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진 않지만 자부심은 커요!"
KBS 2TV 공개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그땐 그랬지'는 '유별난' 코너다. 노부부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코너는, 그러나 불이 날아다니고 벽이 갈라지는 등 이제껏 개그프로에서 볼 수 없었던 색 다른 형식의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다.
'그땐 그랬지'를 보고 있으면 "와!"라는 소리가 절로 난다. "대단하다"는 감탄도 따른다.
그렇다면 이 코너에 몇 명이나 투입될까. 일단 '보이는' 출연진은 노부부 역 김재욱, 이상민과 손녀 역 안소미, 젊은 커플 역 이상호, 김민경 그리고 장도연, 조윤호 등 7~8명 선이다. 하지만 이 코너에는 '보이지 않는' 출연진이 더 있다. 바로 '쫄쫄이맨'들이다.
방송에서 보이는 쫄쫄이맨들은 불을 나르고, 출연진을 들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들이 있기에 입체적인 '3D 개그'가 가능해진다. 이들 쫄쫄이맨들은 과연 누굴까.
검은 옷 '쫄쫄이맨' 총 12명, 2011년 신인 개그맨 8명 투입
'그땐 그랬지'에 투입되는 쫄쫄이맨은 총 12명이다. 이들이 5~6분의 코너 시간 동안 4~5개의 아이템을 소화해낸다.

양상국(KBS 공채개그맨 22기)이 이끄는 쫄쫄이맨들은 총 12명. 양상국 외 이원구(22기), 류정남(23기)을 비롯해 정진영, 이상훈, 김정훈, 정승환, 류근일, 이문재, 임우일, 정해철 등 26기 신인개그맨 8명이 참가한다. '개콘'에서 최다 인원이 투입되는 코너다.
"5년 전 데뷔 당시 '뮤지컬' 코너에서 쫄쫄이복을 입고 비슷한 걸 시도했던 적이 있어요. 이번에 '그땐 그랬지'를 하면서 쫄쫄이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후배 신인개그맨들을 이끌고 있어요. 하하."(양상국)
26기 신인들은 지난 3월 15일 KBS 공채 개그맨으로 첫 출근하자마자 이 코너에 투입됐다. 12명 중 남자 10명이 투입됐고, 이중 2명은 쫄쫄이 복장이 맞지 않아 제외됐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개그맨이 됐지만, 얼굴 없는 개그맨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 아쉬움은 없을까.
"어디 나오냐고요? 불, 총알, 돌이요!"
"지인들이 '개그맨이 됐다는 데 어디 나오냐'고들 하세요. 저야 얼굴이 안보여도 저인 줄 알잖아요. '저기 불이 저에요'라고 말하죠(웃음)."(김정훈)
"공채 개그맨 되기 전에 방송 경험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공채로 뽑히고 나서 얼굴이 안 나오니 부모님이 의아해하시죠. 친구들도 물어보는 데 그 땐 그냥 불이다, 총알이다, 돌이다, 이런 식으로 설명해요."(임우일, 이상훈)
비록 알아주지 않는 불, 총알, 돌이지만 이들은 '개콘'의 그 어떤 코너보다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매주 수요일 녹화가 끝나면 다음 날인 목요일부터 바로 준비에 들어간다. 목, 금요일에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토요일에 소품을 만든다. 일요일에 연습을 하고 월요일에 리허설을 통해서 제작진의 검사를 받는다.
"리허설 때 '까이면' 또 아이디어 회의 하고 필요한 소품을 만들어요. 그리고는 화요일에 다시 검사를 받죠. 거의 일주일 내내 오후 11시~12시까지 연습하고 만들고 이런 일상들이 이어져요."(양상국)
'개그콘서트' 녹화 당일인 수요일이 되면 '쫄쫄이' 의상을 착용한다. 검은 색 쫄쫄이 복에 얼굴에는 검은 색 수영모를 쓴다. 이 복장으로 검은 장막 앞에 서면 이들의 모습은 '사라진다'.
"수영모에 얼굴에 맞춰 작게 눈구멍을 내요. 근데 급하게 준비하다보면 수영모가 바뀔 때가 있어요. 안 그래도 빨리 빨리 진행되는데 그러면 좀 당황스럽죠."(정해철)
"쫄쫄이를 입고 있으면 서로 잘 모르니까 선배들한테 반말할 때도 있어요. 하하. 그럴 땐 그냥 모른 척 지나쳐요."(정승환)
5분 코너 위해 일주일 내내 '연습 또 연습'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인기와 도태가 결정되는 세계에서 신인 개그맨으로서는 얼굴도 알리지 못하고 고생만 하는 '악조건'이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배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내서 제 코너 생기고 얼굴 알리고 싶죠. 하지만 배운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이문재)
"이런 코너가 '개콘' 역사상 없었대요.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동기들과 '합'을 맞추다보면 협력심도 생겨요. 물론 의견다툼도 있죠(웃음). 2~3년 정도 지나 이 시간들이 다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임우일)
"'달인'만큼이나 몸을 쓰고 있는 코너인데, 모두들 건강에 이상 없이 잘해주고 있어 다행이에요. 자연스럽게 운동도 되고 좋죠. 특히 '우드락'하나면 모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고 있어요. 하하하."(류근일)

"'우드락'만 있으면 세상 모든 것 만들 수 있어요!"
'우드락'(woodrock, 평판 스티로폼의 일종)은 '그땐 그랬지'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소품의 재료로 쓰인다. 코너에 등장하는 각종 소품 역시 이들 12인의 쫄쫄이맨들이 구상부터 제작까지 다 책임지고 있다.
"'그땐 그랬지'는 코너 특성상 리허설 때도 어느 정도 소품이 완성돼 있어야 해요. 안 그러면 실감이 별로 안나요. 화요일에 검사를 받고 나면 그때부터 CG로 본을 떠서 방송에 나갈 수 있는 소품을 만들어요. 김재욱 선배가 그 분야에는 전문가라서 이때 깔끔하게 본을 떠주고 저희가 제작을 하죠."(이성동)
소품이 만들어지면 이 코너의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 이상훈이 적절한 효과음을 찾아내고, 정진영이 쫄쫄이 외 의상을 구상한다.
힘들 게 만든 아이템이 '킬' 당하거나 녹화는 했는데 방송에 나가지 않으면 속상하지 않을까.
"아쉽죠. 헌데 딱히 그렇지만도 않아요. 좀 더 다듬어서 다음 방송에 쓰면 되거든요. 매주 4~5개의 아이템을 구상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지난 25일 녹화에서 중국집 '사천성' 메뉴판이 이어지는 아이템이 있었는데 메뉴들이 착, 착, 착, 노란선으로 이어지게 하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이럴 때는 녹화하고 나서도 방송에 나갈지 걱정되죠.(양상국)"(29일 방송에서 '사천성' 아이템은 방송이 됐다.)
아이템은 무조건 입체적으로만 만들어서도 안 된다. '보편성'을 통해 '공감'을 이뤄내야 한다. 이성동은 "저희끼리 아이템을 짜다보면 남성 위주로 될 때가 있다"며 "여성 방청객이나 여성 시청자들을 고려, 남녀 시청자들 모두 알 수 있는 아이템으로 준비한다"고 말했다.
'그땐 그랬지'는 개그 한류에도 불을 지필 전망이다. 최근 베트남 쪽에서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현지 공연이 열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힘이 나죠. 헌데 쫄쫄이맨들은 베트남 현지인으로 쓸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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