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밥을 먹은 지 20여년. 영화를 해서 주목받기 시작한지 만 2년. 안정되면 쉬운 길을 찾기 마련이다. 나이를 먹을 수록 남의 이야기에 귀를 닫기 마련이다.
그런데 조성하는 다르다. 올해 나이 마흔 일곱. 2010년 '황해'로 대중에 얼굴을 알리기까지 조성하는 20년이 넘게 무명이었다. 연극계에선 알아주는 고수였지만 배고팠다. 연극계에서 벗어나면 길을 걸어도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었다.
TV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이어 영화 '화차' '알투비' '500만불의 사나이' 등으로 이른바 '명품조연'이라 불리며 시쳇말로 잘나간다. 조성하는 잘나가는 그 길을 걷기에도 버거울 텐데 '명왕성'에 오는 25일 개봉을 앞둔 '비정한 도시'까지, 저예산영화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파수꾼'이야 뜨기 전이라 그렇다 쳐도 '비정한 도시'에 돈 한 푼 받지 않고 출연한 까닭은 뭘까?
더구나 '화차'와 '알투비' '500만불의 사나이'를 연이어 하느라 눈 뜰 새도 없이 바쁠 때였다. 조성하를 만나서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이 남자, 한류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분명 다르다.
-왜 '비정한 도시'를 하겠다고 한 것인가.
▶'화차'를 찍고 드라마 '로맨스타운'을 할 때쯤에 제의를 받았다.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지만 도저히 시간이 안돼서 고사했었다. 그런데 김문흠 감독이 꼭 같이 하자고 그야말로 삼고초려를 하더라. 이렇게 열정이 있는 감독이 같이 하자는 데 거절할 수 없었다.
-'비정한 도시'는 말기암 환자인 아내 병원비를 구하러 사채를 쓴 남자와 여고생을 치고 난 뒤 달아났다가 사채 쓴 남자에게 협박당하는 택시운전사, 그리고 탈옥수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그 중 택시운전사를 맡았는데.
▶예전에 연극할 때 돈을 벌려고 택시운전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게 도움이 됐다. 한정된 공간에서 롱테이크로 촬영해서 되서 더 많이 준비하지 않으면 스태프들에게 민폐를 끼칠 것 같았다. 그래서 많이 준비하긴 했다.
-근 2~3년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있다. 너무 다작을 하는 게 아닌가. 체력적인 한계도 있을테고.
▶아무래도 인지도 차이일 것 같다. 그 전에는 하나 끝내면 다음 작품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오디션을 봐도 인지도에 밀려서 떨어졌고. 작품도 작품이지만 관계된 사람도 그 만큼 많아졌다.
'안돼'라고 고집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내가 하루아침에 된 것도 아니고, 어려운 시절 다 도와줬던 사람들이다. 마침 내가 인지도가 생기고, 그래서 도와줄 수 있어서 하고 있다. 일부러 돈을 벌려고 그러는 건 아니다. 나도 도움만 받고 살 수는 없잖나.
-다작을 하는데도 간혹 작품의 질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조성하 연기의 질은 유지되는데.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그 인물을 최대한 끌어내려 한다. 집중력이 그만큼 필요하고. 4~5년 쉬지 않고 달려오면서 체력적으로 소진되기도 했다. 그래서 틈틈이 약 챙겨먹고 운동도 하고 있다.
-변영주 감독은 '화차'로 조성하를 발견시켜주고 싶었는데 중요한 장면을 편집해서 아쉽다고 하던데. 이번 '비정한 도시'에는 발견할 장면들이 많은가.
▶발견시켜 주려면 자르질 말았어야지.(웃음) 이번 영화에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조성하의 소시민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파수꾼'과 '황해', '화차'와 '알투비', '500만불의 사나이'와 '비정한 도시'. 쉬지 않고 이어지는 출연작들을 살펴보면 신기하게도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오가는데. '명왕성'에 이어선 다시 '용의자'와 '동창생'에 출연하고.
▶굳이 따지고 하는 건 아니지만 순리적으로 살려 한다. 그 작품세계가 진실해 보이면 하는 것이고. '파수꾼'이나 '명왕성', '비정한 도시'나 돈 받고 하는 작품들이 아니니깐. 돈은 뭐 다른데서 벌면 되고. 그 작품들이 조명 받으면 그런데서 보람을 얻고. 나중에 그게 조성하의 힘이 될 수도 있고. 물론 아내한테는 돈 안받고 영화 찍는다는 소리는 안한다.(웃음)

-예능을 하고, TV드라마에 출연하고, 상업영화를 쉬지 않고 하는 건 인지도 때문인가.
▶그런 면도 있다. '1박2일'을 나간 건 인지도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다. 연극배우로 출발한 뒤 영화를 하면서 아주 작은 역에도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런데 늘 인지도라는 함정에 빠지더라. 최선을 다해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기회가 안 온다.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공부할 게 더 많아지더라. 만나야 될 사람들도 많아지고. 그러면서 한류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나이가 많고 작고를 떠나 얼굴이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 배우로서 해외시장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연극에서 출발한 비슷한 또래 배우들은 영화에서 어느 정도 안정되면 그 자리에 안주하는 편인데. 그런데 독립영화 뿐 아니라 한류까지 넘보겠다는 것인가.
▶이번에 부산영화제에 가서 일본팬들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성균관스캔들'을 그 쪽에서 잘 본 것 같더라. 순수예술만 고집할 게 아니라 또 다른 시장에 도전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소위 명품조연으로 묶임을 당하는데. 그 표현이 성에 차나.
▶일단 명품이라는 데 당연히 좋다. 연극계를 떠나면서 이제 주연은 맡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잘해야 조연으로 존재감 있는 역할 정도만 하겠지란 생각도 했고. 그런데 거기서 멈출 게 아니라 이왕이면 명품주연이란 소리도 듣고 싶다. 우리는 영화시장 역사가 짧다보니 미국처럼 50~60대 배우가 주인공을 맡는 영화가 없다. 우리도 시장 역사가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그런 영화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이로 한계를 구분하고 싶진 않다.
중년배우로서 중년이 되고 있는 배우들과 내 차별점이 뭔지를 고민하고 있다.
-'파수꾼'과 '화차'에 '비정한 도시'까지. 이 영화들을 선택한 건 이 영화들의 세계관에 동의한다는 뜻이기도 한데. '비정한 도시'는 죽을 병 걸린 마누라 때문에 사채 빚에 허덕이는 남자가 택시운전사의 뺑소니를 목격하고 돈을 요구하고, 그 택시운전사는 결국 부잣집 마나님을 납치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맞는데.
▶그렇다. 그렇기도 하고 배우로서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기도 하고.
-연극으로 시작해 독립영화에 상업영화, TV드라마에 한류까지. 걸어가는 길이 후배들이 걸을 길이기도 한데.
▶예전 같으면 연기하겠다고 때려 치라고 할 텐 데 요즘은 마음이 약해져서리.(웃음) 얼마나 투자하기 나름인 것 같다. 20년을 치열하게 하나에 투자하면 억울해서라도 그만두지 못할 게 아니냐.
-20년을 투자해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나 기쁨 같은 게 있다면.
▶송일곤 감독과 친한데 이번에 부산영화제 레드카펫 전에 전화를 했었다. 여기 왔으면 소주나 한 잔 하자고. 그랬더니 송일곤 감독이 "형, 이제 성공했으니 부산에서 비싼 방 주는데 와인 한 잔 하면서 자축하시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는 아직 와인을 시켜서 자축하기에는 멀었다고 말했다.
돈이 없어도 막걸리 하나면 세상 편하게 살 수 있다. 다만 인지도가 쌓이고 좀 더 할 수 있는 게 보이니깐 더 할 게 많더라. 이만큼 올라왔다고 생각했더니 더 높은 곳에 고지가 있다. 그 고지에 힘겹게 오르면 그보다 훨씬 높은 곳에 고지가 또 있다.
좀 더 집중해야 할 때다. 기쁨과 슬픔을 아직 따질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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