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과'는 이른바 창고영화다. 오는 16일 제작된 지 4년 여 만에 햇살을 보게 됐다.
'사과'를 유명하게 한 것은 늦은 개봉이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사과'가 상영될 당시 주연배우 문소리가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사과'는 여느 창고영화와는 다르다. 다른 창고영화들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비난을 사면서 개봉이 늦어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평을 들은 것과는 달리 '사과'는 왜 이제 개봉이 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완성도가 높다.
통상 해를 넘겨 개봉이 될 경우 시대적인 감성과 맞지 않는 게 태반인데 '사과'는 그마저도 가볍게 넘긴다. 이는 '사과'가 보편적인 진리인 연애와 결혼의 깊은 곳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과'는 오랜 연인에게 숨이 막힌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 받은 한 여인이 자신을 오래도록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연애할 때보다 더욱 당신을 좋아하게 됐다는 여인의 고백도 잠시, 말이 안 통하는 남자와의 삶은 그녀를 더욱 갑갑하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옛 남자가 찾아온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와 나를 좋아하는 남자 중 어떤 남자와 결혼하는 게 좋냐는 것은 여인들의 영원한 숙제다. '사과'는 해답이 없는 이 숙제에 돋보기를 들이댔다.
강이관 감독은 수많은 커플들을 인터뷰해 연애와 결혼, 연장선에 있지만 서로 다른 경험을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대를 갖도록 만들었다.
각본까지 직접 쓴 강이관 감독은 일상을 묘사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대사와 상황 전개로 예기치 않은 웃음을 곳곳에 담았다. 봉준호 감독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만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다만 연애가 알콩달콩하고 결혼은 현실인 것처럼 '사과' 역시 연애 과정을 담은 전반부는 웃음이 충만하지만 결혼 생활을 그린 후반부는 현실의 무게에 휘청인다.
'사과'의 매력은 무엇보다 공감에 있다. 환상에 기댄 멜로가 아니라 공감에 초점을 맞춘 멜로이다. 때문에 사실적이고 시간이 지나도 매력적이다. 이 영화는 철거되기 전 청계고가가 보이는 것에서 비로소 제작연도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동시대와 호흡한다. 연애와 결혼은 시간이 흐른다고 관계가 바뀌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결혼이 뭔지 모르던 처녀 문소리와 여전히 똑같은 김태우, 풋내가 넘치던 이선균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사과'의 미덕이다. 파란 풋사과가 익어서 붉은 사과가 되는 것처럼 철없던 사랑은 무르익어 결혼이란 현실이 된다. 상자 속에서 어떤 사과를 선택할지 모르는 것처럼 수많은 상대 속에서 한 명과 인연을 맺는 것도 결국 선택의 문제이다. 뒤늦게 후회할지라도.
'사과'는 결혼을 앞두거나 막 결혼을 시작한, 아니면 고민하고 있는 여성들에 좋은 참고서가 될 영화이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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