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에 '표준'이 있다면 폭스바겐 골프는 영순위에 속할 것이다. 디자인 원형이 바뀌지 않으면서 누적 판매량 3000만 대를 돌파한 유일한 자동차 골프가 불혹에 걸맞은 완숙미까지 더하고 있다.
문득 스치는 생각 하나. 지금 필요 이상으로 크고 화려한 자동차를 타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이다. 자동차를 포장하기 위한 말 중에는 '준중형'과 '준대형'처럼 다소 어색한 것이 많다. (엄밀히 말해) 소형인데 중형에 가깝다는 말이고, 중형인데 대형에 가깝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이 '중' 자와 '대' 자에 홀랑 넘어간다. 자연히 메이커 입장에서는 라인업에서 소형차나 경차의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고 사람들도 중형차와 대형차를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단순한 용어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케케묵은 편견이 있고 사안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안일함이 숨어 있다. 대소(大小)에 대한 부정확한 개념이 바로 그것. 사람들은 아파트 평수와 TV의 인치 수, 남자의 키 등을 논할 때 맹목적으로 큰 숫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29평과 30평 아파트의 엄청난 가격차나 우스꽝스러운 키높이 구두나 깔창이 그 산물. 차를 고를 때도 사이즈는 아주 민감한 문제다. 차는 일단 크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미들급 이상의 SUV와 중형 세단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 차 덕에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감각적이고 섹시한 사람 소리를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혼자 타고 다니면서 매일 낭비되는 실내 공간이나 주차 공간을 생각하면 자신이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지 금세 깨달을 수 있으니 말이다. 주차 라인을 꽉 채운 럭셔리 SUV나 흔해빠진 준중형 세단보다 소형 해치백이 훨씬 더 섹시해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역시 시작은 폭스바겐 골프였다. 글로벌 스테디셀러인 골프는 우리나라에서도 통했다. 골프는 한국 수입차 시장의 대중화를 이끈 리더 역할을 했는데, 특히 국내에서 가장 평가 절하된 장르였던 해치백 붐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살만하다. 2009년 9월 국내에 처음 출시된 이후 2013년 5월 공식 판매가 종료된 6세대 모델까지 폭스바겐 골프는 3년 8개월 동안 총 1만7694대(골프 카브리올레 제외)나 팔리면서 수입 소형차 부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지난해 7월 1.6 TDI 블루모션, 2.0 TDI 블루모션을 시작으로 국내에 상륙한 7세대 골프(GTI, GTD 포함)도 이미 9620대(2014년 10월까지 기준) 팔렸고 지난 10월에는 골프 2.0 TDI 블루모션 모델이 수입차 판매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그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있다.
◆GOLF GENERATION

지난 40년간 자동차 산업의 발전상이 함축되어 있는 폭스바겐 골프 히스토리.
(왼)1세대 골프(1974~1983)1974년 탄생한 1세대 골프는 세계 최초로 해치백 콘셉트를 적용, 상용화하면서 새로운 세그먼트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이른바 ‘골프 클래스’를 탄생시켰다. 골프는 이미 1세대부터 GTI(1976), D(1976, 디젤엔진 장착), GTD(1982, 터보 디젤엔진 장착)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1979년 처음 출시된 골프 카브리올레는 월드 베스트셀링 카로 꼽힐 만큼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1세대 골프는 동일한 플랫폼을 공유하는 제타를 포함해 약 699만 대의 판매고를 올리며 폭스바겐의 자랑이던 비틀의 명성을 이어가는 데 멋지게 성공했다.
(오)2세대 골프(1983~1991)베이비붐 세대가 시작되던 1983년 2세대 골프가 등장했다. 이전 모델이 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얻었던 자동차 중 하나였다면 2세대 모델은 골프가 만인의 연인으로 굳게 자리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세대 모델에서는 전보다 많은 혁신이 이뤄졌다. 1986년에는 ABS(Anti-lock Brake System)를 장착한 골프를 처음 선보여 누구나 기술 혁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폭스바겐의 철학을 반영했다. 같은 해 폭스바겐은 파워 스티어링을 장착한 최초의 사륜구동 골프도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1988년에는 골프의 하이브리드 프로토타입 모델까지 개발했다. 1984년 골프는 데뷔 14년 만에 1000만 대 생산 고지를 돌파했다. 1991년까지 생산된 2세대 골프는 약 630만 대 팔려나갔다.

3세대 골프(1991~1997)1991년에 출시된 3세대 골프는 특히 안전과 관련한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였다. 운전석은 물론 조수석까지 에어백을 제공했으며 전 차종에 ABS 시스템을 기본 사양으로 장착했다. 당시만 해도 듀얼 에어백, ABS 등은 소형차에 기본 사양으로 적용되기 힘든 호화 사양이었다. 이처럼 안전과 관련된 신기술 중에는 골프를 통해 대중화되고 표준화된 것이 많다. 또한 3세대 골프는 동급 최초로 6기통 엔진을 탑재했을 뿐 아니라 에코매틱 기어, 크루즈 컨트롤, 디젤 최초의 산화 촉매 변환제(1991), 최초의 직분사 디젤 엔진(1993)을 장착하는 등 운전의 재미를 한층 더 극대화시킨 모델이다. 1993년에는 3세대 모델을 기반으로 한 골프 컨버터블이 출시되었고 새로운 사륜구동 모델과 바리안트 모델도 처음 선보였다. 그 결과 1995년 5월 골프 누적 생산량 1500만 대를 달성했다. 3세대 골프의 전 세계 판매량은 483만 대다.

(왼)4세대 골프(1997~2003)4세대 골프가 나올 당시는 폭스바겐 그룹 디자인 총괄 하머트 바쿠셰의 총 지휘하에 폭스바겐 고유의 디자인 DNA가 완성된 시점이다. 그래서 4세대 골프는 오늘날 출시되는 골프의 스타일 아이콘 또는 표본이 되기도 한다. 1999년에는 ESC를 기본 사양으로 채택했다. 2002년에는 전면과 측면, 헤드 에어백을 기본으로 적용하는 등 안전한 자동차를 만드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최근 트렌드가 되고 있는 듀얼 클러치 변속기도 이미 2003년 골프 R32에 6단 DSG로 상용화되었다. 이 차는 수동 변속기와 자동 변속기의 장점을 절묘하게 결합해 편안한 승차감과 경제성 그리고 빠른 가속력과 운전의 재미를 모두 충족했다. 전 세계에 판매된 5세대 골프는 총 499만 대다.
(오)5세대 골프(2003~2008)2003년에는 레이저 용접 기술을 적용한 5세대 골프가 출시되었다. 동급 모델 중에는 (역시!) 처음이었다. 이와 더불어 파크 어시스트, DCC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 등 새로운 주행 보조 시스템 등도 장착되었다. 2004년에는 터보차저 직분사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 골프 GTI, 2006년에는 세계 최초의 트윈차저 엔진이 장착된 TSI가 소개되었다. 2007년 골프 블루모션으로 지구 전역에 부는 친환경 이슈에도 동참했다. ‘2009 월드 카 오브 더 이어’ 모델에 선정된 5세대 골프의 총 생산량은 340만 대다.

(왼)6세대 골프(2008~2012)6년이 지난 2008년, 폭스바겐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골프로 평가받는 6세대 모델을 세상에 내놓았다. 국내에는 2009년 9월 6세대 골프 TDI 모델을 처음 선보였는데, 이 모델은 배기량 1968cc에 최고 출력 140마력의 3세대 커먼레일 TDI 엔진이 장착되고, 소음 감소를 위한 첨단 기술이 대거 적용돼 최강의 정숙성을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리터당 17.9km라는 혁신적인 공인 연비, 더욱 개선된 친환경 기술 도입으로 까다로운 유로 5기준을 만족시켰다. 단 4년간 판매된 6세대 골프의 총 생산 대수는 285만 대에 육박한다.
(오)7세대 골프(2012~)폭스바겐은 2012 파리 모터쇼에서 실내외 디자인과 파워트레인, 플랫폼 등 거의 모든 것이 새로 설계된 7세대 신형 골프를 처음 공개했다. 폭스바겐 특유의 간단명료함과 골프 고유의 DNA를 유지하면서도 더욱 진보된 표현 방식을 통해 역대 모델 중 가장 ‘고급스러운’ 골프가 완성되었다. 더욱 길고 넓고 낮아진 차체 비율, 넓어진 실내 공간, 동급에서 기대하기 힘든 높은 감성 품질과 첨단 기술로 세대를 뛰어넘고자 한 것이다. 특히 차체 무게를 100kg이나 줄인 경량 설계와 함께 친환경 파워트레인과 DSG 변속기 등을 적용,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차세대 생산 전략인 MQB 플랫폼에서 생산되는 폭스바겐의 첫 모델로 폭스바겐 그룹의 미래를 제시하는 7세대 골프는 세계적 권위의 상을 열일곱 개나 석권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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