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개봉에도 시즌이 있다. 시즌마다 기대하는 장르의 영화가 따로 있기 마련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액션 영화나 볼거리 풍성한 블록버스터를, 가을에는 멜로영화를, 크리스마스엔 가족 영화를, 연말연시나 명절에는 코미디가 대세다. 아니 대세였다.
최근 한국영화의 개봉 패턴이 달라졌다. '변칙개봉'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개봉 시즌과 영화의 개봉의 궁합이 예전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영화의 흥행 패턴에도 차이를 만들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2007년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영화 '추격자'다. 어둡고 폭력적인 액션 스릴러인 '추격자'는 그해 밸런타인데이 시즌 개봉해 500만 넘는 관객을 모으며 롱런했다. 당시엔 관계자조차도 성공을 장담하지는 못했지만, 완성도를 믿고 밀어붙였다는 후문. 안이한 개봉 공식에서 벗어난 선택이 대박으로 이어진 셈이다.
조금 이르게 찾아온 지난 추석에는 심지어 코미디가 사라졌다. 2000년대 초 기세를 자랑했던 조폭 코미디는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올 추석 극장가를 휩쓴 것은 눈물나는 멜로물이었다. 불치병 멜로 '내사랑 내곁에'와 액션이 가미된 멜로 사극 '불꽃처럼 나비처럼'이 정면 승부해 '내사랑 내곁에'가 승리를 거뒀다.
다가온 겨울방학 시즌과 크리스마스에도 변칙적인 장르 선택이 눈길을 끈다. 연휴가 이어지는 연말은 가족 영화들이 사랑받는 때다. 800만 관객을 돌파한 가족 코미디 '과속 스캔들'이 첫 선을 보인 것이 바로 이 때다. 부담없고 유쾌한 코미디 영화에 관객들이 공명한 셈이다.
그러나 올해 연말은 당시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개봉을 확정지은 것은 강동원 임수정 김윤석 백윤식 주연의 도시 활극 '전우치'다. 100억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인 '전우치'는 코미디가 가미되긴 했지만 고전 소설을 바탕으로 색다른 볼거리와 신선한 비틀기를 시도한 작품. 조선시대의 도사들이 도시를 배경을 벌이는 액션이 관심을 끈다.
내년 1월 초에는 설경구 류승범 한혜진의 '용서는 없다'가 개봉을 앞뒀다. '추격자'를 연상시키는 반전의 스릴러다. 연말연시 하면 떠오르는 훈훈한 가족영화나 코미디와는 역시 거리가 멀다.
물론 모든 영화가 시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사상 5번째 '1000만 클럽'에 가입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해운대'는 대형 기대작들이 쏟아지는 여름 한복판에 개봉해 대박을 쳤다. '국가대표'는 '해운대'와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하는 모험을 감행하고도 800만 넘는 관객을 모으며 큰 사랑을 받았다.
개봉을 앞둔 한 영화의 제작 관계자는 "영화 개봉에 왕도가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며 "영화 개봉에 있어서 법칙이란 없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는 "변칙개봉조차 더이상 새롭지 않다. 관객들의 다양한 욕구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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