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카로운 형사, 딱딱한 보좌관이었던 배우 박효주가 이번엔 췌장암에 걸린 시한부 인생을 살아갔다. 언제나 전문직 여성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던 그는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전보다 더 감성적이고 더 아름다운 연기다.
박효주가 출연한 SBS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극본 제인, 연출 이길복, 이하 '지헤중)는 '이별'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 달고 짜고 맵고 시고 쓴 이별 액츄얼리를 그린다. 지난 2018년 tvN 드라마 '남자친구'를 끝으로 활동을 멈췄던 송혜교와 더불어 최희서, 박효주 등이 출연해 화제가 됐으며 매회 시청률 6~8%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수치를 보였다. 세 여자의 우정과 인생사를 그린 드라마는 호평을 받으며 많은 시청자의 가슴을 울리기도 했다.
이 중 박효주의 장면이 압도적이었다. 그는 극 중 췌장암 말기인 전미숙로 분했다. 전미숙은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담담하고 유쾌하게 풀어가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 박효주도 전미숙을 연기하며 매번 시험대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그는 최근 스타뉴스와 만나 '지헤중'에서 만난 인연과 더불어 전미숙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놨다.
◆ 이하 박효주와 나눈 인터뷰 전문
-'2021 SBS 연기대상'에서 조연상을 수상했다. 한해 마무리를 기분 좋게 했는데 소감이 어떤가.
▶ 2021년은 정말 열심히 일했던 거 같다. 되게 보람차고 좋게 잘 봐주시고 또 상까지 주셔서 감사하다. 난 첫 데뷔도 SBS였다. 'SBS 딸'은 어떤가. 아마도 난 장녀 느낌일 것이다. 되게 익숙하고 추억이 많은 SBS다. 감사하다.
-'지헤중'을 처음 봤을 때 어땠나. 근래 장르물이 많다 보니 유독 인간적인 부분을 담은 '지헤중'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 내가 되게 좋아하는 장르였다. 사람 냄새 나고 희로애락을 담았다. 난 그동안 장르적인 색이 짙은 작품을 해왔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장르가 고팠다.
-드라마 제목은 어땠나. 요즘 긴 제목이 유행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다.
▶ 제목이 시적이지 않나. 그래서 좋았다. 미숙이란 인물의 베이스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별 중 죽음도 있으니까. 죽음이란 건 보편적이고 뻔하지만 뻔함에서 사람을 일깨워줄 때 오는 정서들이 좋다. 그래서 '지헤중'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제목이다.
-전미숙은 어땠나. 자칫 잘못하면 신파적인 느낌을 낼 수도 있었는데.
▶ 전미숙의 아픔을 향한 두려움이 있었다. '지헤중'은 확실히 도전같은 작품이었다. 난 '지헤중'으로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동안 전문직, 이성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연기를 해왔는데 깊은 감성이 필요한 연기를 하면 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이 넓어지겠더라. 고민했지만, 내겐 익숙한 건 매력이 없었다. 익숙하지 않음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 내 나이 또래 이야기이기도 해서 공감되는 부분도 많고 여성으로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도 많을 거 같았다.
-전미숙을 연기하면서 가장 신경쓴 부분은 무엇인가.
▶ 우선 작품과 일상을 분리하고 싶었다. 근데 사실 이게 쉽진 않았다. 미숙이의 감정선이 짙어서 삶에도 침범하더라. 이 부분이 힘들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연기했지만 그동안 개인적인 변화가 많았다. 결혼이나 출산이나. 이런 경험들이 내 연기에 도움이 되더라. 미숙이 같은 죽음은 아니지만 가까이서 가족이 돌아가시는 걸 보게 되면서 죽음을 어설프게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진실성 있게 연기하고 싶었다.
특히 이별에 포인트를 뒀다. 사실 미숙이는 암에 걸렸기 때문에 슬퍼하고 울면서 대사를 해도 된다. 하지만 이건 박효주의 슬픔이다. 미숙이는 행복한 친구라서 잘 헤어진다는 것에 기준점을 뒀다.
-기억에 남는 대사나 장면이 있나.
▶ 14부 중, 친구들에게 "지금 헤어지는 중이다. 수호랑 헤어지는 게 아니라 내 욕심 미련과 헤어지는 중이야"란 대사가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장과 같았다. 이걸 이해하고 소화하는 데 힘들었다. 작가님과 통화하면서 '난 미숙이와 같이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미숙이 혼자 뛰는 거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를 이해하는 척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별 장면을 찍는 게 많이 생각난다.
-장례식장을 파티처럼 해달라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해당 장면을 촬영할 땐 어땠나.
▶ 나도 이 장면을 찍고 윤나무 배우랑 같이 먹먹했다. 어떻게 보면 이 여자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 같다. '나 웃다가게 해줘'란 말이 지금 너무 괴로우니까 꿈꾸는 마지막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의 아픔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윤나무 배우도 힘들었다고 하더라. 매씬 앞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느낌이었다.
-윤나무 배우와 호흡은 어땠나. 그를 아름답게 보내주려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 많은 배려를 해주더라. 편안한 현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리액션 해주고 너무 든든했다. 촬영할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끝나고 보니 고마운 게 많더라. 든든한 연기력이었다. 매일 내게 '누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하는데 정말 고마웠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송혜교, 최희서다. 함께 연기하면서 어땠는지 궁금하다.
▶ 앞서 우리의 호흡을 너무 자랑했나 싶기도 한다.(웃음) 셋이 너무 편하게 잘 했고 호흡이 잘 맞았다. 송혜교, 최희서가 아닌 영은(송혜교 분), 치숙(최희서 분)이로 인물이 존재했고 충실했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분들이었다. 특히 송혜교 씨는 미숙이를 울린 적이 많았다. 영은과 미숙의 관계처럼, 모든 장면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친해진 것도 사실 연기를 같이 하니까 그럴 수 있지만, 교감이 진해서 애정할 수 있었다. (최)희서 씨도 없으면 안되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슬픔이나 사랑이 정말 잘 표현됐다. 나빴던 현장은 없지만 특별히 소중한 건 있다. 그게 매번 오진 않는다. 이번 작품은 배우들과 동료애가 좋아서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송혜교, 최희서의 첫 인상은 어땠나. 잘 맞을 거라고 예상했나.
▶ 어색했지만 금방 친해졌다. 특별한 노력이 있다면 지치는 거 같다. 학교에서 새학기 시작할 때 '나랑 친해질 거 같다'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지 않나. 또 자기 분단에 앉은 친구들끼리 친해지기도 한다. 그들에겐 무언의 친근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모두 친해져야 한다는 걸 느껴 서로의 장점을 보려고 했다.
-두 사람의 장점을 꼽아본다면?
▶ 최희서 씨는 에너지다. 매력적인 에너지가 있다. 송혜교씨는 멋있는 배려심이 있다. 우리가 하나될 수 있었던 건 혜교씨의 큰 배려이지 않았을까 싶다.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난 사실 도움을 많이 받은 축이다. 미숙이 장면들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늘 의심하거나 불안해할 때가 많았는데 다들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거다. 우리가 친해진 건 연기에 대한 진실성이 있다. 그런 태도들이 되게 비슷했던 거 같다.
-'지헤중'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 좋은 작품에 대한 욕심이 많다. 난 성경 다음으로 작품을 통해 많이 배운다. 그게 비경험이든 아니든 연기하며 내 삶을 돌아보게 되고 성장시킨다고 생각한다. '지헤중'도 마찬가지다. 연기하면서 '내가 만약 이렇다면'이란 생각을 했다. 명확해진 게 있는데 지금에 충실해야 한다는 거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불안해하고 후회하기 보단 현재를 살아가고 싶다.
-끝.
안윤지 기자 zizirong@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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