 등산과 운동으로 단련된 체력 덕에 간신히 선두를 따라잡아 셔터를 눌렀다.


◇ 2013.7.1 당황스런 백두산 천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 청산리 역사원정대는 3대가 덕을 쌓았나보다. 천지에 발을 딛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먹구름이 조금 끼긴 했지만 드넓게 펼쳐진 천지의 광경을 보며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약간 실망했다. 실제로 본 백두산 천지가 TV에서 보던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장관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럴 수가...


알고 보니 TV로 우리가 접한 천지는 북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동파 지역. 우리는 천지의 서파와 남파 지역을 간 것이다. 이 지역은 천지가 수평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기대한 것 보다는 웅장함이 덜했다. 북파는 천지를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기에 웅장함이 더한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 2013.7.2 폭우와의 전쟁




이날부터 비와 전쟁이 시작됐다. 가는 곳마다 비가 내려 우리들을 괴롭혔다. 비와 땀이 섞여 만들어내는 냄새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면 청산리전투 전적지와 일송정을 답사했다.


◇ 2013.7.3~7. 6 내년을 기약하며


7월 3일, 대장정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더욱 바삐 움직였다. 윤동주 생가, 명동촌, 대성중학교, 15만 탈취비, 3.13 의사릉, 용정우물, 조중국경지대, 봉오동전투 전적지를 답사했다. 다음날에는 상경용천부, 발해박물관, 발해왕궁 터, 흥륭사를 견학했다. 정말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들이다.



드디어 대장정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대장정 피날레인 김좌진 장군 순국지를 찾았다. 뜨거운 피가 온몸에 솟구쳐 올라오는 듯 했다.


또한 마지막 날에는 그동안 참고 참아왔던 음주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별을 아쉬워하며 밤이 늦도록 고기를 먹고 술잔을 기울였다. 7월 6일, 헤어짐의 시간이 왔다. 떠날 때는 배를 탔지만 돌아올 때는 비행기로 왔다.


10박 11일, 이렇게 많이 걷고 버스를 오래 타본 적이 있었을까? 육체적으로는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시험해보는 흔지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곳은 남의 땅에 있는, 그래서 우리가 제대로 지키기 더 힘든,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이다. 하지만 이렇게 잊지 않고 우리 젊은이들이 계속해서 찾고 기억해준다면 그 역사는 또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 숨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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