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영화인 225명이 시국선언을 했다. 영화를 통해 세상에 말을 건네던 감독들이 바야흐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왜 지금 이 시점에 나라를 걱정한다는 발표를 해야 했을까?
선언문에 답이 있다. 이 선언문의 행간에는 "제발 영화만 만들고 살게 해달라"는 절절함이 숨어 있다. 18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정윤철 감독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인 그는 마침 이날 발표된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를 우려하는 영화감독 100인 성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시국선언 준비는 어떻게 했나.
▶처음에는 효과가 있을까란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인들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 직업군으로서 집단적인 생각을 말할 때라고 생각했다. 정지영 감독님부터 여러 사람들이 모여 연명을 해서 선언문을 만들었다.
-선언문의 행간에는 이런 일 안하고 영화만 만들게 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듯 했다. 모호하고 추상적인 표현도 더러 있고.
▶맞다. '시나리오 쓰기도 힘든데 이런 것까지 나서야 하나'라는 생각이 다들 있다. 이렇게 만든 상황이 힘들다. 병이 들었다면 들었다고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치료를 하지. 우린 병이 들었다고 알려주려는 것이다. 정권을 타도하자는 게 아니라 제발 잘해달라는 뜻으로 한 것이다. 좌파든 우파든 이 정권을 걱정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소통이 단절됐다는 뜻이 아닌가.
-시국선언에서 밝힌 것처럼 지금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87년보다 절차상의 민주주의가 발전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과 보수 언론이라는 시스템으로 사회 통제를 하는 것은 그 때보다 세련되고 더 세졌다고 생각한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이익을 염려하지는 않았나.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지 않나. 전쟁의 위협도 느끼고 있고. 불이익에 대한 걱정보다는 뭔가 해야겠다는 절박감이 더 컸다. 밥그릇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인터뷰는 어려운 자리이기도 한데.
▶225명이 모두 시국선언문을 읽어보고 찬성했다. 난 그들 중 한 명일뿐이다. 공통된 의견을 말할 뿐이다. 우린 정치인이 아니다. 영화인으로서 생각을 사회에 드러낸 것이다. 그런 것까지 탄압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만일 그렇다면 국민 성금이라도 모금해 영화를 만들어야겠지.
-영화인은 영화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영화는 사회의 반영이다. 미국을 보자. 부시 정권 때 '화씨 911'이 만들어졌다. 최소한의 언로를 유지해준 것이다. 좌우를 따지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그걸 침해당하고 있다면 되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전에 하길종 감독님이 독재정권과 갈등을 빚다가 요절했다. 한국영화에는 그런 정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때보다 민주화가 진행됐기에 이런 시국선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뀌고 영화계가 정치적인 외압 등으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나. 소문은 무성한데 명확한 실체로 드러난 게 있는지.
▶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영화계가)갈등도 겪고 있고, 외압도 더러 있으며, 알아서 기는 것도 있다. 창작의 자유는 이런 분위기가 생기다보면 자기 검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PD수첩' 검찰 발표를 보면 이메일까지 조사해서 공개했다. 그럼 이제는 이메일을 쓰면서도 자기 검열이 생기지 않겠나.
-한예종 사태에 대해서도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문화에도 우파와 좌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파 정권이 들어선다고 문화에서 도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렛 잇 비'가 우리의 모토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