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아침드라마 '이브의 사랑'에 눈길을 사로잡는 얼굴이 있다. 죽은 첫사랑을 가슴에 묻고 정략결혼한 재벌2세 구강민 역의 이동하(33)다. 뽀얀 귀공자풍 외모에 슈트의 정석을 자랑하는 그는 이른바 '줌통령'의 정석을 따라가는 중. 하지만 극중 구강민의 모습은 여느 '실장님'들과는 다르다.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던 그는 연인이 죽은 뒤 삶을 놓아버렸고, 집안을 위해 사랑 없는 결혼을 한 뒤에는 분노를 삶의 동력 삼아 살아간다. 이 불행한 남자를 향한 아줌마 시청자들의 성원 역시 상당하다. 첫 드라마 주연을 맡은 이동하 역시 조금씩 그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이동하는 "극중에서 감정의 폭이 가장 깊고 드라마틱한 인물이 아닌가 한다"며 "연기하기 재밌다"고 싱긋 웃었다. 극중 악의 축이나 다름없는 아내 세나로 나오는 김민경에게는 늘상 "정실장 나가있어!"라며 '버럭' 하지만, 카메라가 멈추면 "누나 미안해요"라며 어쩔 줄 몰라하는 그다. 이동하는 "한 번은 소리 지르고 화내면 세나가 우는 신이 있었는데 끝나고 민경 누나가 '너 나 진짜 싫어하지'그러더라"며 "극중 상황인거지 진짜 아니라고 해명하느라 혼났다"고 털어놨다.
"강민은 제가 봐도 너무 불쌍해요. 중후반부 강민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아마 저도 가장 감정의 진폭이 큰 모습이 나올 거예요. 이렇게 순수한 사람이 미쳐버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강민의 불행과는 별개로 이런 캐릭터를 맡았다는 게 연기하는 제게는 행복이죠. 후반을 기대하고 있어요."
브라운관에서 조금 낯설지만 이동하는 이미 뮤지컬과 연극계에서는 이름난 스타다. 2009년 '그리스'의 앙상블로 처음 무대에 선 뒤 1년 만에 주연을 꿰찼고, 7년간 꾸준히 무대를 누벼 왔다. 살인바, 미치광이, 뱀파이어, 작가, 까불이… 다채로운 캐릭터를 그렸다. 2012년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 브라운관에 발을 디뎠고, '왔다! 장보리', '괜찮아, 사랑이야'를 거쳐 3번째 작품 만에 주연을 꿰찼다. 하지만 그가 배우의 길에 접어든 것은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동하의 아버지는 유명 조각가 이종빈이다. 부모님은 이탈리아 유학 도중 만나 결혼했고, 이동하 또한 5살까지 이탈리아에서 자랐다. 그러나 감성 풍부한 반듯한 엄친아도 10대의 방황기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멀쩡한 집을 나와 막노동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 그를 사로잡은 것이 공연이었다. 4수 끝에 들어간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공연 기획, 제작을 공부했다. "원하는 데 가기 위해선 10수도 하려고 했다"며 남다른 고집을 드러냈다.
그는 대학교 3학년이던 2009년 뮤지컬 무대에 처음 발을 디뎠다. 경험을 쌓아두는 게 좋겠다 싶어 선배의 권유로 응시한 첫 오디션에서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기가 발동한 그는 4개월간 맹렬하게 레슨을 받았다. 그렇게 앙상블로, 주연으로, 대극장의 주인공으로 쑥쑥 성장했다. 2011년엔 '라카지'로 첫 주연을 따냈다. 하지만 순탄한 길은 아니었다고 이동하는 회상했다.
"엄청나게 욕을 먹었어요. 노래도 못 하고 연기도 못 한다고. 내가 이러려고 배우를 했나, 그만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어요. 몸도 마음도 상하고. 하지만 오기가 생겼어요, 제가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하는 스타일이에요. 다시 잘 해보자 하며 맡은 작품이 '나쁜 자석'이었어요. 엄청난 상처를 받고 10년간 머리가 멈춰버린 남자였죠. 관계자들에게 인정받았던 첫 작품이에요."
그는 그제야 관객과 호흡하고 연기하는 것이 이렇게 재밌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제야 즐기며 연기할 수 있었다. 평소 부끄러움 많지만 무대에 서면 부끄러움이 사라진단다. 이동하는 "아직도 배우가 되려면 멀었다는 이동하"는 "늦게 시작한 만큼 더 행복하게 경험하고 쌓아가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금은 확신이 들어요. 평생 배우를 할 거고요. 관객들이 제 연기를 보고 감동을 받는다는 데서 오는 희열이 있어요. 브라운관은 또 다른 무대지만, 이번에는 모니터를 보며 제 연기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희열이 있더라고요. 아침드라마라는 것보다 인물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몫이라고 생각해요.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좋아해요. 철저하게 메소드 연기를 하는 분이죠. 할 때마다 다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저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깊이가 생기고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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