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 남아공 월드컵. 44년 만에 본선에 진출한 북한 대표팀에는 유독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 세계 최강 브라질과의 경기에 앞서 눈물을 뚝뚝 흘린 그의 이름은 정대세.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북한 대표팀 선수다.
조총련계 학교를 졸업한 그의 정체성은 자이니치(재일조선인)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낯선 소수, 재일조선인. 그들을 그린 영화와 그들이 만들어 낸 영화들. 현해탄 사이에서 건져올린 이 '재일조선표' 영화들을 '인민 루니'라 불리는 그의 눈물 앞에 바친다.
◆재일조선인, 그 정체성에 대한 물음…'고(GO)'
'고(GO)'는 재일조선인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2001년 한일합작으로 제작된 영화다. 민족학교 최고의 꼴통 재일동포 3세 고교생 스기하라(쿠보즈카 요스케 분)는 그는 아버지의 전향으로 일본인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이 리정호인지 스기하라인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셰익스피어의 글귀처럼 대사처럼 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달콤한 향기에는 변함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그를 가만 두지 않는다. 일본인 소설과의 사랑에도, 친구의 죽음에도 재일조선인이라는 모호한 정체성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는 목 놓아 소리친다. 도대체 나는 누구냐고.
◆'임진강'을 함께 불러줘…'박치기!'
'박치기!'의 코우스케(시오야 슈운 분)는 재일조선인 소녀 경자(사와지리 에리카 분)에게 마음을 빼앗겨 '임진강'이라는 노래를 배운다. '임진강'은 재일동포들 사이에서 제 2의 아리랑으로 불리는 노래. 원래 북한 노래이지만 1960년대 일본의 포크가수 가토 가즈히코가 불러 금지곡이 됐다.
'임진강'은 곧 재일조선인의 표류를 상징한다. 일본가수에 의해 불린 북조선의 노래는 결국 조총련의 항의로 금지곡이 됐고, 재일조선인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거두어질 수 없는 존재다. 재일조선인, 그들은 함께 '임진강'을 불러줄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민족학교에 대한 따뜻한 시선…'우리학교'
'우리학교'는 조총련계 민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해방 이후 버려지고 방치되어 온 재일조선인들이 받은 지원이란 북한의 '교육원조비'가 고작. 그럼에도 이들은 굳건히 학교를 지키며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 왔다.
연출을 맡은 김명준 감독은 3년 5개월이라는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교원과 학생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슬픈 역사의 페이지 속에서도 민족혼을 지켜온 재일조선인. 서로가 힘이 되어주며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재일동포 감독들의 영화…'피와 뼈', '훌라걸스'
재일교포 2세대인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에는 스스로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해 부딪히고 충돌하며 살아온 재일조선인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 영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된 김준평(기타노 다케시 분)은 철저히 잔혹하고 처절하게 그려진다. 연민조차 거부하는 듯한 그의 삶은 재일조선인들의 생존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면 재일교포 3세인 이상일 감독의 '훌라걸스'는 일본의 유명 스파 리조트 '하와이안즈'의 탄생 실화를 바탕으로 변해가는 탄광촌의 모습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그려냈다. '훌라걸스'는 2006년 일본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2007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일본 대표작으로 선정됐다. 재일조선인 감독이 만들었지만 엄연한 '일본영화'로 인정받은 것이다.
거칠고 터프하게 밀어붙이는 생존방식과 이름에 얽매이기보다는 작품으로 인정받겠다는 자신감. 재일교포 감독들은 영화판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와 의미를 증명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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