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G(컴퓨터 그래픽)의 미덕은 리얼함이다? 과감하게 통념을 깨는 발칙한 영화가 있다. 지난 14일 개봉한 독특한 로맨스 '남자사용설명서'에는 리얼함을 목표로 하던 CG의 목적 자체를 시원하게 깬 통렬함이 있다.
'남자사용설명서'의 CG는 영화의 일부를 넘어 전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민 흔녀 최보나(이시영 분)가 '남자사용설명서'라는 비디오를 입수하며 톱스타를 이승재(오정세 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줄거리 만으로는 영화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남자사용설명서'에서 CG는 감초를 넘어 주연이라 할 만큼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남자사용설명서'는 오프닝을 여는 보나의 심리테스트는 실제 이시영이 촬영한 화면과 마치 잡지책의 심리 테스트를 따라가는 것 같은 CG가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주변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도 없고, 남자들 가득한 일터에서도 여자 대접을 받지 못하는 보나의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관객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화면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글씨와 그림들은 자칫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촌스러움이 웃음과 '비디오'라는 설정에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큰 픽셀로 쓰인 촌스러운 폰트의 글씨들은 어릴 적 백 원짜리 동전을 넣고 즐기던 비디오 게임을 떠오르게 하고, 일부러 뿌옇게 처리한 채도 낮은 화면은 오래된 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1단계 '룩-홀드-스마일'부터 실수를 되돌리기 위한 '리셋' 단계까지 마치 1980년대 교육용 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구성에 따라 '남자사용설명서'는 CG와 실사의 역할을 뒤바꿔 놓았다. 자막으로 처리할 법도 한 '인절미' '그냥' '별로' 등의 단어들을 외국인 배우들이 푯말을 들고 표현하기도 하고, 굳이 자막을 쓸 필요 없는 부분에서도 화면을 가득 채우는 큰 글씨가 서슴없이 등장한다. 특히 주인공 승재의 귀에 박히는 명대사인 '별로'라는 두 글자가 화면에 두둥-하고 등장할 때 객석은 그야말로 웃음바다가 된다.
아예 배우 대신 CG 속 캐릭터만이 등장하는 부분도 있다. 닥터 스왈스키(박영규 분)가 남녀의 러브 사이클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아예 그래프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남자의 성적욕구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오래된 성교육 비디오 같은 인체 모형이 등장해 야하기 보다는 정말 '교육'을 받는 것 같은 느낌까지 준다.

이정도로 CG가 큰 역할을 했으니 CG가 삽입되기 전 편집본을 본 이시영이 "대체 무슨 영화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했을 법도 하다. '남자사용설명서'의 이원석 감독은 스타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영화에서 CG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촌스러움과 레트로의 경계를 잘 지키기 위해 CG팀을 많이 괴롭혔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날 말로 설명해서는 '남자사용설명서'를 꽉 채운 CG의 맛을 알 수가 없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이 새로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판단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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