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20부작 월화드라마 '나인: 아홉번의 시간여행'이 점입가경이다. 세상에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드라마는 처음이라는 평이 많다. 나인폐인, 나인데이, 진욱홀릭, 선우홀릭..이런 말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7일 제18화 막판에선 소름까지 돋았다는 SNS 글도 잇따랐다.
'나인'은 기본적으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타임슬립 드라마다. 그런데 이게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네팔에서 구한 향이 바로 20년 전 과거로 떠나는 타임머신인데 무려 9개나 됐다. 처음에 실험용으로 쓴 프로토타입까지 포함하면 총 10개다. 이런 많은 타임머신이 등장하니 등장인물들의 인생이 두세번 꼬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죽었다 살아나고, 부활했다 죽고. 더욱이 제18화에서 마지막 향까지 다 타버렸으니 이제 남은 타임머신은 없다. 해서 정리했다. '나인', 도대체 인생을 몇 번 꼬이게 한 거야?
버전1 = 향 쓰기 전 (프로토타입)
'나인' 버전1 인생은 2012년 12월 네팔에서 형 박정우(전노민)의 유품인 향을 갖고온 선우(이진욱)가 이 향을 태워 20년 전 과거로 가기 전까지 버전이다. 한마디로 꼬이기 전 모든 등장인물들 인생의 원형이다. 박선우는 방송사 앵커이고, 선우한테는 5년 동안 자신을 짝사랑해온 후배 여기자 주민영(조윤희)이 있으며, 고교 때부터 친구인 신경외과 의사 한영훈(이승준)이 있다.
선우 아버지 박천수(전국환)는 20년전 병원화재로 죽었고, 어머니(김희령)는 이 일로 정신착란에 빠졌다. 선우는 이 화재 범인이 당시 부원장이었던 최진철(정동환)이라고 믿고 있다. 형 박정우는 "모든 걸 되돌리고 싶다"며 방황 중인데 사실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향을 우연히 손에 넣었고, 이 향의 원주인이 20년 전 네팔의 한 숙소(Maruna Lodge)에 숨겨둔 나머지 향 9개를 더 얻기 위해 히말라야 산을 헤매다 향을 써보지도 못한 채 2012년 1월 죽었다. 선우가 뒤늦게 네팔로 향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버전2 = 수족관 박살사건 이후
이 버전1 인생은 선우가 프로토타입 향으로 20년 전 과거로 가 당시 어머니와 형 정우를 목도한 이후 사소하게나마 바뀌었다. 물론 정우가 몽둥이를 휘두르다 수족관을 박살낸 정도에 그쳤지만, 어쨌든 버전1 인생에서 느닷없이 한 남자가 선우네 거실에 뛰어든 적은 없었다. 또한 선우가 얼떨결에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2년 12월 당시 자신의 삐삐를 20년 후 지금으로 가져온 것도 돌발 상황이다.
버전3 = 20년 전 자신과 통화한 후
선우가 다시 한 번 프로토타입 향으로 또 다시 타임슬립을 하니 1992년 12월의 방송사 대기실이다. 마침 울린 삐삐. 찍힌 번호로 전화를 하니 20년 전 자신, 어린 선우(박형식)가 전화를 받는다. "저를 어떻게 아세요?" "내가 너니까." 이제부터 본격적인 꼬인 인생들이 펼쳐진다. 이 통화 이후 선우와 영훈의 기억속에는 선우가 삐삐를 잃어버린 일, "내가 너"라며 선우에게 전화가 걸려온 일 등이 선명히 박힌다. 다른 버전의 인생이 현재의 선우와 영훈의 기억속에 동시에 살아있는 것, 이게 '나인' 타임슬립의 포인트다.
버전4 = 3번째 향부터가 문제였던 거야
형의 수첩을 통해 나머지 9개 향의 존재를 알게 된 선우. 10센티미터밖에 남지 않은 프로토타입 향으로 타임슬립해 20년 전 네팔 숙소에서 간신히 향 9개를 찾아냈다. 이때 '보디가드' OST LP도 함께 현재로 가져왔다. 첫번째 향으로 '몸풀기' 시간여행을 떠나는 선우. 최진철, 어린 박정우(서우진), 아버지를 다 만나지만 심각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어 두번째 향으로는 친구인 영훈에게 시간여행이 가능함을 입증.
하지만 본격적인 버전4 인생이 펼쳐지는 것은 선우가 세번째 향을 써서 1992년 12월24일로 간 이후부터다. 형의 여친이었던 김유진은 아버지의 반대로 정우가 자신을 못 만나게 되자 음독기도를 한 상태이고 어린 딸 윤시아(훗날 주민영/박민영)는 울고 있는 중. 선우는 시아에게 형 전화번호를 건네준다. 이 30분간의 짧은 시간여행을 마치고 2012년 12월24일로 컴백해 애인 주민영과 달달한 사랑을 나누는 선우. "내 원래 이름은 윤시아였다"라고 말한 주민영이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진다. 20년 전 바로 그 시간(1992년 12월24일 오후 7시36분18초), 윤시아와 박정우의 전화통화가 이뤄졌던 것. 버전1~3에서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럼 버전4는 이전 버전과 뭐가 다를까.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박정우는 살아서 한서병원 과장으로 재직 중이고, 게다가 김유진과 결혼하는 바람에 윤시아가 박민영이 돼 선우와는 조카-삼촌 관계가 돼버렸다. 친구 한영훈은 심지어 친구의 조카인 박민영에게 자신의 후배 레지던트인 서준(오민석)을 소개까지 시켜줬다.
이에 비하면 주민영이 사라지기 전 선우가 갑자기 "어머니를 만나고 오겠다"며 네번째 향을 써 행복한 재회를 하고 다시 컴백한 것쯤은 일도 아니다. 그래서 이 짜릿한 모자의 재회에서 선우가 20년 전 어머니에게 목걸이를 선물한 것은 마이너 버전 혹은 버전4.1 쯤으로 해두는 걸로!
버전5 = 아버지 사망시간 3시간 연장
2012년 12월30일 다섯번째 향을 쓰는 선우. 물론 1992년 12월30일 밤11시 사망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사망 현장 증거 채집'을 위해 소형 캠과 노트북까지 갖고가서 어린 선우를 만나고 병원에 캠을 설치한 결과는 기껏 아버지인 명세병원장 사망시간이 1992년 12월31일 새벽2시로 3시간 늦춰졌다는 것뿐이었다. "내 바뀐 기억에도 31일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돌아가신 상태였다."(선우)
버전6 = CCTV에 찍힌 끔찍한 진실 이후
다시 여섯번째 향을 쓰는 선우.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진 뒤였다. 더욱이 그 범인이 박정우라니! 맞다. 선우의 인생은 아버지를 죽게 한 이가 다름 아닌 형 박정우임을 알게 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일곱번째 향을 써서 CCTV를 확인하고 이를 USB에 담아 현재의 최진철에게 들이미는 선우. "향은 신의 저주"라며 남은 2개의 향을 향함 통째로 과거 병원 테이블에 남겨두고 온다. 참고로 이 장면을 두고 '엔드 오브 타임슬립'이라며 애통해한 시청자들, 진짜 많았다.
이 버전6의 인생은 어느 버전보다 심하게 요동쳤다. 1992년 인생에서는 그토록 은폐하려 했던 명세병원장 사망현장의 목격자(미래의 박선우)가 생겼고, 2012년 인생에서는 영훈의 집도에도 불구하고 박선우가 숨을 거뒀다.
버전7 = '국민친구' 영훈이 살린 선우
버전7 인생의 핵심인물은 이번 '나인' 드라마를 통해 '국민친구'로 떠오른 한영훈이었다. 어린 영훈(이이경)이 미래의 선우가 떨어뜨린 약봉지를 어린 선우 방에서 발견, 미래의 선우가 뇌종양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이때부터 어린 선우는 부지런한 건강체크를 통해 버전6의 비극적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선우는 방송사 9시 뉴스 메인앵커까지 됐다. 이 내용이 방송된 제9회 방송 당시, 시청자들은 향도 없이 친구를 살린 영훈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버전8 = "난 박민영이 아니라 주민영이었어" 자각 이후
박민영 본인이 자신이 주민영이었음을 자각한 이후의 버전이다. 선우의 '애인' 주민영 시절, '보디가드' OST LP에 쓴 자신의 필적을 통해 모든 걸 떠올리게 된 '조카' 박민영. 심지어 좀 전만 해도 삼촌으로 알았던 옛 애인 박선우에게 돌발키스까지 했다.
버전9 = 어린 선우가 미래의 선우에게 보낸 선물, 향..그리고
'나인'의 타임슬립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시청자들, 헛다리 짚었다. 1993년의 선우가 "화재현장에 있던 물건인데 내 지문이 남아있어 경찰이 보내줬다"며 향함을 2013년의 선우에게 보낸 것. 물론 20년 동안 한 장소에 잘 뒀을 뿐이다. 해서 다시 8번째 향을 태우는 선우. 형 정우에게 자수를 권하려 과거로 간 것이지만, 시기가 너무 안좋았다. '돈 먹은' 경찰관이 최진철에게 미래의 선우 얼굴이 찍힌 사진을 건넨 직후이자, 최진철이 폭력배 창민에게 살인교사를 해놓은 터였다. 결국 1993년의 형 정우에게 공중전화로 전화하다 창민의 칼에 찔리는 선우. 그는 결국 일촉즉발 순간에 한강에 투신, 다시 2013년으로 컴백했다. 여전히 피를 줄줄 흘린 채로.
이렇게 해서 변화된 버전9 인생에선 희비가 교차했다. 괴로워하던 박정우(이때는 이미 진작 93년 어머니의 고백으로 자신이 최진철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안 이후였다)가 자살을 했고, 경찰은 선우의 범인인 창민(실은 20년전 범인)을 'CSI' 급 과학수사를 통해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버전10 = 최진철, 최초이자 최후의 타임슬립 이후
최진철을 죽이기 위해 선우가 마지막 아홉번째 향을 쓰려는 순간, 이를 막으려던 영훈의 손에서 향이 사라졌다. 1993년 4월24일(이날은 형 박정우의 결혼식날이다!) 선우 방에 있던 그 향함(향이 2개 들어있던)이 가사도우미를 통해 '매수' 경찰관에 전달됐고 이것이 다시 최진철에게 건네진 것. 이를 기억해낸 현재의 최진철은 마지막 향(하나는 잡자마자 소멸. 버전9에서 선우가 8번째 향을 썼기 때문인 것으로 보임)을 태워 타임슬립을 시도, 창민에게 '고교생 선우'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창민이 칼로 어린 선우를 찌르면서 '나인' 버전10의 인생이 펼쳐졌다.
버전11 = 마지막 향, 마지막 타임슬립, 과거에 갇힌 선우
하지만 버전10 인생은 그리 길거나 파격적이지 않았다. 최진철이 향을 5분 정도 썼을 때 선우가 들이닥쳐 향을 꺼버린 것. 이후 선우는 마지막향을 써서 과거로 가 어린 선우를 창민으로부터 구해냈고, 선우의 설득으로 정우는 결혼식 당일(1993년 4월24일) 경찰에 자수를 하고 최진철은 체포됐다. 이로써 급격히 바뀐 버전11의 인생들. 아버지 박정우 상가에 있던 박민영은 다시 주민영이 돼 박선우와 결혼식을 앞두고 있고, 박정우는 20년전 자수로 징역3년을 살고 나온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외국 의료봉사 중이다. 최진철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소규모 의료기 점주로 변한 상태.
이 정도면 해피엔딩 아니냐고? 이제 향도 없고 최진철에겐 똑똑한 비서도 재력도 없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선우의 대사 그대로 "마지막 향이 선우를 조롱"한 것이다. 향이 다 타버렸는데도 선우가 2013년 4월24일 현재로 돌아오지 못한 것. 게다가 1993년 4월24일의 최진철이 우연히 이런 어정쩡한 상태의 선우를 발견, 승용차로 들이박음으로써 절체절명의 위기에까지 빠졌다. 1993년 4월24일엔 두 명의 선우가 있는 상황이고, 2013년 4월24일엔 선우가 한 명도 없는 상황.
여기까지. 제18화까지만 놓고 보면 이렇게 총 11개 버전의 인생이 순서대로 펼쳐졌다. 1993년에 갇힌 미래의 선우로 인해 2013년 인생들이 변하는 게 가능할지, 그래서 또 다른 버전의 인생이 펼치지게 될지, 남은 2화에 모든 게 달렸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