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이 드라마 안 보면 대화가 안 될 만큼 시청자들 사이에 인기 높은 드라마가 있다. 바로 '미생'이다.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 연출 김원석)은 바둑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장그래가 프로입단에 실패한 후, 냉혹한 현실에 던져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지난 10월 17일 방송을 시작, 매회 다양한 에피소드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무역상사 원인터내셔널을 배경으로 인턴, 신입, 평사원 그리고 임직원들의 회사생활을 다룬 '미생'. 때로는 '이게 진짜 현실이지!', '아, 이런 직장이라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방송 초반에는 장그래(임시완 분), 안영이(강소라 분), 장백기(강하늘 분), 한석율(변요환 분) 등 원인터내셔널에 지원한 인턴들이 신입사원(정직원)이 되기 위한 치열하고 잔인한 현실을 다뤘다.
최근에는 오상식(이성민 분) 과장(차장 진급), 김동식(김대명 분) 대리, 김부련(김종수 분) 부장, 마부장(손종학 분) 부장, 박과장(김희원 분), 박대리(최귀화 분), 하대리(전석호 분), 강대리(오민석 분) 등의 회사생활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다.
절망, 희망, 기쁨,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이 있는 '미생'. 여기에는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등장인물, 각종 상황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미생'의 이재문 프로듀서와 캐릭터, 상황에 따른 '현실에 있기, 없기'를 찾아봤다.

◆장그래, 오성식 등 현실에 있기? 없기?
'미생'의 등장인물들 중 장그래는 소위 말하는 낙하산. 물론 인턴에서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이 됐지만 이렇다 할 스펙 하나 없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 정말 있을까.
이재문 프로듀서의 말을 빌자면 장그래는 현실에서 실존할 수 있는, 실존하는 인물이다. 바둑기사들 중 프로에 입문하지 못해 아마추어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바둑 애호가들의 후원을 받기도 한다.
이재문 프로듀서는 "한 중견기업 회장님의 경우 한국 바둑을 십 수 년 동안 바둑 업계를 후원해 왔다. 아마추어 바둑기사를 채용, 바둑 리그를 만들었다"며 "극중 장그래는 고졸로 남았지만 일부 바둑기사들은 똑똑해서 대학교에 진학, 대기업에 취업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극중 장그래는 다른 인턴, 신입 사원들이 봤을 때 불공평한 낙하산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바둑의 열풍이 있었고, 바둑기사들이 영화를 누렸던 시절을 생각한다면 장그래의 경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생'에는 장그래와 더불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선에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 오상식, 김동식이다. 두 사람은 종종 말단 사원 그것도 계약직인 장그래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의 방향성도 바꿔 버린다.
"먼저 극중 캐릭터는 철저히 가상이라는 점을 염두 하셔야 된다"는 이재문 프로듀서는 "시청자들 중에는 '오상식이 있는 회사, 사수가 김동식이라면 회사 생활이 행복할 것 같다'고 한다. 자기 팀원 챙기는 오상식, 정으로 후배 챙기는 김동식을 보면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달리 밉상인 캐릭터들도 있다. 물론 극중 캐릭터는 판타지다"고 설명했다.
이재문 프로듀서는 "드라마는 드라마다. '미생'의 경우 드라마에 현실을 더한, 다큐 같은 드라마다"며 "프로듀서로 시청자들이 드라마에 몰입하고 캐릭터에 공감하는 부분에는 정말 감사하다. 사실 역작용이라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밝혔다.

◆안영이 월급통장..이런 상황 현실에 있기, 없기
지난 15일 방송 후 시청자들 사이에 화제를 모은 장면이 있다. 바로 안영이의 월급 통장이다. 그녀의 통장에는 월급이 365만4200원이 찍혀 있었고, 시청자들은 '신입 사원 안영이의 월급이 이렇게 많아도 되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이재문 프로듀서는 '안영이의 월급 통장'에 대해 "이는 사전에 '미생'을 준비하던 작가들이 취재해서 만들어 낸 장면이다. 무역상사의 초봉이 많게는 5000만원까지도 받는 대신 임금 인상폭이 크지 않다고 한다"며 "또한 분기별 보너스가 있는데, 안영이의 경우 보너스를 받았던 달이다. 제작진이 이 부분을 더 리얼하게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생'에는 이처럼 사실적인 상황도 있지만 극을 위해 만들어 낸 가상(판타지)의 상황도 있다. 대표적인 3가지 상황은 오상식의 문충기(정의갑 분) 대표 2차 접대, 박과장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 인턴들의 꼴뚜기 찾기다.
오상식의 문충기 대표 2차 접대에 대해 이재문 프로듀서는 "요즘 2차 접대를 이렇게 대놓고 하는 곳은 없다"며 "회사 접대이기 때문에 어느 선까지 이뤄지는 사실 모르겠다. 그러나 극중 장면은 오상식의 신념을 보여주면서 성과를 이뤄낼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판타지를 더한 장면이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듀서는 박과장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에 대해서는 리얼리티가 더해진 판타지라고 밝혔다. 회사에서 자기 자리 지키기도 어려운 요즘 같은 시대에 박과장과 같은 일을 벌이기에는 보통 배짱을 가지지 않고서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재문 프로듀서는 "'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는데, 박과장의 경우에는 아주 오래 전에는 종종 있던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런 일을 벌이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고 밝혔다.
불가능한 상황이 왜 '미생'에 등장했을까. 이 프로듀서는 "과거 1억불의 계약을 이룬 박과장이다. 그런 그에게 고작 하루 회식을 할 수 있는 법인카드가 상으로 주어졌다"며 "이에 박과장은 괴리감을 느낄 수 있고, 회사 내에서 비리를 저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장되어 있지만 성과를 이뤄야 하는 직장인들은 공감할 수 있는 리얼리티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장그래가 오징어젓갈에서 꼴뚜기를 찾는 장면(1회). 진짜 이런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현실적인 감각을 높이기 위한 가상의 설정이었다.
"인턴 과정에 있는 시청자들의 적잖은 분노를 일으켰다"는 이재문 프로듀서는 "장그래가 어떻게든 회사에 남고, 버텨내야 한다는 성실함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상황이다"고 밝혔다.
그는 "장그래라는 캐릭터를 시청자들이 사랑할 수 있게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장면이다. '조금 억지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파장이 커서 놀랐다"고 말했다.
'미생'에서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캐릭터와 에피소드의 구성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예정이다. 또한 1,2회 때처럼 서글픈 장면은 앞으로 꾸준히 등장할 것이라고 이재문 프로듀서는 밝혔다.
이재문 프로듀서는 '미생'에서 판타지 적인 캐릭터와 상황이 현실에도 있었으면 한다고 털어놓았다.
"우리 사회의 인재들이 정해진 길로 가야하는 상황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드라마가 끝나면 여러 기업에서 메뉴얼대로 인재를 뽑고 업무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조금은 벗어났으면 한다. 그것이 '미생'인 사회가 '완생'이 되는 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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