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뷔와 동시에 스타 반열에 오르는 배우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단역 시절을 거쳐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올라간다. KBS 2TV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극본 소현경, 연출 김형석)의 주인공 신혜선(29)도 그랬다. 지난 2013년 KBS 2TV 드라마 '학교 2013'에서 단역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녀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후엔 달랐다. MBC '아이가 다섯'(2016), SBS '푸른 바다의 전설'(2016~2017), tvN '비밀의 숲'(2017) 등 최근 몇 년간 작품에서 인상 깊은 연기로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자신의 첫 주연작 '황금빛 내 인생'에서 탁월한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달라진 입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에게 수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오고, 광고 러브콜이 쏟아졌다. "아무도 위로해 줄 없는 백수 시절 자존감이 떨어지더라도 희망은 놓지 않았다"는 그녀는 마침내 드라마 제목처럼 '황금빛' 인생을 걷게 됐다.
"너무 감사드려요. 요즘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드라마 종영 후 최근 스타뉴스와 만난 신혜선은 누구보다 들떠있었다. 그는 "오랜 기간 촬영해서 그런지 시원섭섭했다"며 "체력적으로, 감정적으로 중간에 힘이 부치는 경우도 있었는데, 막바지가 되니까 100부 정도 연장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더라"며 환하게 웃었다.
'황금빛 내 인생'은 지난 11일 52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주말 안방극장을 책임진 이 드라마는 마지막 회에서 자체 최고 기록인 45.1%의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지상파 드라마 시청률이 전반적인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일궈낸 성과라 의미가 남다르다.
"처음 시작할 땐 시청률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어요.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제가 맡게 될 캐릭터가 좋았죠. 막상 방송을 시작하니까 방송 다음 날 매일 시청률을 검색하게 되더라고요. (시청률이 잘 나온 것은)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봐주시니까 점점 부담도 되더라고요. '좀 더 잘할걸' 아쉬움도 생기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어요."
'황금빛 내 인생'은 금수저로 신분 상승 기회를 맞았던 주인공 서지안이 도리어 나락으로 떨어지며 그 안에 행복을 찾는 방법을 깨닫는 이야기의 드라마다. 극 중 서지안으로 분한 신혜선은 데뷔 첫 주연작임에도 흡입력 있는 연기와 남다른 캐릭터 소화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극 중간 서지안의 자살시도, 아버지 서태수(천호준 분)의 '상삼암' 장면 등이 공감을 주기 어렵다는 시청자들의 비판도 있었지만, 신혜선은 흔들리지 않고 극을 이끌어갔다.
"솔직히 자살시도를 해도 자살은 하진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죠. 가족 드라마니까 때론 어린 아이들이 보기에 너무 자극적이거나 비교육적이진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서)지안이의 심정만 놓고 본다면, 다 포기하고 싶었을 거예요."
신혜선은 논란이 됐던 '상상암' 소재에 대한 솔직한 생각도 털어놨다. '상상암'에 대해 "힘들었던 아버지를 표현했던 단어"라고 정의한 신혜선은 "객관적인 시청자 입장에서 보지 못해 그랬을 수도 있지만, 내 개인적으론 굉장히 가슴 아팠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상상임신'을 하듯이, 암을 만들어서 떠나고 싶었을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결말에서 서태수는 다시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8개월여 간 천호진과 부녀 사이로 연기 호흡을 맞췄던 신혜선은 "천호진 선생님의 눈만 보고 있어도 감정이 올라왔다"고 떠올렸다.
"선생님(천호진)이 후배들에게 살가운 편은 아니세요. 연기자 대 연기자, 캐릭터 대 캐릭터 느낌으로 대해주세요. 그런데 근 1년간 아빠와 딸 관계로 지내니까 뭔가 가슴이 따뜻해지는 감정이 있더라고요. 나중엔 자꾸 울컥울컥 감정이 올라와서 감정을 참으면서 연기해야 했어요."
해성그룹 후계자 최도경 역의 박시후와는 밀고 당기는 로맨스 연기를 펼쳤다.
신혜선은 함께 연기한 박시후를 치켜세우며 "연기를 하면서 한 번도 흔들리는 것을 못 봤다. 확실히 선배는 선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흔들리지 않더라. 내가 정신을 못 잡고 있을 때도 많이 집중해줬다"고 말했다.

신혜선은 8살 때부터 배우의 꿈을 꿨다고 한다. 언젠가는 '연기 대상' 시상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잠이 들곤 했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에 진학한 뒤 의기 있게 현장에 뛰어들었지만, 배고픈 백수생활이 찾아왔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휴학을 하고 부딪혀봤는데, 그때부터 우울한 백수생활이 시작됐어요. '이 길이 아닌가' 고민할 때도 있었지만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작은 역할이라도 꾸준히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희망은 놓고 싶지 않았어요."
인고의 시간을 지나 '황금빛 내 인생'을 통해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남긴 신혜선은 마침내 '2017 KBS 연기대상'에서 장편 드라마 부문 여자 우수상을 수상했다. 어릴적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당시 시상대에 올라 눈물을 흘렸던 신혜선은 "어렸을 땐 연기자가 되면 시상식에서 어떻게 수상 소감을 말할까 공상을 했다. 마치 허상처럼 실체가 없던 꿈을 꾸던 내 모습이 생각나 울컥했다"고 털어놨다.
신혜선은 이어 "신기하게도 어느 날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기회가 오더라"며 "소현경 작가님도 너무 팬이라, 작가님 작품으로 주연 데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황금빛 내 인생'을 만나 이뤄졌다"고 고백했다.

차기작 SBS 2부작 특집극 '사의 찬미'도 신혜선이 출연하고 싶었던 작품 중 하나다. 신혜선은 '사의 찬미'에서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역을 맡았다. 그는 "데뷔하기 전 라디오를 통해 윤심덕과 김우진의 얘기를 접했는데, 뭔가 로맨틱하고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신혜선과 호흡을 맞출 조선의 천재 극작가 김우진 역에는 이종석이 낙점됐다. 두 사람은 5년 전 '학교 2013'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종석) 선배와는 같은 헬스클럽을 다녀서 지나가다 오다가다 한두번씩 만났어요. 어쨌든 되게 성공한 선배잖아요. 주변에서 배울 점도 많다고 해서, 짧지만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워 보려고요."
꿈에 그리던 '황금빛' 인생을 시작한 신혜선은 당분간 쉴 틈 없이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현재 그는 20여 편의 드라마, 영화 출연 제안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쉬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일이 없을 때 너무 쉬어서 한이 맺혔어요. 적어도 근 1년 동안은 소처럼 일하고 싶어요."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