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첫 선을 보인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빙하기가 찾아온 미래를 배경으로, 유일한 생존자들을 싣고 궤도를 순환하는 열차가 배경이다. 거무튀튀한 단백질 바 하나에 의지해 뒤엉켜 살아가며 핍박받던 꼬리칸 사람들이 엔진칸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강렬하고도 처연하게 그려졌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 제작비인 430억을 투입해 만든 글로벌 프로젝트답게 송강호, 고아성 외에 여러 해외 배우들이 출연해 열연했다. 처연한 투쟁의 드라마답게 매끈하고 반드르르한 인물은 찾기 힘들지만, 다국적 연기파 스타들은 땟국물을 입혀도 빛이 난다.
'퍼스트 어벤져',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로 잘 알려진 크리스 에반스는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 역을 맡아 반란을 이끈다. 봉 감독은 "크리스 에반스는 미식축구 주장처럼 멀끔한 미남이지만 몇시간 전 검댕을 바른 느낌이면 안되고 피부가 켜켜이 문드러진 느낌을 살리려 했다"고 털어놓을 만큼 그에게 진득한 땟국물을 입혔다. 그럼에도 크리스 에반스는 '어벤져스'보다 돋보이는 존재감으로 극 전반을 이끈다.

믿고 보는 신뢰의 배우 송강호의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맡은 남궁민수는 열차의 보안 설계자로서 딸 요나(고아성 분) 하나를 데리고 감옥칸을 전전하는 신세. 시커먼 넝마같은 의상에, 때 묻은 얼굴로 얼빠진 듯 열차 안을 휘젓지만 역시 그는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영화 끝까지 주역으로서 제 몫을 해낸다. '괴물' 이후 7년만에 부녀지간으로 재회한 고아성 역시 한껏 시선을 붙든다.

열차의 2인자인 총리 메이슨 역을 맡은 틸다 스윈튼은 꼬리칸과는 먼 인물인지라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하지만 비주얼 파괴는 틸다 스윈튼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두꺼운 뚤테 안경에 사감 선생님을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 들창코 분장도 감수했다. 여기에 거만한 만큼 비굴한 캐릭터도 더해야 한다. 이 모든 비호감 요소에도 불구, '설국열차'의 틸다 스윈튼은 압권이다. 왜 그녀가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평가받는지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영국 노신사 존 허트도 마찬가지다. 꼬리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살아있는 성자 길리엄 역을 맡은 그는 아무렇게나 자른 듯한 떡진 백발, 넝마 패션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땟국물을 입혔다고 형형한 눈빛이 어디로 가랴. 지팡이를 짚고 위태롭지만 당당하게 서 있는 존 허트의 모습만으로도 길리엄의 캐릭터가 설명될 정도다.

'설국열차'의 창조주나 다름없는 열차의 설계자 윌포드 역은 에드 해리스가 맡아 활약했다. 타도의 대상인 동시에 경외의 대상인 만큼 묵직한 배우를 고심했던 봉준호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에드 해리스를 캐스팅했고, 그는 기대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빌리 엘리어트'의 꼬마 무용수 빌리 이후 13년, 훈남 청년으로 훌쩍 자란 제이미 벨은 전쟁통같은 꼬리칸에서 나고 자란 반항아 에드가로 분했다. 꼬리칸 기름때 따위로 잘 자란 영국 청년의 매력을 감추기엔 역부족. 이밖에 '헬프'의 가정부 아줌마로 깊은 인상을 남긴 옥타비아 스펜서의 꼬리칸 열혈 엄마 캐릭터 역시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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