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8년 그 유명한 저서 '공산당 선언'을 이렇게 시작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만약 이들이 요즘 대한민국 대중문화판을 바라본다면 이랬을 법 하다. '하나의 중병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너도나도'병이라는 중병이..'
'너도나도'병. 어려운 일 생긴 이웃, 서로 팔 걷어부치고 돕자는 그 위대한 환난상휼의 정신이 아니다. 찜닭이 잘 된다 싶으면 한 집 건너 '원조'까지 붙여가며 판을 벌리고 마는, 그래서 같이 쫄딱 망하고 마는 그런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심각한 중병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이 병에 걸린 환자 입장에선 틀렸다. '사촌이 땅을 사면 나도 산다'가 정답이다.
우선 '동영상'과 '몰카', '누드사진'쪽과 관련된 '너도나도'병 증세부터. 최근 화제를 집중시킨 박철-옥소리 소송사건과 아이비 협박사건. 박철-옥소리 소송사건의 본질 내지 핵심은 '박철이 이혼 소송과 함께 간통혐의로 옥소리와 관계남들을 고소했다'는 것과 '이에 맞서 옥소리가 박철을 상대로 반소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아이비 협박사건 역시 '옛 남친이 아이비를 협박한 혐의로 현재 구속 수감중'이라는 것이다. 다른 건 곁가지일 뿐이다.
하지만 대중과 언론에게 이 본질은 이미 휘발됐다. 남은 것은 낯뜨거운 '동영상'과 '몰카'라는 이미지뿐이다. 과연 박철이 찍었다는 옥소리와 이탈리아인 G씨의 동영상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아이비 남친이 찍었다는 그 동영상은 남아있을까, 라는 그 천박한 호기심. 문제는 실제로 두 동영상을 본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의 0.000001%도 안되는데 인터넷과 언론과 대중은 너도나도 그 내용 확보와 맛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 하지만 확보가 안되니 넘치는 것은 온갖 추측과 (아이비의 지적대로) 소설 뿐이다.
하여간 대한민국의 동영상과 몰카, 사진 사랑은 정말 유구했다. 전설의 '빨간마후라'나 'O양 비디오'부터 최근의 UCC 동영상 열풍까지. 너도나도 누구나 쉽게 만들고 배포할 수 있는 동영상은 한마디로 새 세상을 열어줄 구세주 경지에 올랐다. 물론 동영상이 안되면 사진도 괜찮다. 잘 알려진대로 대낮에 발간되는 한 석간신문은 '신정아 사진'을 대낮에 1면에 실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보도직후 몇몇 닷컴들은 '너도나도' 기사는 물론 사진까지 인용보도했다. 본질이 사라지면 남는 건 역시나 '옐로' 뿐이다.
'너도나도' 병은 올해 미드에서 절정에 달했다. 분명히 지난해만 해도 이 '미드'(미국드라마)라는 말이 대중에게 널리 통용되지 않았는데, 석호필의 '프리즌 브레이크' 이후 미드는 '일드'를 낳고 '중드'를 낳고 '북드'를 낳고 결국엔 '한드'까지 내놓았다. 'CSI'는 너도나도 시리즈 드라마가 지향해야 할 최고 경지의 드라마로 칭송했으며, 한국까지 찾은 앤트워스 밀러는 너도나도 한번쯤 관심을 갖고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해야 할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사극도 마찬가지. 송일국의 '주몽'이 인기를 끄는가 싶더니 어느새 '태왕사신기' '대조영' '연개소문' '대왕세종' '왕과 나' '정조암살 미스터리 8일' '별순검' '메디칼 기방 영화관' 등 지상파와 케이블TV엔 사극이 끊이질 않았다. 한때는 너도나도 고구려 사극이더니, 이제는 역시나 조선, 특히 정조 사극이다. 옛날 조폭코미디에 너도나도 올인하던 영화판은 중년 직장인 밴드 이야기('즐거운 인생' '브라보 마이 라이프')나 20세기초 근대사극('모던보이' '라듸오 데이즈' '놈놈놈' ) 제작에 동참했다. 금융기관 터는 건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이나 '바르게 살자'나 마찬가지였고, 유괴를 소재로 삼은 건 '그놈목소리'나 '밀양'이나 '세븐데이즈'나 착점은 매한가지였다.
이러한 '너도나도'병은 최근 원더걸스의 '텔미'에 이르러 꽃을 피웠다. 지난해 대한민국에 들불처럼 번져갔던 '마빡이 열풍'이 '10대 소녀' 버전으로 다시 도진 것일까. 발라드가수까지 '너도나도' 자기 콘서트에서 '텔미'를 부르고, 국회 정치후원금 행사에서까지 원더걸스는 '텔미'를 불렀다. 지난 26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정동영 이명박 대선후보 초청 문화산업정책 토론회에선 정-이 후보가 '너도나도' 보아를 치켜세웠다. "보아씨, 나 간다'(이명박 후보) "보아씨가 지지한다면 1000만표는 올라갈텐데"(정동영 후보)
이러한 '너도나도'병은 끝이 없다. 지자체의 각종 희귀한 영화제 행사부터 무슨 아가씨 선발대회까지. 그러니 사례나열은 이제 그만.
그럼 이 '너도나도'병이 왜 문제가 될까. 자기 혼자 앓다가 불상사 생기면 그래도 나으련만, 이 병의 가장 큰 문제는 전염력이 무지 강하다는 것.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그 동영상과 몰카와 미드와 '텔미'에 담 쌓은 자는 한 공동체에서 세상 흐름 모르는 죄인 마냥 취급받는다는 것이다. 해서 '너도나도'는 더 큰 '너도나도'를 낳기 마련이다.
사회적 손실과 낭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도 유행하는 일부 언론사들의 기사 어뷰징(비슷비슷한 기사를 반복하거나, 포털 검색순위 상위에 오른 검색어로 기사를 반복해 작성함으로써 자사 홈페이지의 트래픽 유발)의 폐해처럼, 이들 '너도나도'병의 결과물들은 뭐 하나 이 세상에 '생산성 있는' 도움을 주지 않는다. 직접 인터뷰를 하거나 실제 동영상을 보지도 않았으되 기사와 소문을 만들어내고, 미드를 보지도 않고 본 것처럼 떠들어대며, '텔미' 전곡을 들어보지도 않고 '텔미'를 찬양하는..새 블루오션을 여는 자 없고, 그저 블루오션만 레드오션으로 만드는 선수들 뿐이다.
어쨌거나 이미 차려진 '동영상' '사진' '미드' '사극' '텔미' '보아' 밥상에 너도나도 숟가락만 얹으려 하니, 정작 맛있는 쌀밥과 보글보글 찌개는 누가 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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