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어서 어느 하나 안아픈 손가락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흔히들 TV드라마는 작가가 중요하다고 한다. 김수현 문영남 최완규 송지나 임성한 김진숙 홍정은 인정옥 김영현 임충 정하연 이환경 신봉승 노희경...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몰라도 이들처럼 드라마 작가를 대부분의 시청자가 낯익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2~3년내 방송된 작품만 따져보자. 한국 드라마 작법의 대모라 할 '내 남자의 여자'의 김수현, 중독성과 자극성으로 따지자면 김수현 못지않은 '하늘이시여'의 임성한, 선굵고 몰아치기에 능한 '주몽'의 최완규, 안방이 원하는 걸 정확히 끄집어내는 '장밋빛인생' '소문난 칠공주'의 문영남, '거짓말' 이후 결코 흔들림 없는 '굿바이솔로'의 노희경..이들의 이름은 높았고 작품은 풍성했다.
그럼 굳이 말한다면, '우리나라 TV 드라마 작가들의 계보'는 어떻게 될까. 초창기 작가 선발과정과 시기별 대표작가는 어떻게 되며, 앞으로도 기억될 그들의 대표작은 무엇일까. MBC TV제작국장, MBC프로덕션 사장, 로고스필름 대표을 거쳐 현재 미디어렙 대표로 재직중인 '고참 PD' 유수열씨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는 70년대 '웃으면 복이와요'로 전국민을 웃겼던 선구적 예능 PD다.
유 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드라마 작가를 공모한 것은 1948년 KBS. 유 대표는 최근 출간한 'PD를 위한 텔레비전 연출강의'(커뮤니케이션북스 발행)에서 "그 이전에는 오늘처럼 드라마 작가, 비드라마 작가의 구분, PD와 작가의 구분이 모호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1968년 MBC라디오 공모로 김수현이 등장했고, 79년 MBC 극본공모에서는 김정수가 등장했다. 이어 81년 KBS 여름 방송작가 양성과정에서 이환경 김운경 박구홍, 88년 방송작가협회 작가양성 과정에서 최연지 노희경 문영남 김지우 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 대표는 우선 라디오 연속극의 황금기였던1960년대대표작가로 유호(일요부인, 서울야곡), 한운사(현해탄은 알고 있다), 윤혁민(꿈꾸는 해바라기) 등을 꼽았다. 이중 '한국 방송계의 대부'로 불리는 원로 극작가 한운사는 당시 '잘 살아보세' '빨간마후라' '아낌없이 주련다' '현해탄은 알고 있다' 등 100여편이 넘는 라디오 드라마를 집필,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불렸다.
또한 1981년 '제1공화국'을 시작으로 '거부실록' '야망의 25시' '아버지와 아들' '억새풀' '땅' 등 80년대 정치색 짙은 드라마를 연이어 집필한 고(故) 김기팔도 이미 60년대 '해바라기 가족' '한국찬가' '동아반세기' '정계야화' 라디오 드라마로 이름을 날린 작가였다. '제1공화국' '제3공화국' 등을 같이 만든 고석만 PD(현 MBC 특임이사)는 그를 "최고의 다큐드라마 작가"라고 평한 바 있다.
이후 TV시대가 활짝 열린1970년대부터는 익히 알려진 작가들이 대거 등장, 맹활약했다.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이 본격적으로 TV드라마를 선보인 것도 이 1970년대다. 김수현 홈페이지에 따르면 김수현은 72년 '무지개'로 TV드라마를 시작, 이어 후처의 이야기를 다룬 '새 엄마'가 72년 8월30일부터 MBC를 통해 총 411회 방송, 당시 70%대의 믿기지 않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김수현은 이후 75년 일일극 '안녕', 77년 주말극 '후회합니다', 78년 '청춘의 덫' 등 주옥같은 드라마를 연이어 집필했다. 김수현은 잘 알려진대로 80, 90년대 들어서도 '사랑과 진실'(84) '사랑과 야망'(87) '사랑이 뭐길래'(91) '목욕탕집 남자들'(95), 그리고 2000년대에도 '불꽃'(2000) '완전한 사랑'(2003) '내 남자의 여자'(2007) 같은 화제작을 쉬지 않고 내놓았다. 참고로 '대발이 아버지' 이순재가 나온 MBC 주말극 '사랑이 뭐길래'는 64.9%의 역대 2위의 시청률을 기록중이다(1위는 '첫사랑').
이밖에 '달빛가족' '딸부잣집' '며느리' '삼국지' '오남매' '형제의 강' '덕이' '장길산' '자매바다'의 이희우, '사랑의 굴레' '꽃피고 새울면' '두려움 없는 사랑'의 홍승연, '영산강' '손자병법'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의 양근승, '마당 깊은 집' '산 너머 저쪽' '아들과 딸' '방울이' '아버지와 아들'의 박진숙도 70년대에 처음 작가로서 이름 석자를 세상에 알렸다.
한편 유 대표에 따르면 70년대 후반에는 나연숙 박정란 등 여성작가들의 출연이 돋보였다. 79년 정윤희 노주현 주연의 TBC 일일극 '야 곰례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나연숙은 이후 80년대 들어서도 '달동네' '보통사람들' '약속의 땅' '야망의 세월' 등 히트작을 잇따라 탄생시켰다. 94년 선풍적 인기를 끈 '남자는 외로워'도 나연숙 작품. 68년 라디오드라마로 등단한 '행복한 여자'의 박정란은 70년대 중반부터 TV드라마를 집필, '내일이면 잊으리' '사랑의 향기' '울밑에 선 봉선화' '노란손수건' '곰탕' 등을 내놓았다.
1980년대는 '옛날의 금잔디' '은실이' '당신이 그리워질 때'의 이금림이 문을 열었다. 고교 국어교사를 지낸 이금림은 80년 KBS 단막극 '소리나팔'로 데뷔, 80년대에만 '호랑이 선생님' '고교생일기' 같은 명작을 남겼다. '용의 눈물' '태조왕건' '야인시대' '연개소문' 등 대표적인 사극작가로 자리잡은 이환경이 신춘문예 등단작가에서 드라마 작가로 변신, '훠어이 훠어이' '무풍지대' '적색지대'로 이름을 알린 것도 80년대다.
한편 80년대에는 '전원일기'의 김정수가 등장하는데, 유 대표는 김 작가를 "차범석 작가가 출발했던 '전원일기'를 이어받아 12년 동안 집필, 한국농촌 드라마를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잡게 한 작가"로 요약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의 김정수는 80년 MBC 극본공모에서 '제3교실'이 당선된 후, '전원일기' '엄마의 바다' '그 여자네 집' '자반고등어' '그대 그리고 나' '파도' '한강수타령' '누나' 등 히트작을 연이어 내놓았다.
유 대표는 이어 80년대 등장한 대표작가로 '한지붕 세가족'(82)의 김운경(이후 서울뚝배기, 서울의 달, 옥이엄마, 황금사과), '푸른 교실'(87)의 최성실(이후 우리들의 천국, 폭풍의 계절, 아들의 여자, 아파트, 육남매), '호랑이 선생님'(82)과 '인간시장'(87)의 송지나(이후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카이스트, 대망, 태왕사신기) 등을 꼽았다.
또한 지난해 타계한 '첫사랑' '젊은이의 양지' '맨발의 청춘'의 작가 고 조소혜도 84년 KBS 단막공모를 통해 처음 이름을 알렸다. 참고로 최수종 이승연 배용준 최지우 등 톱스타가 대거 출연한 1996년 KBS 주말극 '첫사랑'은 65.8%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 역대 최고시청률 드라마로 기록됐다. 이밖에 '여자만세' '마지막 전쟁' '맹가네 전성시대' '천생연분'의 박예랑도 80년 '전원일기' 각본으로 데뷔했고, '우리들의 천국'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 '애정만세'의 정성주도 82년 KBS라디오 '젊은이의 노래'로 데뷔했다.
1990년대필명을 날린 작가로는 1995년 공전의 히트를 친 KBS 일일극 '바람은 불어도'의 문영남이 대표적. 유 대표는 "당시 MBC에는 일일극이 없었는데 KBS '바람은 불어도'가 워낙 인기가 높아 일일극을 부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그래서 시작한 것이 김정수 극본의 일일극 '자반고등어'였다"고 밝혔다. 앞서 92년 '분노의 왕국', 94년 '폴리스'을 집필했던 문영남은 이후에도 '정 때문에' '애정의 조건'을 거쳐 '장밋빛인생' '소문난 칠공주' 같은 화제작을 터뜨렸다.
이밖에 90년대에는 주찬옥(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고개숙인 남자, 여자의 방), 노희경(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거짓말,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굿바이솔로), 정유경(사랑의 인사, 사과꽃향기, 현정아 사랑해, 봄의 왈츠, 넌 어느별에서 왔니), 정성희(국희, 황금시대), 김인영(짝, 맛있는 청혼), 김진숙(한지붕 세가족), 이선미(사랑을 그대 품안에, 별은 내 가슴에, 내일을 향해 쏴라), 인정옥(해바라기,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 등 여성작가가 줄줄이 등장했다.
'보고 또 보고'의 임성한 작가가 등장한 것도 90년대다. 그는 97년 MBC 베스트극장 극본공모 '웬수'로 당선된 후, 역대 일일극중 최고의 시청률(57.3%)을 기록한 '보고 또 보고'(98년)를 비롯해 '하나뿐인 당신' '인어아가씨'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 등 손대는 작품마다 자극적 소재와 독특한 드라마 전개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최근에는 MBC 일일드라마 '아현동 마님'을 집필중.
한편 1990년대 등장한 작가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종합병원' '야망의 계절' '허준' '상도' '올인' '주몽'의 최완규. 유 대표는 최완규 작가를 "종전의 전통적인 사극의 발상을 바꾼 역사극 작가"라며 "정통 남성드라마는 물론 시간의 인내를 요하는 멜로물 등 만능작가로 떠올랐다"고 평했다. '공룡선생' '미스터큐' '토마토' '명랑소녀 성공기' 등에 이어 최근 '불량가족'을 집필한 이희명도 남성작가로 보기드문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2000년대. 유수열 대표는 이 2000년대를 "팀을 이루어 집필하는 경향이 많은" 시기로 정의했다. 2명이 공동집필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 '신입사원'의 이선미 김기호, '파리의 연인'의 김은숙 강은숙, '황태자의 첫사랑'의 김의찬 정진영, '쾌걸 춘향' '마이걸' '환상의 커플'의 홍정은 홍미란 등이 대표적. 물론 '프라하의 연인'의 김은숙,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도우, '상두야 학교가자'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죽일 놈의 사랑'의 이경희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