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석은 양파처럼 벗길수록 끝없는 층을 가진 배우이다.
대중에 이름을 알린 KBS 2TV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에서는 암에 걸린 아내에게 헌신적인 남편으로 등장하더니 뒤이어 MBC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에서는 바람둥이 남편으로 분해 아줌마 팬들에게 원성을 샀다.
지난 달 31일 개봉한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는 과거에 발목잡힌 무능력한 아버지를 선보였다가 오는 28일 개봉하는 '타짜'(감독 최동훈ㆍ제작 싸이더스FNH)에서는 일체의 감정이 배제된 날선 칼 같은 모습을 악역을 연기해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김윤석이 연기한 아귀는 전국 최고의 타짜면서도 악랄하기 그지 없는 인물. 그는 '타짜'에 4~5회차 정도 밖에 촬영을 안했는데도 불구하고 깊은 인상을 준다.
"운이 좋았다. '있을 때 잘해'와 '천하장사 마돈나' 그리고 '타짜'까지 세 작품을 겹치기 촬영했는데도 모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됐다."
그의 말처럼 김윤석은 운이 좋았다. 세 작품이 거의 동시에 브라운관과 스크린에 걸리고 또 호평을 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윤석의 운은 그냥 굴러온 게 아니라 끊임없이 찾아다닌 결과이다.
67년 양띠. 부산에서 1990년 상경해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면서부터 밟아온 연기의 길이 이제야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당시 연극을 하면서 함께 소주를 기울이던 동료들 중 송강호 설경구 유오성 등은 이미 한국 영화계의 대표 선수들이 됐다.
"20대나 30대 초반이었으면 이를 악물고 쫓아가려고 했겠지. 하지만 마흔 살을 앞둔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나만의 아우라를 갖는 것이다. 각각 다른 색깔을 그려낼 수 있다면 1000번이라도 악역을 더 맡을 수 있다. 로버트 드니로가 아무리 조폭을 연기해도 그만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처럼."
그런 김윤석이기에 '타짜'는 더욱 소중하다. 선글래스를 벗기 전까지 도저히 그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악한 아우라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그는 극 중 "복수? 그런 인간적인 감정으로 접근하지 말고 철저히 비지니스 감각으로 해라"고 내뱉는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연을 맺은 최동훈 감독이 '타짜'를 함께 하자고 했죠. 처음에는 착한 타짜인 '짝귀'가 내심 탐났는데 나를 보고 '아귀'를 하라고 하더군. 내 모습에서 그런 악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최동훈 감독을 더욱 신뢰하게 됐다."
김윤석은 특히 최동훈 감독과 이석원 프로듀서, 최영환 촬영 감독 등 '타짜 3인방'이 힘을 합친다면 언제라도 일을 함께 하겠다고 할 만큼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김윤석이 제작진의 믿음에 완벽하게 화답한 것도 물론이다.
"아귀가 극 중 정마담(김혜수)에게 '상상력이 많으면 인생이 고달파진다'고 말한 게 아귀 캐릭터의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 등 주옥같은 배우들이 실크로드를 깔았다면 막판에 내가 지옥의 문을 보여줘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 사실 내가 극의 흐름을 망치면 어떨까 부담도 컸다."
연극부터 시작해 방송, 영화까지 각종 윈도우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는 김윤석은 아직까지 어떤 윈도우가 자신과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만 "목표를 내가 정한다고 세상이 알아주는 건 아니다. 아직 보여줄 게 많으니 더 많은 기회가 주어줬으면 좋겠다"고 겸손해했다. 김윤석의 다음 작품이 진심으로 기다려지는 건 바로 이런 까닭이다. <사진=최용민 기자 leeb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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