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서울 프레이저 스위츠 호텔에서 고현정과 김승우를 만났다. A형에 물고기 자리. 김승우와 고현정의 공통점이다. 작은 것에 소심하고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고 있기 마련이라는...
두 사람의 공통점이 최근 하나 더 생겼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제작 영화사봄, 전원사)에 주인공으로 나란히 출연한 것. 왠지 홍상수 영화와는 안어울릴 법한 두 사람은 설탕이 물에 녹아내리듯 '해변의 여인'에 잘 섞여들었다.
이날 두 사람과의 대화를 가감없이 옮긴다. 남녀 주인공과의 대담이라기보다는 두 명의 남자 주인공과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첫 영화를 스크린에서 본 소감은.
▶(고현정 이하 고)행복..하더라. 홍상수 감독에게 '첫 영화가 홍 감독님의 영화라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고현정은 전날 진행된 많은 일정 때문에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다)
-첫 영화를 홍상수 감독 영화로 결정한 것은 '홍상수 프리미엄'을 기대한 건 아닌가.
▶(고)활동 안할 때부터 진짜 좋아했다. 홍 감독님 스타일의 영화를 원래 좋아한다. 그러다 우연히 영화사 대표와 함께 홍 감독을 만나게 됐다. 그 자리에서 '제가 배우를 계속 했어도 홍 감독님 영화는 출연 못했겠죠'라고 했더니 '왜 안되겠냐'고 하시더라. 그래서 바로 결정했다.
-홍상수 감독은 촬영 당일 대본을 넘기고 술도 많이 먹이는 걸로 유명한데.
▶(김승우 이하 김)원래 술을 잘 못하는 편이다. (옆에서 고현정이 정말 못하더라고 거든다) 홍 감독이 술을 권하는 것은 술의 향이 주는 느낌,그 분위기를 뭍어내라고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이번에는 홍 감독이 건강이 안좋아서 술을 잘 안권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고)술에 잔뜩 취해 연기를 할 수는 없다. 미리 짜놓은 합을 맞춰야 하니깐. 다만 분위기를 냈을 뿐이다.
-화장도 전혀 안해 술에 퉁퉁 부은 '생얼'로 나오던데.
▶(김)나야 남자배우니깐 메이크업에 별로 신경안쓴다. 그런데 메이크업팀이 현장에 아예 없었다. 있는 그대로를 그냥 보여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옷 입는 장면이면 그냥 전날 입었던 잠옷을 그대로 입고 나왔다. 속옷만 매일 갈아입었다. 제작비 싸게 들었다.(웃음)여자배우들이 힘들었지,뭐. 턱이 두 개로 나오는데.
▶(고)외모가 예쁘게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용에 빠져 있다보니 의식을 잘 하지 못했다. 또 그런 걸 의식하면 감독과 게임이 되지 않는다. 거울 볼 시간에 공부하는 게 낫다. 거울 본다고 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이 말에 김승우는 정말 이렇게 거울 안보는 여배우는 처음 봤다고 맞장구를 쳤다. 정말 그렇지라고 되묻는 고현정의 모습에서 처음 볼 때의 피곤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너무 연기를 잘해서 그런지 실제 모습 같더라.
▶(김)크~. 연기를 너무 완벽하게 소화하면 그런 소리를 듣더라.(웃음)그런 소리를 사실 좀 들었는데 그럼 살인자를 연기했으면 살인해봤냐고 묻는 것과 똑같다. 그냥 몇 개월 동안 그 인물로 살았을 뿐이다. 아니면 이 여자랑 그러고 저 여자랑도 그러고, 또 들키고. 얼마 있으면 개봉하는 '연애,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는 장진영하고 그러고. 그게 인간이 할 짓이냐.
▶(고)나도 마찬가지다. 사랑한다고 바로 자지도 않을 것 같고, 또 한 번 잤다고 마누라처럼 난리치지도 않을 것 같다. (김승우는 이 때 '그러면 완전히 미저리지'라며 고개를 끄떡였다)
-고현정과 송선미가 술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김)나도 그랬다. 일부러 촬영이 없는데도 보러 갔는데 그야말로 불꽃이 튀기더라. 다음 장면을 고현정과 찍는 데 어떻게 해야하나 라고 걱정이 들 정도였다.
-서로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김)윤여정 선배가 고현정을 응원하러 촬영장에 온 적이 있다. 그 때도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지금까지 만난 배우 중 가장 기능적으로 뛰어나다.
▶(고)연하랑 할 때와는 또 다르더라. 편안하고. 그리 많은 남자배우들하고 해보지는 않았지만 가장 섬세하고 결이 많은 것 같다. 보통 연습할 때와 슛이 들어갈 때가 다른 법인데 김승우처럼 잘 받아주는 배우는 없었다. 또 정말 배려가 많고 착하다. 다른 여배우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김)고현정이 촬영 끝나고 문자를 보냈다. '오빠, 든든한 남동생 하나 생겼다고 생각해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웃음) 그런 사람이 '여자라서 행복해요'라고 광고를 하다니. (이 때 고현정이 '여자 말 듣길 잘했죠'로 바꿨다고 한 마디 하자 폭소가 터졌다)
-사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는 잘 안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고)예전부터 느꼈는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진짜같고, 또 몰카같은 느낌을 주지 않나.(이 말에 김승우가 남동생이 맞다니깐이라며 웃었다) 연기하는 척을 하지 않아야 어울릴 것 같아 나만의 버릇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김)홍 감독과 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캐릭터를 구축했다. 시험 준비를 잘해서 시험을 잘 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고)영화도 영화지만 우리끼리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때 김승우가 뭐처럼 열연을 펼쳤는데 고현정이 안했으면 모든 포커스가 나한테 왔을텐데라고 농담을 던져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김)사실 홍상수 영화를 한다니깐 주위에서 네가 그걸 왜 하는데라고 하더라. 뭐, 고현정이 출연한다고 하니깐 금방 묻히더군.(다시 웃음이 터졌다)
-극 중 캐릭터와 서로는 얼마나 닮았나.
▶(김)고현정과 극 중 캐릭터인 문숙은 솔직하다는 부분에서 서로 닮은 것 같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어떤 때는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솔직하다. 다른 점이라면 설마 원나잇 스탠드를 하겠어~. 고현정은 정말 몰카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한다. 고난위 연기를 펼친다.(이 말에 고현정은 '캬' 소리를 내며 몸을 비비 꼬았다)
▶(고)승우 오빠가 사구에서 우는 장면이 있다. 그 신이 무척 탐났다. 살면서 그러고 싶은 순간이 종종 있어서 그런지, 그런 마음을 절로 알 것 같았다. (곁에서 김승우가 '오랜만에 열연을 펼쳤다니깐'이라고 말해 또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착하다. 너무 착하고 배려가 많다. 정말 포커스 운운한 게 농담인 게 자기 욕심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부인이면 무르다고 했을 거다.
-함께 하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
▶(고)스파르타 훈련시키듯 단련시켜주는 사람.
▶(김)자기를 확 잡아주는 감독과 하고 싶다는 고현정의 말에 공감한다. 요즘은 배우도 그렇고 스태프도 그렇고 많이 젊어졌다. 그러다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김승우를 그대로 가져다 맞추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타이밍이었다. 연기에 대한 매너리즘도 있었고. 그런데 홍상수 감독을 만난 거다. 밥상을 차려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고현정이라는 훌륭한 밑반찬을 준비해 놓은 것이다. 얼마나 좋았겠나.
-영화처럼 실제로 앞에서 바로 좋다고 하는 사람이 좋나.
▶(고)그렇다. 좋다고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좋지, 괜히 앞에서 분위기만 풍기는 사람은 싫다.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남자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그냥 말하지 않아도 아는 줄 안다. 그게 문제다. (이 때부터 고현정에게 궁금증을 몰아서 물었다)
-연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연기에 대한 갈증은 없었나.
▶그만 둔다고 하고 가정 생활을 할 때는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아이를 하나 낳고, 둘 낳고 그러다보니 완전히 관객의 입장이 됐다. 그러다 일을 해야 하자 막막하더라. 미래를 약속받은 게 없으니. 제일 하고 싶은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일에 대한 후회는 없나.
▶지난 일에 연연하거나 후회하는 편은 아니다. 비 오거나 그러면 잠깐 그러기도 하지만.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행복한 모습이 연기에서 묻어나도록. 슬픈 일은 이제는 안들킬 수가 없지 않나.
-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나.
▶다른 재주가 없으니깐.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하고, 또 성취감을 느끼고도 싶고. 그래서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예전과는 그 마음이 또 달라지더라.'봄날' 중반부터 그랬다. 예전보다 퇴보할 수는 없지 않나. 연기가 천직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또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아서 그런지. 일이 안들어 오면 할 수 없지 않겠나.
-대중과 거리를 두기 때문에 오해도 많이 산다. 방송 출연에 좀 더 적극적이라면 루머도 어느정도 사라질텐데.
▶이런 거다. 대판 싸우고 두 번 다시 안볼 것처럼 헤어졌는데 내 필요에 의해 다시 만나게 된거다. 그런데 거기에서 내가 예전에는 어땠고, 그 때는 저랬는데, 이러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못할 것 같다. 한 작품 한 작품 하면서 대중에게 좀 더 가까워지려 한다. 방송에 잘 출연하지 않는 것은 내가 너무 솔직하다. 그러다보니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한다. 그래서 자제를 하고 있다.
-뭐가 제일 힘든가.('해변의 여인'에서 김승우가 고현정에게 묻는 질문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다가 요즘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 혼자 들어가려니 좀 힘들다. (이 때 김승우가 '그럼, 들어가지 마'라고 한 마디를 던졌다. 다시 웃음꽃이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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